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30억..30살, 3년차 에이스 직원의 반전 전공

조회수 2020. 9. 27. 23: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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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30억 끌어들인 판교의 음대 출신 3년차 '에이스' 직원

저온의 물에서 숙성한 돼지고기로 미국·베트남 ·태국에 진출한 '숙달돼지', '수요미식회'에 소개돼 소고기 맛집으로 인정받은 '삼정하누', 초고화질(UHD) CCTV 분석기술로 서울교통공사와 손잡은 영상분석업체 핀텔 ….


최근 입소문을 탄 이 스타트업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일반인 투자자를 모아 성장 속도가 빨라진 것. 와디즈는 2012년 출범해 지금까지 6400여개의 투자 프로젝트를 오픈했다. 1금융권 자금조달이 어려운 스타트업, 중소기업들이다. 이들이 지금까지 와디즈에서 모은 금액은 1084억원이 넘는다.


작년 와디즈에서 투자 유치에 성공한 숙달돼지(펀딩액 4억원), 삼정하누(2억5000만원), 핀텔(3억 3000만원)은 3년차 직원 박나래(30) 투자 심사역이 발굴한 기업이다. 전공이 독특하다. 음대 국악과 출신이다. 그녀는 지난해 23개의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해, 이 가운데 15개에서 목표금액을 넘어섰다. 총 투자 유치액은 30억원이다. 내로라하는 금융사 출신이 모인 투자팀(9명)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실적으로, 사내에서 화제였다.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지 못한 기업에게 성공의 기회를 열어주는 일,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첫 펀딩에 성공한 기업이 '2차 펀딩을 하고 싶다'고 연락해올 때가 있는데요. 큰 희열을 느낀답니다." 음대 출신으로 투자 심사역의 길을 걷는 박나래씨를 경기도 판교에 있는 와디즈 사무실에서 만났다.

출처: 크리에이터 D
박나래 심사역이 본인이 발굴한 '삼정하누' 한우 사진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작정 전화해 찾아가서 묻는다


-투자 심사역의 하루를 소개해주세요.
"오전에는 밖에서 평소 눈여겨 봤던 기업의 CEO나 재무·마케팅 담당자를 만나고, 오후에 회사로 복귀하는 게 보통이에요. 회사로 복귀해서는 각자 추천한 기업이 왜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투자 상품으로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동료 선후배, 대표님과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투자 프로젝트는 어떤 과정을 거쳐 오픈하나요.
"세가지 과정을 거칩니다. 가장 중요한 게 첫째인데요.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기업이나 제품에 해당는지'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이를테면 일상 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장님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기업체를 운영하는지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 두번째는 니즈 확인과 투자 조건 협의에요. 예를 들어 고깃집 2호점을 열기 위해 펀딩을 받고 싶은 대표님이 있다면,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인지, 배당이나 이자 같은 투자 조건은 어떻게 설정할지 꼼꼼히게 함께 논의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본인 생각과 다르게 의사를 표현하는 경우나, 실적 같은 것을 숨기고 있지 않은지 살펴봅니다. 거짓이 있으면 일을 진행할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내부 투자 심사위원회를 열어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투자 받고 싶어하는 기업이 많지 않나요? 꼭 발품팔며 발굴해야 하나요?
"회사 사이트에 매달 100여개 넘는 기업이 투자받고 싶다고 의뢰하고 있어요. 최근 더 늘었어요. 크라우드펀딩 투자 규제가 완화됐거든요.(동일 기업 투자 한도 200만원→500만원·연 투자한도 500만원→1000만원) 그래서 요즘은 의뢰가 200~300건으로 급증했어요. 매달 검토하는 기업은 1000여개에 육박합니다.하지만 이중 실제 심사를 거쳐 투자 프로젝트가 오픈되는 기업은 5~10개에 그칩니다. 사업 목적 등 문제 때문에 다 투자 받을 수는 없는 거죠. 결국 투자 심사역으로서의 성공은 발굴능력에 있습니다. 좋은 기업을 발굴해 투자를 성공시켜야 투자 받는 기업과 우리 회사 모두 좋습니다."


