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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상태로 15일..깨어나 보니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조회수 2020. 9. 27. 22: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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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 불구 극복하고 월 억대 매출 헬스장 대표가 되기까지
피트니스 비오엠 이후상 대표
축구 꿈나무, 하반신 불구 돼
운동으로 잃은 건강 운동으로 되찾아

2001년 어느 봄, 몸이 욱신거리고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감기몸살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증상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청천벽력같은 얘기를 들었다. ‘하반신 불구.’ 의사는 지체장애 5급이라 했다. 10년 뒤에는 두 다리를 아예 못 쓸 수 있다고 했다. 13살 소년의 꿈은 축구 선수였다.


한동안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했다. 유소년 축구부도 탈퇴했다. 세상 전부를 잃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재활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재활 목적의 개인 PT(Personal Training)가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았다. 운동 서적을 직접 찾아가며 운동법을 익혔다. 하루도 운동을 빠지지 않았다. 헬스장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구부러져 펴지지 않던 다리를 정상 기능 범위의 70%까지 회복했다.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무리한 운동으로 잃은 건강을 운동으로 되찾았다.


지금 그는 현재 회원 수 1500명, 월 억대 매출 헬스장 CEO다. 2016년에는 국내 3대 보디빌딩 대회로 알려진 WBC summer championship에서 일반인과 겨뤄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피트니스 비오엠 이후상(32) 대표를 만나 힘들었던 유년 시절을 이겨내고 헬스장 대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출처: 잡스엔
(좌) 피트니스 비오엠 트레이너들과 이후상 대표 (우) 이후상 대표.

다리 잃은 축구 꿈나무


-어린 시절 축구 선수를 꿈꿨다고.

“운동 선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한국 에어로빅 협회장을 지낼 만큼 유명한 에어로빅 선수고, 아버지는 경기도 협회장을 역임한 보디빌딩 선수다. 부모님으로부터 운동 신경을 물려받아 축구를 잘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 유망주’란 소리를 들었다. 2001년에는 잠실 신천중학교 유소년 축구부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머리 속에 축구뿐이었다. 남들보다 2시간 일찍 일어나고, 2시간 늦게 잤다. 하루 16시간을 운동장에서 보냈다.”


-어쩌다 하반신 불구 판정을 받았나.

“축구가 좋아 미친 듯이 운동했다. 10시간 넘는 고강도 훈련을 계속했다. 늘 발이 퉁퉁 부었다. 어느 날, 온몸이 뻐근하고 욱신거렸다. 운동을 쉬면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다. 축구부 형들은 ‘꾀병 부리지 말라’고 핀잔을 줬다. 그런데 다음 날 증상이 더 심해졌다.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식당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응급실에 갔다.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로 15일을 보냈다. 일어나자마자 ‘축구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병명은 화농성 고관절염. 골반과 넓적다리를 이어주는 고관절 안으로 세균이 들어와 염증이 생겼다. 축구에 빠져 고름이 차는 줄 모르고 있었던 거다. 수술 후 지체장애 5급 (하반신 불구) 판정을 받았다. 본격적인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꿈을 포기해야 했다. 침대에 누워 1달을 보냈다. 1년 동안 휠체어, 목발 신세를 졌다.


고등학교 때 심한 다리 통증을 겪었다. 웨이트 운동으로 재활을 시작했다. 운동 서적을 직접 찾아보며 운동법을 익혔다. 처음에는 스쿼트를 할 때 바깥쪽으로 다리를 벌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5kg 가벼운 무게부터 시작해서 하체 근육 활용범위를 넓혀나갔다.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했다. 헬스장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 결과 관절기능범위를 70%까지 회복했다.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출처: 잡스엔
(좌) 2009년 12월 16일 기준 지체장애 6급이다. (우) 화농성 고관절염 수술 당시 엑스레이.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불편한 다리로 피자집, 중국집, 냉면집 등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큰 돈을 모을 수는 없었다. 무료 급식을 받을 정도로 가난했다.”


-장사를 했다고 들었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아르바이트만으로는 목돈을 모으기 어렵다는 것. 고등학교 때부터 장사에 관심 가졌다. 졸업식용 꽃을 만들어 팔거나,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또 군고구마 기계를 크게 만들어서 고구마를 팔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사업 수완이 좋았던 것 같다.”


운동으로 되찾은 건강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강을 전하고 싶어요"


-지금 다리 상태는 어떤가.

“일상생활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비가 오면 전에 다리가 쿡쿡 쑤신다. 가끔 걷다가 주저앉는 느낌이 들곤 한다. 마치 쿠션이 없는 자동차를 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매일 운동을 빼놓지 않는다. 올바른 자세와 방법을 지키면서 매일 2시간씩 운동한다.”


