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dy란 단어 몰랐던 전교 750등 고교 야구선수의 인생역전

조회수 2020. 9. 27. 22: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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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몰랐던 야구선수 출신 판사..왕년 운동 선수들의 '제2 직업'

우리나라 초등학생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은 운동선수(2018년 교육부 조사 1위)입니다. 그러나 운동선수를 평생 직업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외국엔 올림픽에 출전한 이들도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파울라 파레토(@paupareto) 인스타그램 캡처
현직 의사로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유도 금메달을 딴 파울라 파레토(33).

예를 들어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유도 여자 48kg급 금메달을 딴 파울라 파레토(Paula Pareto·33)가 있습니다. 그는 본업이 의사입니다. 아르헨티나 출생의 그는 9살에 유도를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 2014년 3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를 졸업했습니다. 현직 의사가 금메달을 딴 셈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체력 단련을 했다. 그 덕에 의학을 공부할 때도 높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스포츠는 체력과 끈기, 근성 등을 기를 수 있습니다. 훈련에 쏟았던 노력은 경기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결실을 맺기도 합니다. 한때 운동선수를 꿈꿨지만 의외의 분야에 도전해 승리한 이들이 있습니다.

출처: (왼)KBS 'VJ특공대' 캡처·(오) 모델 이혜정(@sweetyhy) 인스타그램 캡처
(왼) 야구선수 출신 이종훈 판사·(오) 농구선수 출신 모델 이혜정.

전교 755명 중 750등···야구선수 출신 이종훈 판사


서울중앙지법 이종훈(38) 판사는 고등학교 2학년 말까지 야구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7년간 운동장에서 매일 10시간 이상 야구를 연습했습니다. 하지만 연습만큼 실력은 늘지 않았습니다. 서울 성남고 2학년 공식 출전 기록은 한 해 동안 대타로 두 타석에 나간 것이 전부. 재능이 보이지 않자 아버지 권유로 운동을 그만둡니다.

출처: KBS 'VJ 특공대' 캡처
2009년 KBS 'VJ특공대'에 출연한 이종훈 판사의 모습, 그의 영어 단어장은 화제가 됐다

수업시간 내내 잠을 잤던 그의 고등학교 2학년 성적은 전교 755명 중 750등이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할 때 ‘Daddy’나 ‘Sad’ 같은 기초 영단어도 몰랐습니다. 잠을 줄여가면서 영단어와 수학공식을 외웠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짧아 내신은 좋지 않았습니다. 1999년 고등학교 3학년에 자퇴해 그다음 해인 2000년 검정고시와 수능을 쳤습니다. 2001년 인하대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2009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무법인 김·장에 입사합니다. 2017년 10월 판사 임용에 합격했습니다. 대법원은 2017년까지 법조경력 3년 이상의 법조인을 대상으로 법관을 임용해왔습니다. 작년부터 최소 경력 5년으로 법관 임용 자격을 상향 조정했습니다.

출처: 조선DB
이종훈 판사가 참석한 2017년 12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법관 임명식.

축구 선수와 국가대표팀 주치의 꿈꾸던 소년, 유현규 정형외과 전문의


원광대학교 유현규(29) 정형외과 전문의는 프로 축구 전북 현대 모터스 유소년 팀 출신입니다. 그는 축구 애호가인 아버지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권유로 초등학교 5학년에 전북 현대 U-12 팀에 입단했습니다. 축구 실력뿐 아니라 학교 성적을 강조하던 안재석(42) 감독이 멘토였습니다. 그 영향으로 중학교부터는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축구동아리를 만들어 대한 축구 협회 유소년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왼)조선DB·(오)유현규 씨 제공
전북 현대 유소년 팀 출신의 유현규 의사.

