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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다' 소리들으며 망해가던 휠라 되살린 '신의 한수'

조회수 2020. 9. 27. 23: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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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 간 것들의 세련된 귀환, 산업 뒤흔드는 '뉴트로'
전(全) 산업에 미치고 있는 '뉴트로' 영향
중장년층이 아닌 10~20대가 열광하는 복고

‘복고’는 늘 유행이다. 과거를 소환해 추억에 젖게 만든다. 그런데 복고를 부르는 말은 변한다. 과거에는 복고, 얼마전까지 레트로였다가 최근에는 ‘뉴트로(newtro)’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새로움을 뜻하는 new와 복고를 의미하는 retro의 합성어다.


복고와 다른 점이 있다면 뉴트로는 옛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10·20대의 열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뉴트로가 패션·식품·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망해가던 휠라에 새숨 불어넣은 ‘뉴트로’


유행에 민감한 패션 분야에서 뉴트로에 먼저 반응했다. 스포츠 브랜드 휠라가 2018년 내놓은 운동화 ‘디스럽터2’는 뉴트로 열풍을 주도했다. 1997년 출시했던 디스럽터의 후속 버전으로 휠라의 간판 운동화다. 투박하고 못생겼다고 해서 ‘어글리 슈즈’라고 불린다. 밑창이 얇고 전체적으로 날씬한 ‘컨버스 운동화’에 질린 1020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150만 켤레가 팔렸다. 미국 신발 전문 매체 풋웨어뉴스는 ‘2018 올해의 신발’로 휠라의 운동화 디스럽터2를 선정하기도 했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사람들은 휠라 로고를 ‘90년대에나 입던 촌스로운 브랜드’로 인식했다. 당시엔 스포츠 브랜드 로고를 옷이나 운동화, 가방에 크게 박는 게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2003년 휠라코리아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2007년 이탈리아 본사를 인수했지만 나이키나 아디다스보다 ‘한수 접고 들어가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었다. 

출처: 휠라코리아 제공
올해의 신발로 선정된 휠라 디스럽터2.

휠라는 주 고객층을 1020세대로 겨냥해 막 일어나고 있던 뉴트로에 집중했다. 발렌시아가 등 명품업계에서 주도하고 있던 뉴트로 감성을 대중적으로 확산했다. 뉴트로는 죽어가던 휠라를 되살렸다. 2016년 9671억원이었던 휠라코리아 매출은 2017년 2조5303억원을 기록했다. 1년 새 162%나 올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18억원에서 2175억원으로 1743% 늘었다. 2018년에도 계속 고공 성장할 전망이다. 2018년 3분기 매출액은 7259억으로 전년동기 대비 27.5% 상승했다. 영업이익은 739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07.8% 증가했다.


휠라 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브랜드와 SPA 브랜드에서도 뉴트로 디자인이 대세다. 주로 바람을 막기 위한 얇은 나일론 소재에 목 부분을 감싸는 ‘아노락’도 다시 등장했다. 아노락은 몇년 전만해도 등산을 하거나 스키탈 때 입는 아재 패션 취급 당했다. 촌스러움의 대명사 ‘벙거지 모자’도 돌아왔다.


기업 간 ‘협업’도 뉴트로 현상을 잘 보여준다. 패션·뷰티·문화업계에서 전통 브랜드와 협업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화관 CGV는 2018년 12월 26일부터 2019년 1월 4일까지 밀가루 ‘곰표’ 20kg 포대에 팝콘을 담아주는 이벤트를 벌였다. 한개 5000원씩 하루 100개만 한정 판매를 했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소셜 미디어에선 팝콘을 산 ‘인증샷’이 쏟아졌다.  

SNS에 올라온 곰표 팝콘 인증샷들.

‘곰표’를 만드는 제분회사 ‘대한제분’은 67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기업이다.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문을 열었다. 곰표 밀가루는 마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으로 1020세대에게 그리 인상 깊은 브랜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엔 1020세대 사이 ‘핫(HOT)한’ 브랜드로 떠올랐다. 앞서 곰표는 화장품 회사 스와니코코랑 화장품을 만들고, 의류 브랜드 4XR과 협업해 티셔츠를 만들었다. 전혀 상관 없는 밀가루 회사와 뷰티·패션의 조합, 익숙하지만 다르게 해석한 곰표 이미지가 1020세대에게 신선하게 느껴진 것이다.


더 세련되게 돌아온 옛것


사라진 제품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게임분야에서는 ‘복각판’이 붐이다. 복각판은 원래 ‘원형을 모방해 다시 판에 새긴다’는 뜻이다. 요즘엔 과거 인기를 끌었던 가정용 게임기를 다시 출시하는 것을 말한다.


