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맥·삼겹살에 '빨리빨리'까지..한국 문화 때문에 성공했어요

조회수 2020. 9. 27. 22: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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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는 '소맥 말기' 좋아하는 음식은 '삼겹살', 인도에서 온 세 청년
한국에서 사업하는 인도 세 청년
2015년 랜드사 나이스인디아트래블 창업
안정적 삶 대신 가능성만 보고 한국으로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금 낯선 용모의 외국인들이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며 반겼다. 이들은 인도에서 온 세 남자, 투물 스리바스타바(38·Tumul Srivastava), 아툴 스리바스타바(36·Atul Srivastava), 어비아스 쿠마르(33·Abhyas Kumar)씨다.


세 사람은 2015년 한국에서 나이스인디아트래블이라는 랜드사를 공동 창업했다. 랜드사란 관광코스를 기획하고 교통편과 숙박 시설 등을 예약해 여행사에 여행 상품을 납품하는 곳이다.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 관광객이 대상이다. 인도뿐만 아니라 부탄·몰디브·네팔·스리랑카·중국·베트남 여행도 다룬다. 한국과 해외에 있는 직원을 합한 수는 100명에 조금 못 미친다. 하나투어, 롯데투어 등 10여개 여행사와 파트너사로 일한다. 패키지 투어, 마이스(MICE·Meeting, Incentive trip, Convention, Exhibition) 행사, NGO 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다룬다.


대한민국이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인지 ‘노스 코리아(North Korea)’인지도 잘 몰랐던 청년들은 이제 한국인이 다 됐다. 세 사람은 “우린 한국 사람과 똑같이 산다”며 “우리끼리 일할 때도 한국말로 한다”고 했다. 황금비율로 소맥(소주+맥주)을 말아 마시고 삼겹살을 노릇하게 구울 줄 안다. 사무실 한구석에는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 쌓여있다. 인도 여행은 10월 초부터 3월 초까지가 성수기다. 지금이 한창 바쁠 시기. 세 사람을 만나 한국에서 사업하는 이방인의 삶을 들었다. 

출처: jobsN
(왼쪽부터) 투물 스리바스타바(38·Tumul Srivastava), 아툴 스리바스타바(36·Atul Srivastava), 어비아스 쿠마르(33·Abhyas Kumar) 이사.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한국말 공부


세 사람은 원래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인도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아툴 이사는 삼푸르난드 산스크리트 대학(Sampurnanand Sanskrit University)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교사를 꿈꿨다. 투물 이사는 푸르반찰 대학(Purvanchal University)에서 경제학 석사를 졸업했다. 투물, 아툴 이사는 형제다. 어비야스 이사는 크리켓 선수를 준비했다.


여행업계에 먼저 발을 들인 건 아툴 이사다. 2003년부터 인도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했다. 그는 2007년 한국인 관광객을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한국인 관광객이 마치 아들처럼 저를 챙겨줬습니다. 뭘 먹을 때마다 다 나눠주고 말이 안 통하는데도 계속 말을 걸어줬어요. 헤어질 때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한국에서 일해야겠다 맘먹는순간이었습니다.” (아툴)


투물 이사도 여행업에서 가능성을 보고 2010년부터 한국에서 여행 오퍼레이터(Operator)로 일했다. 오퍼레이터는 여행지를 발굴하고 일정을 계획해서 판매한다. 그 역시 우연히 아툴 이사를 따라갔다가 한국 관광객의 친절함과 활력에 반해 여행업에 뛰어들었다. 어비야스 이사도 비슷한 시기 한국으로 와 투물 이사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한국 관광객 대상 여행 가이드로 일하는 친형의 영향을 받았다. 투물, 어비야스 이사는 한국에 있는 랜드사에서 일하며 한국말을 처음 배웠다. 

출처: 투물, 아툴, 어비야스 이사 제공
나이스인디아트래블 창업 전 모습. (위에서 아래로) 투물, 아툴, 어비야스 이사.