-어떻게 트레이너가 됐나.

“웨이트 운동으로 건강을 되찾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강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대림대 체육학과에 들어갔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전공했다. 2007년 대학 교수님이 작은 휘트니스 센터 트레이너직을 알선해줬다. 지금까지 11년째 트레이너의 길을 걷고 있다.”


-보디빌딩 대회 경력도 있던데.

“내 몸부터 완벽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애가 있어 고관절 움직임이 일반인보다 자유롭지 않았다. 탄탄한 코어 근육을 만들기 위해 일반인보다 더 노력했다. 2010년 국제대회선발전 외국인대회인 제 3회 머슬 매니아 대회에 23살 최연소로 참가했다. 입상은 못 했다. 이 경험을 발판삼아 2016년 WBC summer championship에 출전했다. 근육의 탄탄함과 전체적인 몸 균형을 평가하는 피지크 부문에서 1위를 했다.”

출처: 잡스엔
(좌) 2016 WBC summer championship 대회 (우) 피지크 부문 181cm 1위 트로피.

-나만의 트레이닝 원칙은.

“사람의 체질, 성향, 라이프스타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운동을 처방한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무조건 높은 강도 운동을 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건강해지는 트레이닝을 하자’는 것이 내 철칙이다.”


-트레이너로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관절염, 허리디스크, 협착증 등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트레이닝을 받고 나서 ‘몸이 좋아졌다’, ‘아픈 곳이 없어졌다’고 할 때 가장 보람있다.”

출처: 잡스엔
회원 트레이닝 중인 이후상 대표.

사람이 먼저다


-헬스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대형 헬스장에서 일했다. 매출 압박이 너무 심했다. 또 트레이너에 대한 복리후생과 존중도 없었다. 사람을 돈으로 보는 기업 운영 방식이 마음이 싫었다. 사람을 남기는 센터,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센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헬스장 설립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

“맨주먹으로 시작했다. 산본과 군포 2개의 헬스장을 오가며 밤낮없이 트레이너로 활동했다. 열심히 일하니 길이 생겼다. 한 센터에서 7년 동안 근무하면서 단골 회원이 늘었다. 건강이 좋아진 회원이 지인을 소개하며 입소문을 탔다. 원래 트레이너는 이직률이 높은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처음 트레이닝을 시작할 때보다 월급이 10배 이상 뛰었다. 억대 연봉을 벌었다.


창업 전 수중에 있던 돈은 1억원. 3층 규모의 대형 헬스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한참 모자랐다. 프리랜서 직업이기 때문에 시중은행으로부터 대출 받을 수 없었다. 11년 동안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헬스장 회원, 함께 일했던 트레이너 동료들이 나에게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돈을 빌려줬다. 1억 7000만원을 더 모았다. 총 2억 7000만원으로 헬스장 운영을 시작했다.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 오랜 경험과 신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헬스장 오픈 3개월 후 10% 이자까지 더해 돈을 모두 갚았다.”

출처: 잡스엔
이후상 대표.

-지금 매출은 얼마나 되나.

“헬스장에서 월 평균 억대 매출을 내고 있다. 순수익은 월 평균 4000만원. 많이 버는 달에는 7400만원을 벌었다. 현재 피트니스 비오엠에는 1500명 회원이 다니고 있다.”


-보육원에 기부도 한다던데.

“가르치던 회원의 소개로 명륜 보육원에 갔다. 힘들게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렸을 때 힘들었던 생각이 났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지난 1월에는 10여명의 트레이너들과 함께 보육원 봉사활동을 했다. 지금은 ‘BOM 팔찌’를 팔아 번 수익을 매년 5월 5일, 12월 25일마다 보육원에 전하고 있다. 분기별로 재능기부 형태의 작은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출처: 잡스엔
(좌) 트레이너들과 함께한 1월 보육원 봉사 (우) BOM 팔찌 판매 수익 모금함.

-앞으로 계획은.

“'사람을 보다, 마음을 보다, 건강을 보다'. 우리 센터의 슬로건이다. 언제나 첫 번째는 사람이다. 센터 회원, 함께 일하는 트레이너 직원, 교육 봉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우선이다. 회원들의 건강을 위해 피트니스 전문 지도자 양성에 힘 쏟는 것은 기본. 앞으로도 어렵고 힘든 사람도 도울 계획이다. 다음 달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기초생활 수급자가 PT를 부담없이 받을 수 있도록 가격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려 한다. 사람을 남기는 센터, 여러 사람들이 건강과 행복을 얻어갈 수 있는 센터를 만들고 싶다.”


글 jobsN 김나영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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