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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검사·변호사들이 많이 찾는다는 을지로의 한 가게

조회수 2020. 9. 27. 23: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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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부럽다? 한국엔 104년째 가업 이어온 이곳 있습니다
방금 나간 손님은 왼쪽 어깨가 오른쪽에 비해 약간 처졌어요. 그럴 땐 겉보기에 티가 안 나게 왼쪽 품을 약간 여유있게 만들어요. 그냥 줄자로 치수만 재는 게 아니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니까요.
출처: jobsN
이경주 종로양복점 대표.

그는 인터뷰 내내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너무 많이 해서 이제는 지겹다고 했다. 그러던 중 손님이 임시로 바느질한 옷을 입어보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은 옷을 입어보더니 바지 길이가 조금 더 짧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의 요구대로 옷감에 표시를 해 나갔다. 일을 시작하자 굳어 있던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경주(70) 종로양복점 대표. 1916년 이 대표의 할아버지 고(故) 이두용(1881~1942)씨가 서울 종로 보신각 인근에 양복점을 열었다. 이 대표는 아버지 고(故) 이해주(1914~1996)씨의 뒤를 이어 3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104년째다. 그는 1970년부터 50년 동안 맞춤 정장을 만들고 있다.

출처: jobsN

-이시영 초대 부통령, 김두한도 다녀갔다고 들었습니다.


“1920년 서울 5대 사립중학교였던 배재·양정·보성·중앙·휘문중학교 교복을 우리가 만들었어요. 1927년 북한 함흥과 개성에 지점까지 냈죠. 1940년대 들어서 보신각 인근 가게 자리에 은행이 들어섰어요. 종로1가로 가게를 옮겼죠. 당시 종로1가는 ‘정치1번가’라 불렸어요. 각 부처 장관을 포함해 수많은 정치인이 다녀갔습니다.


이시영 초대 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입’이라 부르던 김성진 전 문화공보부 장관 등이 왔죠. 2000년 재개발 때문에 광화문 새문안교회 자리로 옮겼고, 2010년 이곳(을지비즈센터)에 왔어요. 요즘은 변호사·검사 등 법조인이 많이 와요. 연령대는 40대 이상 중년 고객들이 많죠. 최근 20~30대 젊은 손님이 늘었어요. 비율로 따지면 7대3 정도죠. 청년들은 주로 예복을 맞추려고 양복점을 찾습니다.”

출처: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2015년 개봉한 '킹스맨'에서 양복점은 주인공의 아지트로 등장했다.

-맞춤 양복은 어떻게 만듭니까?


"먼저 손님이 샘플집을 보고 원단을 골라요. 가게에 옷감을 다 가져다 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줄자로 신체 치수를 재요. 그리고 재단지에 옷본을 그리죠. 본격적으로 옷을 만들기 전 종이에 본을 뜨는 겁니다. 옷본을 바탕으로 손님이 고른 원단을 재단하고 임시로 대강 바느질을 해요. 이 과정을 ‘가봉’(시침질)이라고 부릅니다.


4~5일 뒤 손님이 가봉한 옷을 직접 입어보고 치수를 조정합니다. 이때 바지 길이를 줄이기도 하죠. 피팅이 끝나면 바느질을 시작합니다. 완성까지 열흘 정도 걸려요. 정장 한 벌 맞추려면 세 번 가게에 방문해야 합니다. 원단을 고르는 일부터 정장 한 벌을 완성하기까지 3주 정도 걸려요.”

출처: jobsN
종로양복점은 6·25전쟁 당시 대구에서 영업을 이어나갔다.

-비용이 궁금합니다.


"원단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100만원대부터 고급 원단으로 만든 옷은 수천만원까지 하죠. 상한선이 없어요. 원단의 질은 ‘수’로 따져요. 양모 1g을 늘려서 100m까지 늘어나면 ‘100수’라고 불러요. 150m까지 늘어나면 150수라고 하고요. 숫자가 높을수록 실이 가늘고 부드러워요. 우리 가게에서는 110수 이상 양복을 만들죠. 정장뿐만 아니라 코트와 턱시도도 제작해요. 100% 캐시미어 원단으로 만든 코트는 300만원 정도 합니다.