“당시 사장님이 서울대에서 낸 한국어 책을 주셨어요. 외국인은 보통 대학 어학당에서 많이 배우는데 저희는 독학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배워서 그런지 ‘한국말이 자연스럽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요. 그래도 발음은 아직 어렵습니다.” (어비야스)


“첨엔 ‘안전하다’는 뜻을 모를 정도로 실력이 없었어요. 한국 드라마 한편을 10번 이상씩 돌려봤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책 펴고 다시 보고··· 꿈에서도 공부한 것 같아요.” (투물)


낯선 한국 문화와 음식에 고생했지만 금세 적응했다. 세 사람은 “한국 문화가 몸에 맞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한국 직장인에게도 힘들다는 회식 문화에 거뜬히 적응했다. 상대가 높은 사람일 때 술잔을 옆으로 살짝 돌려마시는 행동도 몸에 익숙하다. 투물 이사는 아툴, 어비야스 이사가 인정하는 회식의 베테랑이다.


“저희끼리만 어울리지 않고 한국 사람과 부대끼며 배웠어요. 회식 문화 덕분에 저희가 한국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회식에서는 상대방이 먼저 속마음을 털어놓고 저희에게 이것저것 알려줬어요. 고기 굽기, 소맥 말기 같은 회식 필살기만 배운 게 아니라 한국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어요.” (투물)


한국 생활에 자신감이 붙은 세 사람은 창업을 결심했다. 마냥 한국의 정(情)만 생각한 건 아니다. 세 사람은 업계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가이드와 오퍼레이터 능력을 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국 회사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알았다. “인도로 자유여행하는 한국 청년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패키지 여행이나 마이스 같은 행사를 관리할 만한 회사는 없었어요. 저희가 경쟁력이 있을 거라 봤어요.” (아툴)

출처: 나이스인디아트래블 페이스북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인도의 타지마할, 바르나시 지역.

2014년 인도에서 먼저 회사를 차렸다. 한국에 1억원을 투자해 법인을 세우는 방식으로 창업했다. 외국인 또는 외국회사의 국내 현지법인 설립을 통한 투자는 외국인투자촉진법 및 상법 규정을 적용하고 내국법인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세 사람이 한국 사무소를 맡고, 인도 현지 사무소는 다른 동업자 2명이 맡았다.


“개인회사는 언제든 문을 닫고 사라질 수 있지만 법인 회사는 그렇지 못해요. 거래처에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법인회사를 제안한 건, 투물·어비야스 이사님이 한국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노하우 덕분이었습니다.” (아툴)


낯선 빨리빨리 문화, 적응 이렇게 했다


사업 초기엔 망망대해에 있는 기분이었다. 남들과 다른 길이었다. 타국에서 잘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사업이 잘 안될 수도 있었어요. 그래도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투물)


세 사람은 일하는 방식을 철저히 한국 현지화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사업 시스템을 맞췄다. ‘신속하고 정확하게’가 회사의 모토다. 랜드사는 한국 여행사와 인도 현지 호텔·식당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 중간자로서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현지 호텔이나 식당, 관광지 등 상품 판매원들에게 한국 문화를 설명했어요. 빨리 회신을 줘야 한국에서도 확답을 줄 수 있다는 식으로요. 또 인도 사무소 시간을 한국 영업시간과 맞췄어요. 서울과 인도가 4~5시간 정도 차이가 납니다. 인도 직원들은 새벽 5시에 출근해요. 한국이 오전 9시일 때니까요. 대신 일찍 출근한 만큼 일찍 퇴근합니다.” (어비야스)

출처: KBS1TV '헬로 이방인' 영상 캡처
아툴, 투물 이사는 KBS1TV '헬로 이방인'에 출연해 한국에서 사는 영업사원의 삶을 보여줬다.

