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으로 가는 지름길? 이 서울대 의대생 3명은 달랐다

조회수 2020. 9. 27. 23: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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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3인방의 꿈, '리틀 닥터스' 이름으로..
인도의 한센병 환자 돕는 한희원, 정성혜, 고현석 씨
왼쪽부터 정성혜, 한희원, 고현석 씨. 이들은 인도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리틀플라워 병원으로 봉사활동을 다니고, 영문으로 된 논문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이곳의 사정을 널리 알리면서, 환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식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학부모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화제다. 드라마 속 학부모들은 의대 입학을 특권층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긴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서울대 의대생들이 있다. 본과 2~3학년에 재학 중인 한희원, 정성혜, 고현석 씨가 그들이다.


이들은 ‘리틀 닥터스’라는 이름으로 카카오의 사회공헌 플랫폼 ‘카카오 같이가치’에서 모금 중이다. 목표 금액은 588만 5916원. 환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농장의 건강한 소 다섯 마리, 스카프 공장의 3년치 목화와 누에고치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이 돈이 재원이 돼 병원에 전속 의사를 두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한다.


이들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 의대 강의실에서 만났다. 3학년인 고현석 씨가 병원에서 실습 중이라 저녁 시간에야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의대 공부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세 사람은 국제보건에 관심 있는 서울대 의대와 간호대 학생 모임인 ‘국제보건포럼’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가까워졌다. 한센병에 먼저 관심을 가진 사람은 한희원 씨다. 본과 1학년 때인 2017년 10월, 선배 의사의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소록도 병원을 찾았다가 한센병 환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됐다고 한다.


“수십 년째 소록도에서 사시는 70대 이상 어르신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의 마비된 손을 주물러드리면서 혹독했던 삶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한센병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다른 나라는 어떤지 궁금해졌습니다.”

2018년 여름에 리틀플라워 병원을 찾은 세 사람.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세계 한센병 환자의 60%가 인도에 살고 있었다. 한씨는 그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도의 한센병 관련 단체 20군데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2018년 1월 겨울방학을 이용해 인도를 찾았다. 한 단체의 도움으로 인도 북부 바하르 지역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실태를 돌아보게 됐는데 그중에 한센병 환자를 돕기 위해 32년 전에 설립된 리틀플라워 병원이 있었다. 2018년 7월에는 정성혜, 고현석 씨도 함께 리틀플라워 병원을 찾았다.


“바하르는 한센병 환자 2000여 명이 모여 사는 지역입니다. 그중에서도 리틀플라워 병원은 환자들에게 일자리와 집, 교육을 제공하면서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정신적 건강까지 돌보는 전인적인 치료를 하고 있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한센병은 약만 잘 복용하면 쉽게 치료되고 전염성도 사라지지만, 피부 괴사 등으로 장애가 남아 사회적으로 고립됩니다.”(정성혜)


“리틀플라워 병원은 치료가 끝난 환자들의 자립을 돕습니다. 병원이나 스카프 공장, 젖소를 키우는 농장 등에서 일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병원에 정작 의사는 없어요. 간호사와 물리치료사밖에 없고, 간단한 처치는 환자끼리 해줍니다. 의사의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병원비까지 지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병원의 재원을 마련해 의사를 고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고현석)


논문과 다큐멘터리, 28명 인터뷰 기반

리틀플라워 병원의 병실.

현재 인도의 한센병 환자는 인구 1만 명당 0.66명 정도. 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이면 공식적으로는 종식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지원이 끊기거나 줄어든다. 한센병 환자들은 더욱더 소외되고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인도에 먼저 다녀온 한희원 씨가 그 사정을 국제보건포럼 친구들에게 알렸고, 정성혜, 고현석 씨가 뜻을 같이하면서 함께 인도로 향했다.


“학생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의논하다 ‘논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병원이 환자들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할지 영어로 논문을 써서 전 세계에 알리자’는 의견이었죠. 논문과 함께 다큐멘터리도 제작하면 더욱 생생하게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한희원)


문제는 지원금이었다. 세 사람은 이 아이디어로 서울대 학부생 연구지원 사업에 지원했고, 다행히 사업에 선정돼 지원금을 받아 인도로 향했다. 인도에서 리틀플라워 병원 운영자, 환자, 가족 28명을 인터뷰한 후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6분여 분량의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환자 자녀를 교육하기도 한다.

인터뷰 중 “이 병원에 오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는 환자가 많았다. 한센병에 걸리자 가족과 사회는 그들을 철저히 외면했고, ‘병을 퍼뜨릴지 모른다’며 독살하려는 사람까지 있었다. 치료 후에도 취업은 불가능했고, 구걸 말고는 먹고살 길이 없어 우울증에 시달렸다. 리틀플라워 병원은 이들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병원에 온 후 일자리와 집,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자녀를 교육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이제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세 사람은 현재 보건 관련 국제학술지에 영어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카카오 같이가치나 페이스북, 인터넷사이트에서 글과 동영상으로 이 병원을 소개하고 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서

왼쪽부터 한희원, 고현석, 정성혜 씨.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는 세 사람. 그들은 왜 의사가 되려고 했을까? 한희원 씨는 고등학생 때 인턴으로 건강캠페인 다큐멘터리 촬영을 보조하다 국제보건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 진학해 보건과 영화를 전공했다. 존스홉킨스대학에 다니던 시절 “의사가 되면 현장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겠다”는 생각을 했고, 서울대 의대로 편입했다.


정성혜 씨는 중학생 때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누군가를 도우면서 느끼는 행복을 알게 됐다. 사람을 치료하고 돕는 의사야말로 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여겼다. 고현석 씨는 고등학생 때 캐나다 출신 의사 노먼 베순에 관한 책을 읽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가 인간뿐 아니라 사회의 질병까지 고치려 한 점에 특히 감동해 국제보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세 사람 모두 목적의식이 뚜렷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했고, 어려운 입시 과정을 뚫고 서울대 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국제보건 전문가가 되든, 가난한 나라에 가서 의료활동을 하든, 우리나라에서 의사로 활동하면서 해외 봉사를 다니든 ‘내가 왜 의사가 되려 했는지’ 그 목적의식은 잊지 않겠습니다.”


글 jobsN 이선주

사진 jobsN 김선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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