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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3개월은 충격이었죠"..매일 낮술만 하는게 직업인 사람

조회수 2020. 9. 27. 22: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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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는 술 안마신다는 막걸리 연구원의 이유
국순당 부설연구소 박선영 팀장 인터뷰
석사 졸업 후 입사해 술 효모 연구 17년

지난 2월 20일 경기 성남시의 한 아파트형 공장. 9층에 내려 복도를 걸어가자 알싸한 술 향기가 코를 찌른다. 바로 전국에 유통되는 국순당의 모든 주류 제조를 연구하는 국순당 부설연구소다. 15명의 연구원들이 매일 ‘음주’를 하면서 술맛을 연구하고 있다.


박선영(45) 팀장은 그 중 하나다. 2002년 국순당에 입사한 이후 17년간 술맛을 연구해 왔다. 박 팀장은 아주대 생물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국순당에 입사했다. 입사 후 경희대 식품공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막걸리에서 유래한 유산균의 발효와 기능 활성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국순당 제공
박선영 팀장.

-당신은 누구인가.


“국순당 연구원이다. 국순당에서 제조하는 모든 술을 연구한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막걸리를 주로 연구했다.”


-술 회사에 입사하게 된 이유는.


“석사 주제가 효모였다. 에리스리톨 등 당알코올 생산에 사용되는 효모 등을 연구했다. 그런데 우연찮게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가 술을 발효하고 맛보는 모습을 TV화면에서 봤다. ‘효모로 술도 만들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술을 안 좋아해서 생각도 안 하고 있던 직업이었다.”


-입사하니 어땠나.


“근무 시간에 술을 마시는 것이 생소했다. 사실 주류 연구원이니 당연한 일인데, 막상 겪어보니 쇼크였다. 처음에는 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힘들기도 했다. 3개월 정도 일하니 술을 단순히 취하는 수단이 아닌 편하게 즐기는 하나의 음료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입사 초기에는 백세주만 연구했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백세주와 ‘오십세주’(백세주와 소주를 1대1로 타서 마시는 것. 백세주를 절반으로 깎는다는 어원으로 오십세주라 불렀다)가 인기였다. 그래서 회사의 매출 90%가 백세주에서 나왔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백세주를 원없이 연구해 보라는 미션을 받았다.”


-뭘 했나.


“맥주는 같은 맥아를 써도 효모의 종류에 따라 맛이 수백 가지로 변한다. 백세주도 쌀에 어떤 효모를 쓰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그걸 다양하게 실험하고 또 레시피와 보고서로 정리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별’, ‘삼겹살에 메밀 한 잔’ 같은 신제품 술을 출시하기도 했다. 국순당에서는 내가 개발한 오십세주 시판 제품도 수출한다.”


-오십세주는 그냥 타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당시 일부 식음료 매장 등에서 요청이 꽤 있어서 개발했다. 지금은 미국 시장에만 수출한다. 로스앤젤레스 지역 교민들이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마신다. 한 번 수출하면 1만 병씩 보낸다.”

출처: 국순당 제공
20일 경기 성남 국순당 부설연구소에서 박선영 팀장이 막걸리의 향을 테스트하고 있다.

2007년부터 막걸리 개발…‘새지 않는 막걸리’ 특허도


-막걸리는 언제부터 만들었나.


“국순당은 1990년대부터 캔 막걸리를 만들었다. 본격적인 막걸리 상품 개발은 2007년부터다. 2008~09년에는 횡성 공장에서 숙식하면서 생산 과정을 살펴봤다. 그렇게 나온 것이 국순당 생막걸리다. 750ml 페트병 제품이 주력이고 캔도 있다. 지역 막걸리들이 득세하던 시장에서 20% 정도의 전국 점유율을 이뤄냈다.”


-비결이 있나.


“일단 효모의 발효를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의 페트병 막걸리는 눕혀 놓으면 샌다. 병뚜껑에 미세하게 틈이 있기 때문이다. 틈이 없으면 막걸리가 부풀어서 터진다. 효모가 계속 발효를 하기 때문이다. 이걸 제어 하는, 발효제어기술을 개발했다. 양조장에서 나온 막걸리의 미생물 발효를 제어하는 생물학적 기술이다. 특허도 냈다. 이 기술 덕분에 국순당 막걸리는 눕혀 놓아도 된다. 유통기간도 45일(일반 막걸리 7~10일)로 늘어났다.”