사회초년생은 순모 원단이 필요 없어요. 제일모직에서 만든 ‘템테이션’이라는 원단이 있어요. 양모 95%·폴리에스테르 5% 혼방으로 순모보다 급이 한 단계 낮지만 가격대가 합리적이죠. 순모는 내구성이 좀 약해요. 활동성 있는 젊은이들이 입기는 부담스럽고 가격도 높은 편이죠. 템테이션 원단으로 만든 정장 한 벌 가격은 100만원 정도입니다. 40~50대 손님한테는 ‘VIP’나 ‘슐레인’ 등 100% 양모 원단을 권해요. 가격대는 130만원부터 비싼 건 수백만원도 합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게를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업계에서 일하려고 했죠. 그런데 1970년 아버지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어요. 아버지가 가게를 못 나가니까 제가 일을 돕다가 그대로 눌러앉았죠. 처음에는 손님한테 퇴짜를 많이 맞았어요. 열 벌 중 다섯 벌은 환불해달라고 했어요.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단골 손님과 함께 나이드는 멋도 있을 것 같아요.


“30년째 양복점을 찾아 주시는 단골 손님이 있어요. 이런 손님과는 친구로 지내죠. 그런데 양복점은 식당과 달라요. 식당은 90살 노인도 단골이라며 찾아가죠. 양복은 직장에서 은퇴하고 나면 새로 맞춰 입을 일이 없어요. 40~50년 단골이 생기기 힘듭니다.”

출처: jobsN
그는 "아무리 재단사 마음에 들어도 손님이 만족하지 못하면 실패한 옷"이라고 말했다.

-50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손님도 변했나요?


“손님들이 예전에 비해 여유가 생겼어요. 30년 전에는 빨리 만들어 달라고 재촉하는 사람이 많았죠. 너무 시달려서 손님이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명절 앞두고 일주일씩 밤을 지새워 일하는 날도 다반사였죠. 요즘은 완성까지 한 달 걸린다고 말해도 말없이 기다려주는 손님이 많아요. 경제가 발전하면서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거죠.”


-맞춤 정장이 비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맞춤 정장은 기성복과 달라요.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하죠. 손님한테 꼭 맞는 옷을 만들어 드려야 하니까요. 기성복보다 비싸다면서 불평하시는 분들도 있죠. 그건 옷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비싸야 해요.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제품은 다 수작업으로 만들어요. 재봉사 없이 혼자 한 달 동안 양복 한 벌을 만드는 장인도 있어요. 그런 게 진짜 명품이죠.”


-손님은 얼마나 오는지 궁금합니다.


"일주일에 2~3명 정도 옷을 맞추러 와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하루에 10명씩 옷을 맞추러 왔어요. 그럼 그날 가게에 방문하는 손님은 30명입니다. 치수 재려고 오신 분, 가봉한 옷 입어보려고 오신 분, 완성한 옷 찾아가시는 분도 있으니까요. 그때는 한 달에 200~300벌씩 만들었죠. 일이 바빠서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결혼식에도 못 갔어요.”

출처: jobsN
(왼)원단 샘플집. (오)가봉한 옷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재단을 배우려는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일에는 단계가 있어요. 사람도 태어나면 기어가는 것부터 익히고 걷고 뛰는 걸 차례로 배우잖아요. 재단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늘 잡는 법부터 배워야 해요. 바느질부터 익혀야 나중에 재단을 해도 탈이 안 나요.


재봉사가 바느질한 옷을 손님한테 바로 드리는 게 아닙니다. 옷이 잘 만들어졌는지 눈으로 보고 확인하죠. 그런데 바느질을 모르면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몰라요. 그럼 재단사라고 부를 수 없죠. 사람마다 다르지만 10년은 배워야 해요. 저고리(자켓) 뿐만 아니라 코트·턱시도 만드는 법도 익혀야 하니까요.”


-언제까지 재단사로 일할 생각이신가요.


“죽을 때까지 해야죠. 손님이 찾아주시는데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더 이상 방문하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가게에 나올 생각입니다.”

출처: jobsN

-가게를 물려줄 생각은 없으십니까?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어요. 자식한테 가게를 물려주고 싶었는데 아들이 화가의 길을 걷겠대요. 자기는 그림 그리는 게 좋대요. 옛날에는 자식을 많이 낳았잖아요. 어머니도 6남매를 키우셨어요. 요즘은 많아봐야 둘이나 셋이니까 어쩔 수 없죠. 지금 제 밑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 중 착실한 사람이 있으면 물려줄 수도 있겠죠.”


-104년째 가업을 이어온 양복점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아버지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옷의 주인은 맞춰 입는 사람이지 만들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아무리 재단사 마음에 들어도 입어본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면 실패한 옷인 거죠. 가게의 철학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지성무식’(至誠無息)입니다. ‘지극한 정성에는 쉼이 없다’는 뜻이죠.”


그는 오전 10시에 가게에 나와 오후 6시30분에 퇴근한다. 요즘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수영을 한다. 맞춤 양복을 해 입을 때 다시 찾겠다는 말에 그는 “양복 맞출 일 있는 사람이나 소개해 달라”며 멋쩍게 웃었다.


글 jobsN 송영조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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