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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게는 하루 120잔..매일 술 마셔야하는 그녀의 직업은?

조회수 2020. 9. 27. 22: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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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와인 120잔 맛볼 때도 있지만, 책임감 없이 못하는 일입니다
다양한 술 마셔보는 게 일상
화려해 보이지만 현실은 달라
실적 압박 견뎌야 성공한다

하루에 와인 100개를 맛보는 사람이 있다. 그녀의 일상은 요즘 유행인 와인바나 위스키바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명절이나 기념일이 다가오면 주류 프로모션 행사를 기획한다. 수입사와 협의해 매장에 어떤 술을 가져다 놓을지 결정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은식(41) 신세계백화점 식품담당 가공식품팀 과장. 올해로 10년차 주류바이어다.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한 주류 매장에서 판매하는 술은 모두 그녀의 손을 거친다. 수입사로부터 전통주·위스키·와인 등을 사들여 고객에게 소개한다.

출처: jobsN
조은식 과장.

-주류바이어를 한 계기는.


“경희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졸업 후 2004년 월마트에 입사했다. 오일·잼 등 조미료와 라면·햇반 등 대용식을 다루는 바이어로 일했다. 2008년 신세계가 월마트를 인수합병했다. 이후 이마트 용산점에서 2년 정도 매장 관리를 했다. 2009년 주류 도매업체인 신세계 L&B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와인을 접했다. 2010년 2월부터 주류바이어로 일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주류바이어는 2명이다. 정(正)바이어와 그를 돕는 어시스턴트 바이어가 있다. 2012년부터 정바이어로 일하고 있다.”


-하루 일과는.


“출근하면 전날 매출부터 확인한다. 또 행사 상품은 얼마나 잘 팔리고 있는지 본다. 오전에는 행사 기획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바이어는 행사를 앞두고 가장 바쁘다. 설 명절 행사와 1주일 뒤에 있는 발렌타인데이 행사를 동시에 준비한다. 그러면서 추석 때는 어떤 테마를 주제로 행사를 열지 논의한다. 매일 연간 계획표를 보면서 행사 진행 상황을 점검한다.


오후에는 와인 수입사 등 협력사 관계자들과 미팅을 한다. 또 시장 조사를 하면서 트렌드를 파악한다. 경쟁사인 현대·롯데백화점이나 요즘 인기 있는 와인바·샴페인바 등 식음매장을 찾아다닌다. 매장 운영 방식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본다. 판매 사원이 몇 명인지, 진열 방식은 어떤지 확인한다. 경쟁사 프로모션 행사를 보고 벤치마킹할 부분을 찾는다. 또 와인 사이트에서 해외 시장 동향을 파악한다. 와인 동호회나 수입사 관계자들과 교류하면서 업계 소식을 듣기도 한다.”

출처: KBS2 '배틀트립' 캡처
이마트 주류 매출 3위였던 와인은 작년 소주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와인바와 와이너리 투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늘고 있다.

-술을 고르는 기준이 무엇인가.


“품질은 기본이다. 당연히 맛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술은 잘 팔리는 술이다. 제품에 녹아 있는 이야기가 분명하면서 가격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술이라도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술은 매장에 들여놓지 않는다.”


-주종 매출 비중은.


“백화점은 와인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우리는 매출액의 80%가 와인에서 나온다. 이어 전통주·양주·소주와 맥주 순이다.”


-주류바이어는 술을 잘 마시나.


“꼭 그렇지는 않다. 원래 술을 잘 못 마신다. 주량이 와인 반 병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몸이 붓고 어지럽다. 그래서 와인을 배울 때 시음하는 게 힘들었다. 남들은 와인 향을 맡으면 과일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나는 알코올 냄새밖에 안 났다. 훈련 덕분에 지금은 시음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아쉬울 때가 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 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웃음)”


-요즘 소비자가 많이 찾는 와인은.


"몇 년 전부터 내추럴(natural) 와인이 인기다. 내추럴 와인은 화학비료나 농약 등을 쓰지 않고 유기농 방식으로 경작한 포도를 원료로 만든다. 방부제 역할을 하는 이산화황 등 식품첨가물도 넣지 않는다. 기존 와인 맛에 익숙한 손님은 내추럴 와인을 맛보고 충격을 받는다. 어떤 와인은 청국장 냄새가 나기도 한다. 요즘 미쉐린 가이드에서 추천하는 레스토랑에는 내추럴 와인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맛이 가벼워 음식과 궁합이 좋다.