닌텐도가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2016년 닌텐도는 30주년을 기념해 ‘패미컴’ 복각판을 내놨다. 패미컴은 80년대 유행했던 가정용 게임기 ‘패밀리 컴퓨터’를 말한다. 2016년 판 패미컴은 과거보다 크기가 작고 TV 대신 USB나 HDMI로 PC에 연결해 쓴다. 2016년 10월 1일 아마존 재팬이 온라인 예약 판매를 시작한지 한나절만에 예판이 끝났다. 기세에 힘입어 2017년에는 1990년대 16비트 게임인 ‘슈퍼 패미컴’의 복각판을 내놨다. 

출처: 닌텐도 공식 홈페이지
닌텐도 가정용 게임기 복각판 '닌텐도 패미컴 미니'와 '닌텐도 슈퍼패미컴 미니'.

'비디오 게임'을 대중화한 아타리와 닌텐도의 라이벌 세가(SEGA)도 연달아 고전 게임을 담은 복각판을 발매했다. 소니도 2018년 12월 플레이스테이션1의 복각판을 내놨다. 재믹스의 복각판 ‘재믹스 미니’도 곧 판매할 예정이다. 게임 마니아들은 ‘전설이 돌아왔다’며 열광한다. ‘손맛’을 그리워하는 40·50대에게는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10·20대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019년 외식 트렌드로 ‘뉴트로 감성’을 꼽았다. '추억의 음료'였던 '따봉'과 '봉봉'이 돌아오고, 출시한 지 20년이 넘은 갈아만든 배가 다시 주목받는다. 서울을지로와 종로 익선동, 춘천 육림고개, 광주 1913송정역시장, 경주 황리단길 등이 뉴트로 상권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지역들은 몇년 전만 해도 ‘지는 상권’이었지만 낡고 오래된 느낌을 새롭게 해석해 1020세대 사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CU 공식 인스타그램

뉴트로 소품도 인기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이 대표적이다. 젊은 세대에게 일력은 낯선 물건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봤을 법하거나 한번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종이를 가득 채운 오늘의 날짜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재미에 일력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인터넷에 ‘일력’을 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옛날 모습 그대로 얇은 종이에 숫자를 찍어낸 일력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디자인을 가미해 내놓기도 한다.


광주 1913송정역시장에서 문구점 역서사소를 운영하는 김진아 대표는 “일력이 이색적이어서 그런지 선물용으로 많이 나간다”며 “젊은 세대와 어르신이 함께 일력을 찾는데, 이 모습을 보니 세대를 잇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 가게는 사투리를 활용한 문구류를 판다. 레트로에 이은 뉴트로 열풍 수혜를 받고 있다.


6개 구멍을 뚫어 종이를 끼워쓰는 ‘6공 다이어리’, 2000년대 초반 유행한 홀로그램을 이용한 디자인도 뉴트로 바람을 타고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다. 

출처: 조선DB, 1913송정역시장, 역서사소 제공
(왼쪽부터 시계방향) 근대 개화기의 분위기로 꾸며진 서울 익선동 경성과자점의 모습.익선동의 또다른 뉴트로 상점인 '거북이 슈퍼', 광주 1913송정역 시장의 식당인 '한끼라면', 역서사소의 사투리 일력.

김난도 교수가 쓴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도 뉴트로를 집중 조명했다. 레트로가 과거를 재현해 ‘친밀함’을 어필한다면, 뉴트로는 익숙하지 않은 옛것이 주는 ‘참신함’이 매력이다. 책에서는 뉴트로를 “그동안 기성세대가 늘 새로 등장하는 10대들의 힙합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뉴트로는 밀레니얼 세대가 기성세대의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된 첫 역전 현상”이라 설명했다.


옛것을 다른 방식으로 즐긴다는 게 핵심이다. 20대 트렌드를 연구하는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이를 ‘낯설렘’이라 명명했다. ‘낯선 경험이 주는 설렘’을 말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관객수 1000만명이 코앞에 있다. 주 관객층은 20~30대였다. 

MBC 스페셜 '내 심장을 할 퀸' 캡처.

CGV리서치센터가 영화 개봉일인 2018년 10월31일부터 12월4일까지 관객층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대가 28.8%, 30대 26.8%, 40대 27.4%, 50대 12.8%로 2030세대가 퀸의 일대기를 즐겼다. 복고 영화에 새로운 관람 방식을 결합한 ‘싱어롱’이 인기 요인이다. 관람객들은 영화관에서 함께 퀸의 노래를 불렀다. 옛날 가수의 옛날 이야기를 다뤘지만 마치 영화 속 퀸의 공연을 보는 관중이 된 듯한 새로움에 젊은 세대가 열광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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