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 없이 하루에 물 2리터 넘게 마셔야 하는 직업입니다

조회수 2020. 9. 27. 22: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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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시음하는 물만 2리터, 술·담배도 삼가야 하는 직업입니다

식당에 들어가면 그는 정수기부터 찾는다. 물을 마실 때는 한 모금씩 머금고 맛을 느낀다. 마트에 가면 전 세계 청정구역에서 취수했다는 물부터 장바구니에 담는다. 물맛을 평가하기 위해 자극적인 음식은 피한다. 흡연이나 음주도 삼간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물맛을 연구하는 게 직업이다. 그는 2005년 정수기·공기청정기 등을 만드는 코웨이에 입사했다. 1989년 정수기를 처음 만든 코웨이는 30년 동안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왔다. 서울 관악구 코웨이 환경기술연구소에서 14년 차 물맛연구원 김성환(42)씨를 만났다.

출처: jobsN
김성환 연구원.

-물맛 연구에 발 들인 계기는.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식약처에서 2년 정도 식품오염물질에 대해 연구했다. 2005년 7월부터 코웨이에서 일했다. 정수기 물맛이 변했다는 불만이 들어올 때가 있었다. 고객이 물맛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찾기 위해 2009년 물맛 연구를 시작했다.”


-물맛을 연구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정수기 신제품을 출시할 때 개발부서에서 물맛연구소에 맛 평가를 의뢰한다. 그러면 실험 대상 정수에서 시료를 추출한다. 물맛연구원 30여명이 시료를 맛보고 소비자 기호도를 예측한다. 안전을 위해 오염물질은 없는지 유해성 검증도 한다. 실험 결과를 개발부서에 보내주면 물맛에 대한 적합도를 최종 판정하고 제품을 출시한다.”

코웨이 제공

-정수는 생수와 어떻게 다른가.


“생수는 지하 깊은 곳에 고여있는 암반수나 지층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용천수 등을 간단한 정제 과정을 거쳐 만든다. 수돗물을 걸러서 만든 정수보다 미네랄·유기물질 등 영양성분이 풍부하다. 특정 생수의 맛을 좋아하는 소비자는 정수는 마시지 않는다. 반면 영양을 따지기 보다는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고객은 정수를 마신다.


생수나 정수가 아닌 지하수를 직접 끌어와서 마시는 사람도 있다. 지하수는 위생에 취약하다. 가축을 키우는 농장 인근에서는 지하수에서 비소와 같은 발암 물질이 나오기도 한다.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물이 '맛있는' 물인가.


"물맛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사실상 없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맛있는 물’이란 이물질을 잘 걸러낸 깨끗하고 순수한 물이라고 본다. 물맛을 떨어뜨리는 정수기의 기계적 결함도 없어야 한다. 온도를 기준으로 물맛을 구분하기도 한다. 대체로 물이 차가울수록 청량하다고 느낀다.”

출처: jobsN

-물맛을 떨어뜨리는 물질도 있나.


"환경부에서 정한 수질 기준이 있다. 소독 물질인 잔류 염소나 철·구리·황산이온 등이 물맛을 떨어뜨린다. 가정에 공급하는 수돗물은 수질 기준을 충족한다. 하지만 공급 과정에서 노후한 배관 때문에 이물질이 들어갈 수 있다. 녹이 슨 배관에서 철·망간 등이 나온다. 이런 물질은 정수기를 통해서 거를 수 있다.


정수기 자체에 문제가 있을 때도 있다. 가령 고무 재질의 부품 때문에 물에서 고무 냄새가 날 수 있다. 고객 불만이 들어오면 어떤 부품이 물맛을 이상하게 만드는지 찾아내서 부품을 교체하거나 새로 개발한다.”


-물 시음은 얼마나 하나.


“회사 제품뿐만 아니라 경쟁사에서 출시한 정수기의 물맛도 평가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물 섭취 권장량은 성인 기준 하루 1.5~2리터다. 나는 시음하는 물만 하루 2리터가 넘는다. 한 달에 2~3번 정기적으로 제품 평가를 한다. 평가를 준비할 때는 그보다 더 많이 마실 때도 있다.”


-직업병도 있나.


"식당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어떤 정수기를 쓰는지 확인한다.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실 때도 그냥 마시지 않는다. 잠시 머금고 있다가 맛을 느끼면서 들이킨다. 마트에 갈 때 못 보던 생수가 있으면 한 번씩 사서 먹어보는 습관도 있다.”

출처: 코웨이 제공
서울대 연구공원에 위치한 코웨이 환경기술연구소. 1층에 물맛연구소가 있다.

-훈련은 어떻게 하나.


“연구소 냉장고에 전 세계 각지에서 출시한 생수가 있다. 물맛 감별 훈련을 할 때는 테이블에 생수 열 개를 늘어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 제품 감별은 물론 목넘김은 어떤지, 단맛과 짠맛은 어느 정도 나는지도 확인한다. 정수의 맛도 평가한다. 정수기의 필터 종류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물의 특징도 있나.


“생수를 예로 들면 유럽 제품은 미네랄이 많이 들어 있다. 미네랄의 특성에 따라 고소한 맛이나 쓴맛이 나는 생수도 있다. 구리·망간·철 등은 물에서 쓴맛이 나게 만든다. 유럽 생수는 물 속에 녹아 있는 칼슘·마그네슘 등의 총량을 뜻하는 총용존고형물(TDS) 농도가 150~3000mg/ℓ로 높다. 그래서 일반 소비자도 제품의 특징을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생수는 대부분 총용존고형물 농도가 150mg/ℓ 이하다. 산지 고유의 맛이 두드러지지 않아서 일반 소비자는 맛을 구분하기 어렵다. 우리는 총용존고형물 농도가 낮은 물의 맛이 어떤 물질과 상관관계가 있는지 연구한다.”


-애로사항은.


“몸 관리가 중요하다. 감기에 걸리면 물맛을 제대로 못 본다. 과음하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것도 맛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흡연도 주의해야 한다. 무조건 금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하루 1~2개비는 핀다. 회식 때도 술을 먹기는 한다. 다만 정기평가 기간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을 때가 있다.”

출처: jobsN
정수 샘플을 내려다보고 있는 김성환 연구원.

-물맛연구원을 꿈꾸는 후배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실험·분석이 주 업무다. 선천적인 감각도 필요하지만 훈련이 더 중요하다. 환경부 국립환경인력개발원에서 주관하는 환경측정분석사 자격증을 따 놓으면 유리하다. 수질 분석 방법이나 오염 기준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에서 발급하는 워터소믈리에 자격증이 있으면 물맛 평가나 실험결과 분석 방법을 이해하는 데 유리하다.”


-앞으로 계획은.


“요즘 플라스틱 쓰레기나 미세먼지 등 환경 문제가 화제다. 프라이팬이나 아웃도어 의류 코팅재로 쓰이는 화학물질인 과불화화합물처럼 수질을 오염시키는 새로운 물질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정수 연구가 중요하다. 매번 알프스 청정 구역에서 얻은 비싼 물을 사 먹으려면 부담스럽다.


연구를 통해 물맛에 대한 과학적인 기준을 세우고 싶다. 우리 연구소에서 세운 기준이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코웨이는 최근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가 실시한 국내 주요 정수기 물맛 비교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물맛 1위’ 기업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도 더 깨끗하고 맛있는 물을 만들고 싶다.”


글 jobsN 송영조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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