-최근 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사라진 우리술 복원에 주력했다. 송절주 등 문헌으로 내려오는 전통 술을 복원하는 작업을 했다. 그 외에 특별한 포인트가 있는 막걸리들도 만들었다. 우리술 복원에서 터득한 제법을 기반으로 옛날 막걸리 ‘고’, 1000억 유산균 막걸리(750ml 한 병에 유산균이 1000억마리 이상 있는 막걸리) 등을 개발해 출시했다."


-하루 일과는.


“일단 출근하면 발효 중인 술이 잘 있나 살펴본다. 그리고 제품을 잘 알릴 스토리를 발굴하고 콘셉트도 잡는다. 그리고는 누룩을 발로 디딘다. 디딘 누룩을 이용하여 술을 빚고 발효한 뒤 시음을 한다.”


-누룩은 어떻게 디디나.


“통밀을 가루로 만든다. 물에 반죽한 뒤 동그란 누룩 틀에 넣는다. 그리고 발로 디딘다. 디딜 때는 누룩을 깨끗한 면포로 싼 뒤, 새 양말을 신고 밟는다. 그리고 나면 발효가 된다. 그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


-시음은 몇 잔이나 하나.


“하루에 50가지 정도 한다.”


-안 취하나.


“한 모금, 10~20ml 정도 마신다. ‘입안을 적실 정도’만 마시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부 연구원은 마셨다가 뱉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목넘김도 중시하는 연구원이라 반드시 다 마신다.”


-시음하다보면 잔뜩 마실 것 같다.


“그렇다. 실제로 낮 12시부터 오후 7~8시까지 마신 적도 있다.”


-시음할 때 안주는 안 먹나.


“물만 마신다. 안주를 먹으면 술맛 평가에 영향을 준다.”


-‘막사주’(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마시는 것) 등도 먹어보나.


“물론이다. 막사주 등 섞어서 먹을 때 풍미도 여러가지로 테스트를 한다.”

출처: 국순당 제공
박선영 팀장.

부부가 술 연구원…“퇴근 후에는 술 안 마셔요”


-술 연구원으로서 직업병이나 애로사항 있나.


“마트나 식당에 가면 새 막걸리를 찾아본다. 라벨을 꼭 보고, 어디서 만들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집에서 아이들이 아빠한테 술 냄새가 난다고 핀잔을 준다. 지금은 아이들이 미성년자라서 이해 못하는 측면도 있지만, 더 자라면 전통문화를 지키고 복원하는 사람으로서 긍지에 공감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아내도 같은 회사 술 연구원이라 삶을 잘 이해해 주는 편이다. 집에서도 종종 발효 효모와 술맛에 대해 토론한다.”


-평소에도 술을 좋아하나.


“술을 좋아하는데, 주량이 약하다. 백세주 한 병 정도 마신다. 그리고 집에서는 일절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유가 있나.


“전날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날 시음할 때 지장이 있다. 회식 등 꼭 필요할 때는 술을 마시지만, 가정에서는 절대 술을 먹지 않는다.”


-막걸리를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달라.


“막걸리는 예로부터 ‘농주(農酒·농사일에 쓰이는 술. 품앗이 같은 협업으로 농사를 할 때 주인이 함께하는 일꾼에게 대접한다)’라 불렀다. 땀을 흘리고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 비오는 날 파전이나 김치전과 먹어도 맛있다. 빗소리와 막걸리의 탄산이 터지는 보글보글하는 소리가 운치있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는 깍두기와 곁들여도 좋고, 유자와 먹어도 좋다. 맥주잔 크기의 유리잔 기준으로 유자청 2~3스푼을 넣어 저은 뒤 섭씨 30도 정도에 먹는다. 겨울에는 막걸리에 대추를 채 썰어서 넣은 뒤 섭씨 30도 정도로 데워 먹어도 맛있다.”


-제조일자는 어떻게 고르나.


“단맛을 원하면 갓 만든 최신의 막걸리, 청량하고 드라이한 맛을 느끼려면 제조한 지 오래된 것을 고르면 된다.”


-향후 포부는.


“대학 졸업 후 전통주를 만들어 왔다. 다양한 미생물을 써서 발효를 꾸준히 할 것이다. 이 발효 기술로 그동안 맛보지 못한 술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 평생의 목표다.”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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