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 떨어져 가불 망설이던 가장이자 주유소 직원이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7. 22: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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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꼴찌였던 그가 10년 연속 전국 판매왕 된 비결
10년 연속 현대차 판매왕 임희성 부장
2001년 입사 후 작년까지 5510대 판매
비결은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는 5분 대기 정신”

“어떻게 한번 뚫어볼까 해서 갔는데 역시 쉽지 않네요.”


지난 2월 1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찻집에서 만난 현대자동차 판매왕 임희성(45) 부장은 남색 나비넥타이를 하고, 귀에는 경호원 같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한 중견기업의 사내 강연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주제는 영업 관리 비법. “보통 영업의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공주 인근에 있는데 강연 때문에 오늘 서울에 올라왔어요. 상경하기 전 오전에 차 한 대 팔고 왔죠.”


임 부장은 작년 한 해 423대의 차를 팔았다. 하루 1대 이상을 판 것이다. 지금껏 5510대를 팔았다. 현대차 직영점 소속 영업사원 6000명 중 연간 100대를 파는 사람은 전체의 6%뿐이다. 그는 무슨 수로 매년 400대 이상을 차를 팔며 10년 연속 판매왕이 됐을까. 비법을 물었다.

출처: jobsN
서울 마포구의 한 찻집에서 만난 임희성 부장이 업무용 태블릿을 들고 있다.

한 달에 전단지 1만2000장 뿌리고, 18년째 점심 걸러


인터뷰 중에도 임 부장을 찾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인터뷰 시작 10분 만에 전화가 5통 왔다. 그는 “하루에 많을 때는 전화 200통을 받는다”고 했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아침 6시~6시 반에 출근해 그날 출고와 차량 등록을 준비한다. 오후에는 차량 인도를 하고, 그 중간 중간 틈날 때 고객 상담과 전단지 홍보 등을 한다. 점심은 18년째 거의 안 먹는다. 점심을 거르고 그 시간에 구매 고객에게 인도할 차량 관련 서류를 갖추고 오후 일정을 짠다. 온종일 정말 바쁘다. 어떨 때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전단지도 직접 뿌리나.

“한 달에 전단지 1만2000부를 뿌린다. 사실 전단지 효과는 크지 않다. 전단지를 보고 한 대에 수천만원하는 차량을 바로 사는 사람은 없다. 대신 전단지를 뿌리면 사람들에게 ‘임희성이가 열심히 뛴다’라고 느낌을 줄 수 있다. 그게 중요하다. 임희성이가 여전히 있다는 느낌.”

출처: 임희성 부장 제공
임희성 부장이 돌리는 영업용 전단지 5종 중 3개의 모습.

-어떤 차량을 많이 팔았나.

“공주권역에서 주로 차를 판매한다. 전체 판매대수 중 70%가 공주, 30%는 공주 인근인 대전과 세종시, 서울·경기권이다. 인구가 11만명인 공주의 전체 수요는 한 달에 250대, 1년에 3000대인데 그 중 10%를 차지하는 거다. 지방 소도시라서 고객들이 주로 찾는 차량은 그랜저 이하급 차량이다. 1톤 트럭 포터도 많이 나간다.”


-서울 등에서 영업하면 더 많이 팔 수 있겠다.

“사실 그렇지 않다. 영업이라는 게 완전히 몸으로 뛰는 거라 한 사람이 판매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고객을 만나고, 서류 작업하고, 출고하고, 등록하려면 한 달에 30~40대 판매가 맥시멈이다. 사실 난 서류 작업을 봐주는 직원 1명을 개인적으로 두는데도 한 달 30~40대가 한계다. 그 이상은 비합리적이다.”

출처: 스튜디오 ZIP 김재윤·HMG(현대차그룹) 저널 제공
2015년 공주지점에서 사진을 촬영한 임희성 부장.

가락동 청과시장→농협 가스배달→주유소 직원→현대차 영업맨


그는 꼴찌였다. 고등학교 3학년 전교생 770명 중 750등 정도였다. 꼴찌에게 오라는 대학은 없었다. 재수 끝에 2년제 전문대학인 대덕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지역사회개발학과 94학번이다.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한 1998년, 임 부장 앞에는 IMF의 한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 후 무슨 일을 했나.

“졸업 전 교제하던 아내가 임신해 결혼식을 서둘렀다. 결혼도 하고 졸업도 했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처가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가락동 청과시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1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고향인 공주로 돌아왔다. 공주에서는 농협 일용직으로 일했다. 가스배달을 했는데,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다니다 허리를 다쳤다. 농협도 그만두고 주유소에 들어갔다.”


-주유소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차에 기름을 넣어주고, 저녁엔 기름배달을 나갔다. 새벽 5시 반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일했다. ‘어디에 가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 말씀을 되새기며 악착같이 일했다. 한 달에 1~2번만 쉬었고 110만~12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좋은 회사에 취직해 차 끌고 기름 넣으러 온 동창들을 만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한번은 생활비가 떨어져 가불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장님께 이야기를 못 꺼냈다. 저녁쯤 되자 주유를 하러 온 트럭들 사이로 아이와 아내의 모습이 보이더라. 생활비를 받으러 나온 것이다. 아이가 달려와 나의 품에 안겼다. 잡고 있던 주유기를 놓쳐 온몸이 기름 범벅이 됐다. 그때 다짐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능력 있는 아빠는 아니지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겠다고.”


-현대차 영업사원은 어떻게 됐나.