기포가 있는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의 인기도 늘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스파클링 와인 매출이 연평균 10% 이상 성장했다. 스파클링 와인 중에서도 가격대가 높은 샴페인의 매출은 20% 이상 올랐다. 10년 전에는 레드와인과 스파클링 와인 매출 비중이 75대25였다. 지금은 55대45까지 격차가 줄었다. 예전에는 모스카토 와인을 많이 찾았다. 모스카토 와인은 달고 향이 매우 강하다. 요즘은 드라이한 스파클링 와인이 잘 팔린다. 칠레산 운두라가 스파클링 와인이 인기다. 가격은 만원 중반대다. 저렴한 편인데 맛도 좋아서 잘 나간다.”

출처: 신세계L&B 제공
(왼)'이건희 와인'이라는 별명이 있는 뿌삐유. (오)칠레산 스파클링 와인 '운두라가'.

-시음은 얼마나 자주 하나.


"와인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나 주류박람회에서 시음을 한다. 신제품이 나오면 업체에서 샘플을 보내줄 때도 있다. 어떤 행사에서는 하루에 120종 와인을 맛본 적도 있다. 다 마시지는 않지만 향을 맡고 머금어 본다. 해외 출장을 가면 더 많이 마신다. 포도주 양조장 견학을 가면 기본적으로 10종 이상 와인을 시음한다. 현지 관계자가 저녁 식사에 초대하면 또 와인을 마셔야 한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술은.


“‘이건희 와인’이라고 부르는 술이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와인 마니아로 유명하다. 그가 2011년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을 한국에 초대해 휘닉스 평창 만찬장에서 ‘뿌삐유’(Poupille)라는 레드 와인을 대접했다.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매장을 찾은 손님들이 뿌삐유를 2~3병씩 사갔다.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적인 시음회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6만원 짜리 뿌삐유가 수많은 와인들을 제치고 한 병에 500만원인 ‘페트뤼스’와 결승전에서 만났다. 1등은 못 했지만 그 정도로 인정받는 술이다.”


-주류바이어에게 필요한 자질은.


“바이어는 자신이 다루는 상품을 잘 알아야 한다. 와인의 맛과 포도의 품종을 이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이 원산지인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은 레드 와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포도 품종이다. 껍질이 두꺼워서 타닌(tannin) 성분이 많다. 타닌은 포도 껍질에 들어 있는 성분으로 떫은 맛을 낸다. ‘멜롯’(Merlot)은 타닌이 적어 까베르네 소비뇽보다는 부드럽고 단 맛이 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입하려는 와인이 고객에게 잘 팔릴지 예측할 수 있는 안목이다. 시장에서 ‘먹히는’ 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후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와인 리스트를 외우게 한다. 국내 와인 매장에서는 어떤 상품을 팔고 있는지 가르친다. 인기가 많은 상품이 무엇인지 알아야 새로운 술을 들여올 때 참고할 수 있다. 와인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 ‘WSET’이라는 국제 와인 전문가 자격증을 따 놓는 걸 추천한다.”

출처: jobsN

-주류바이어만 아는 와인의 진실이 있나.


“항공편으로 수입한 와인이 배로 들여온 제품보다 신선하다는 말이 있다. 운송 시간이 짧아 배보다 길게는 한 달 이상 일찍 수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요즘 고급 빈티지 와인은 오히려 배편으로 들여온다. 항공편은 높은 기압차 때문에 품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 보관법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다. 와인은 안정적인 상태로 보관하는 게 좋다. 움직임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곳에 두어야 한다. 굳이 냉장고에 보관할 필요는 없다. 25도 이하라면 어디든 상관 없다.”


-매장을 찾는 손님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와인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매장 직원과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손님이 있다. ‘저렴한 와인’, ‘지인에게 선물할 와인’ 등 추상적으로 질문하는 손님도 많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본인이 원하는 맛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나도 지인이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면 원하는 가격대·원산지·품종·스토리 등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물어본다.”


-주류바이어를 꿈꾸는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


“주류바이어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진 사람이 많다. 해외 출장을 다니며 좋은 술을 자주 마셔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직업을 꿈꾼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판타지와 다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곧장 매출 등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난다. 인센티브는 없지만 실적에 대한 무게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책임감이 없으면 결코 오래 일할 수 없다.”


글 jobsN 송영조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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