첨엔 거래처와 약속을 잡는 것조차 어려웠다. “첫날 찾아가서 못 만나면 둘째날 찾아가고, 안되면 또 갔어요. 저희를 만나주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바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게 목적이면 어떻게 해서든 만나야죠. 누구든 저희를 만나면 그때부턴 ‘외국인이 하는 회사라서 믿을 수 없다’는 말은 안합니다. 법인 회사이기 때문에 믿음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또 저와 어비야스 이사는 한국인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했어요. 한번 계약 맺고 일을 진행하면 제대로 처리해서 신뢰를 확고히 했습니다.” (아툴)


인도 현지 사무소에는 한국말을 할줄 아는 직원이 있다. 여행 중 문제가 생기면 한국 여행사가 아니라 현지 사무소에 연락해 바로 처리할 수 있다. 여행 가이드는 15명 모두 한국말을 할줄 안다. 보통 여행 가이드는 프리랜서다. 하지만 이곳의 가이드는 정식 채용한 직원이다.


비수기에는 모든 가이드를 한국에 초청한다. 함께 한국 곳곳을 여행하며 문화를 알려준다. 일종의 회사 워크숍인 셈이다. 가이드 교육도 직접 한다. 인도 문화원에 다니는 학생을 인턴으로 채용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르친다. “한국말만 잘해선 안되고, 여행객 기분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도 중요해요. 물 따라주는 법, 수저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 법, 손님 응대법 모두 알려줍니다.” (어비야스)

출처: 어비야스, 아툴 이사 제공
(왼쪽부터) 어비야스 이사 부부와 아툴 이사 부부.

상품과 서비스도 한국 여행객에 맞춰 기획했다. 마사지를 즐기는 한국인을 위한 아유베르다(Ayuveda) 투어가 대표적이다. 아유베르다는 인도의 전통 민속 의학을 말한다. 실제로는 마사지에 국한하지 않고 요가·명상·테라피 등 여러 요법을 사용한다. 이외에 불교 성지순례, 해양 도시 투어 등 독특한 상품을 기획했다. 사소하지만 여행의 만족도를 올려주는 서비스도 수시로 도입했다.


“인도 관광객에게 와이파이 도시락을 주는 서비스를 저희가 처음 했습니다. 인도는 땅이 넓어서 버스로 5~6시간을 이동해야 합니다. 내내 가이드 설명만 들을 수도 없어요. 와이파이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극대화합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눈에 띄는 풍경을 사진 찍어서 SNS에 공유해요. 때론 영상도 보고 메신저로 전화도 하구요. 5~6시간을 이동하느라 지루하다는 생각을 덜 할 수 있습니다.” (아툴)


한국말로 쓴 관광지도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한국 여행객이 참고할 만한 인도 지도가 없었다. 이런 아이디어는 한달에 한번 현지 파트너사와 화상 회의를 하며 떠올린다.


나이스인디아트래블은 개인 고객에게 상품을 팔진 않는다. 여행사를 통해 고객을 모집하는 패키지 투어나 마이스 행사만 고집한다. “‘닭이 아닌 알을 먹자’는 주의입니다. 닭을 잡아먹으면 그 이후에는 끝이지만 알을 먹으면 내일도 모레도 먹을 게 있으니까요. 파트너사들과 신뢰를 쌓기 위해서 중요합니다.” (투물)


2018년 한해 나이스인디아트래블을 통해 인도에만 70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여행을 다녀왔다. 매출은 공개하지 않았다. “여행사는 바로 성과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자칫 매출만으로 회사 체력을 평가받을 것 같아 공개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자는 아니에요. 항상 흑자였습니다. 회사가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습니다.” (투물) 

출처: 어비야스 이사 제공
한국에 초청한 가이드들과 함께.

사람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한국에서 차별을 받은 적은 없다.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 사람은 ‘인적 자산’과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희를 보고 많이 힘들었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일하는 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동료, 가이드, OP, 파트너까지 한명이라도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서로 믿고 도와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돈보다 인맥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아툴)


이들의 꿈은 한국에서 더 커졌다. 트래블을 넘어 ‘나이스 인디아 그룹’을 꿈꾼다. “회사를 키우려면 ‘팀’이 있어야 합니다. 팀이 꼭 저희 직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파트너사, 도움을 준 한국분들 그리고 가족까지 포함해요. 저희는 서로를 믿는 팀이 있기 때문에 자신 있습니다.” (투물)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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