“일하던 주유소가 부도났다. 다른 일거리를 찾는 중 현대차에서 영업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접했다. 5대 1의 경쟁률이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보였더니 합격했다. 2001년부터 현대차 공주지점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출처: jobsN
임 부장의 명함 앞뒷면. 그는 "신입사원 당시 만들었던 017 번호를 없앨 수 없다. 힘들 때 초심을 다잡게 해주는 번호"라고 했다.

새로 산 양복 4벌에 이름 새기며 전투 영업


그는 통장 잔고 110만원을 털어 양복 4벌을 샀다. 모든 양복 등판에 ‘현대자동차 임희성’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그는 “한 벌에만 새기면 창피해서 안 입을 것 같았다. 임전무퇴의 각오를 갖고 먼저 이름을 알리자는 각오로 일했다”고 했다.


-어떻게 뛰었나.

“새벽에 출근하며 전단지를 돌렸고, 요일과 시간별로 방문 판촉할 지역을 정해놓고 수시로 돌았다. 퇴근 후 야간에는 택시 회사를 찾아다녔다. 1톤 트럭을 사서 야간에 불이 들어오도록 탑차 광고를 했고, 공주 곳곳에 내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 50개를 걸었다. 주말에도 아파트를 돌며 전단지 홍보를 했다.”


-영업이 몸에 맞았나.

“처음에는 얼굴이 빨개지고 말도 더듬거렸다. 하지만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목욕탕 갈 때는 혹시라도 고객 전화가 올까 봐 전화기를 카운터에 맡겼다. 한밤중에 고객으로부터 사고가 났다는 전화가 오면 발벗고 현장에 갔다. 영업의 리듬을 잃지 않으려고 해외여행은 가본 적 없다. 기껏해야 국내 1박 2일 여행만 갔다. 가서도 온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게 태반이다. 가족들에겐 미안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게 가장으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현대차 제공
작년 현대자동차 판매왕 시상식에서의 임 부장.

-기억에 남는 영업은?

“화물차를 사려고 상담하던 포크레인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본인은 차를 사고 싶은데 아내가 반대한다고 했다. 부인을 만나려고 직접 집에 찾아갔다. 그런데 웬걸, 부인이 집 거실에 쓰러져있더라. 들쳐업고 병원 응급실에 갔다. 포크레인 기사분이 정말 고마워하더라. 그분은 결국 차 구입을 포기했지만, 그때의 정신자세가 기억에 남아있다. 또 제주도 고객에게 직접 차를 인도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내려갔던 일, 차 구입을 반대하는 부인을 위해 출고한 차 조수석에 꽃다발을 놓아뒀더니 부인이 감동했던 일 등도 기억난다.”


-1년에 400대씩 팔면 주위 영업사원들의 질투도 받았겠다.

“그때는 오로지 열심히 많이 파는 것에 집중해 주변을 잘 못 돌봤다. 다른 영업사원이 피해를 본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다른 영업사원이 거래하던 식자재 회사에 수십번 찾아가 물건을 날라주며 계약을 따낸 적이 있다. 지금 내가 거래하던 곳에 다른 영업사원이 와서 거래를 따가면 기분이 좋진 않은데, 아마 그때 영업사원도 날 죽이고 싶지 않았을까. 정말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일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드나.

“일주일 동안 차를 1~2대밖에 못 팔 때가 있는데 그때가 제일 힘들다. 슬럼프가 오면 일단 나부터 잡아본다. 처음 영업을 시작했을 때 동선을 따라 거래처를 방문하고, 전단지를 돌린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게 된다.”

출처: jobsN
임희성 부장.

판매왕이 꼽은 영업 비결


-연봉은 얼마인가.

“2억7000만~3억원 정도다. 하지만 고액연봉자로 세금을 40% 정도, 약 1억2000만원 낸다. 여기에 전단지 비용 등 마케팅 비용이 한 달에 200만원 든다. 영업사원에게 마케팅은 투자다. 차를 팔면 선팅해드리고, 블랙박스 달아드리는 서비스 비용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500만원이다. 1년에 마케팅·서비스 비용만 6000만원 정도 든다. 생활비까지 제하면 1년에 3000만~4000만원 모은다. 4인 가족 기준 많이 모으는 것이라 생각한다. 늘 감사하고 행복하게 산다.”


-판매왕이 된 비결은 뭔가?

“영업은 단순하다. 고객의 입장으로 움직여야 한다. 내가 지켰던 원칙 첫째는 언제라도 고객이 찾으면 뛰쳐나갈 수 있는 5분 대기 정신이다. 일하는 모터를 끄지 않고 계속 가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각 대응을 못하면 고객은 떠난다. 둘째는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이다. 늘 초지일관하게 고객이 찾을 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는 영업의 리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영업 리듬이 깨지면 다른 일들이 줄줄이 묶여버린다. 며칠간 떠나는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 것도 이러한 영업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자신만의 리듬을 갖고 가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10년 연속 판매왕이 되니 책임감이 더 커졌다. 내가 실수를 하면 개인의 실수가 아닌 현대차 판매왕의 실수가 돼 버리기 때문이다. 판매왕 되더니 거만해졌다는 이야기는 죽기보다 더 듣기 싫다.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먹어 영업 열정이 식기 전에 대리점을 열어 젊은 영업사원들과 함께 발로 뛰며 영업 노하우를 전수하는 게 꿈이다.”


글 jobsN 김성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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