축구선수를 못한다 하더라도 축구장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주치의를 꿈꿨습니다. 다친 선수를 치료해 멋진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2010년 원광대학교 의과대학에 수시 합격했습니다. 현재 원광대학교 정형외과 레지던트 2년 차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편 잡은 지 벌써 20년째, 빙그레 ’지화자’ 지화동


동생 지화선과 함께 ‘지화자 형제’로 불리던 프로야구선수 지화동(52). 1990년 한화의 전신 빙그레에 입단했습니다. 입단하고 약 2년 동안 장종훈·황대연의 유격수 백업으로 뛰었습니다. 92년 주전 유격수로 올라섰습니다. 그가 나타나면 관중석에서는 ‘지화자 좋다’는 응원가가 쏟아졌습니다. 그 해 122경기를 소화해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데 힘을 보탰습니다. 93년 2루수로 전환했습니다. 빙그레에서 한화로 팀명을 바꾼 94년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은퇴 후 스포츠계를 떠났습니다. 이후 노래방을 열었지만 97년 IMF 사태가 터졌습니다.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출처: 출처 한화 공식 홈페이지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가 된 지화동씨의 빙그레 현역 선수 시절 실적과 활동 모습.

지화동 전 빙그레 프로야구 선수의 현재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그는 야구 특기생으로 1986년 동국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에 입학했습니다. 교사의 길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일단 중등 정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습니다. IMF 사태에 초등학교 교사들이 대거 명예퇴직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생겼습니다. 교대 출신이 아닌 중등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도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시적으로 지원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1998년 기간제 교사로 백운초등학교 교단에 처음 섰습니다.

출처: 조선DB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효제초등학교 전경.

아이들을 좋아한 그는 초등학교 교사가 천직이라 생각했습니다.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정교사에 도전했습니다. 약 2년 후 초등학교 임용고시에 합격했습니다. 2000년 서울 백운초등학교에 정식 발령받았습니다. 2009년 서울 효제초등학교로 적을 옮겨 지금도 이곳에서 근무 중입니다.


축구선수→ 보디가드→국민 김밥 ‘김가네’ 김용만 회장


김밥 전문점 ‘김가네’ 김용만(63) 회장은 초등학생 시절 학교 대표 축구 선수였습니다. 서울 영등포공고 1학년 재학 중, 경기에서 상대 선수 태클에 부상을 입습니다. 결국 축구를 포기합니다. 이후 역도·유도 등에 도전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란 생각에 접습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운동으로 먹고살긴 글렀다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출처: 조선DB · (오) 김가네 공식 홈페이지 캡처
(왼) 김용만 회장의 모습.

군 제대 후 보디가드 생활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 년 만에 그만두고 1986년 서울 대학로에 주점 ‘DMZ’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매출 부진으로 5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습니다. ‘김가네’ 김밥으로 다시 도전한 해는 1992년. 다른 김밥 가게와 달리 김밥 마는 과정을 고객이 볼 수 있도록 통유리를 설치했습니다. 최초로 주문받자마자 고객이 보는 앞에서 마는 ‘즉석김밥’을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2년 후 가맹사업을 시작해 김밥 전문점 중 최장수 브랜드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농구 코트 위 179cm 전사였던 모델 이혜정


배우 이희준(40)의 부인 모델 이혜정(35)은 키 179cm의 농구선수 출신입니다. 초등학생 때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국가대표를 거쳐 19살이 되던 해인 2002년부터 3년간 여자 프로농구팀 우리은행 소속으로 뛰었습니다.

출처: KBS '우리동네예체능' 캡처
우리은행 소속 프로 농구선수로 활동하던 이혜정의 모습.

주변 반대가 컸지만 과감하게 농구선수 생활을 그만둡니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여자로서 꾸미고 싶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은퇴 후 가장 먼저 바꾼 것은 헤어스타일이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수해오던 숏컷에서 머리를 길렀습니다. 처음으로 공들여 화장도 했다고 합니다. 운동을 관두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각종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아르바이트 중 주변에서 ‘모델을 하지 그러냐’는 제의를 듣습니다. 스물다섯의 나이였지만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모델 아카데미를 찾아갔습니다. 아카데미 교육을 마친 다음,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출처: 에스팀엔터테인먼트 공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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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델 일을 시작할 때 운동 근육 때문에 살이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모델 일을 시작할 때 지방과 근육을 합해 30gkg 감량했다”고 했습니다. 발달한 근육 때문에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갔던 것입니다. 2010년 해외에 진출해 크리스찬 디올·루이비통·피에르가르뎅 등의 유명 브랜드 쇼에 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렸습니다.


한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면서 훈련했던 사람들. 운동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글 jobsN 김지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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