직원 100여명의 와디즈는 펀딩 투자(상품을 구매하는 리워드형 포함)쪽 인력만 50여명에 이른다. 박 심사역처럼 전공과 무관하지만 현장에서 배우며 경력을 만들어가는 심사역이 여럿 있다.

출처: 와디즈 캡처
박 심사역이 발굴해 펀딩 목표 달성에 성공한 스타트업들. 숙달돼지(왼쪽), 삼정하누(가운데), 핀텔

-심사역마다 담당 분야가 정해져 있나요.
"딱히 경계는 없어요. 저같은 경우 지난해 F&B, 반려동물, IT, 문화콘텐츠 등 전분야를 들여다봤어요. 올해는 전시 분야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기업 발굴 원칙은요.
"굳이 표현하자면 '사람 모이는 곳에 돈이 있다'는 거요. 각종 박람회, 컨퍼런스는 웬만하면 다 가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아요. 또 철저한 검색과 '무작정 전화통화 해 모르는 것 묻고 찾아가기'를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몰리는 산업을 조사해 보고, 온라인상에서 제품 사진이 퍼지고 입소문도 퍼졌지만 기업 자체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 있는지 찾아봅니다."


-예를 하나 들어주세요.
"고깃집 '삼정하누'요. 숙성 한우, 드라이에이징 고기가 인기를 끌면서 백화점 코너까지 생기는 걸 눈여겨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삼정하누란 브랜드를 가진 소고기 도매업체 '클리버'를 온라인에서 발견했죠. 소고기 경매사 출신 전문가가 고기를 선별해 숙성해서 특유의 진한 고기향이 매력인 곳이었죠. '소고기 업체도 일반인 투자를 받는 사례를 만들자'고 8개월 간 설득해 투자까지 성공시켰습니다."


삼정하누는 지난해 보통주(주당 47만5000원) 투자로 오픈해 2억 5080만원(지분율 5%내외)이 몰리며 목표금액을 달성했다. 투자금 대비 최대 80%까지 소고기 외식권을 제공한 게 마케팅 흥행 요소였다.


고양이 3마리 키운 경험으로 반려견 업체 설득


좋은 심사역이 되려면 각자 가진 경험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심사역은 고양이 3마리를 키우고 있는 경험을 활용해, 고양이 닭가슴살 간식업체를 섭외했다. 3억원 넘는 자금 유치로 이어졌다."반려동물 간식 박람회를 찾았더니 한 기업 부스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는 거에요. 알고보니 닭가슴살을 갈아 고양이들이 쭉쭉 빨아먹을 수 있는 스틱형 간식을 만드는 업체였어요. 평소 저도 구입하던 업체라 신뢰를 갖고 있는 기업이었는데, 박람회 간 김에 대표님 만나보니 마침 투자 유치를 고민 중이시더라고요. 설득해서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투자조건은 어떻게 짜나요?
"통상 주식은 전체 지분의 10% 내외로 설정합니다. 채권은 연 12% 금리 까지 발행해요. 예를 들어 된장찌개 백반을 파는 '마마 된장'이라는 식당 사례를 보면요. 연 10% 채권으로 1억원을 모았어요. 연 10%가 높아보이지만 요식업은 은행 대출을 받기 힘든데다, 받는다 해도 금액이 3000~4000만원선에 머물러요. 그렇다고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가면 훨씬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야 하구요. 그에 비하면 '마마 된장'은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돈을 빌린 거죠."

출처: 와디즈 제공
와디즈의 투자팀 직원들

펀딩에 실패하는 기업도 많다. 그러면 오랜 기간 프로젝트에 공을 들인 투자 심사역 마음도 허탈해진다.


-실패하는 이유는 어떤 것이 있나요.
"투자조건을 잘못 설정하는 경우가 가장 많아요. 투자자들은 투자 수익(EXIT)을 어떻게 얻을지 가장 궁금해 합니다. 주식 형태로 투자한다면 배당이나 인수합병(M&A) 가능성을 기대하죠. 그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그러면 투자조건을 보완해 다시 펀딩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취업 어려운 대금 연주자 꿈 포기…투자 심사역의 길로


국립국악단원을 꿈꾸던 음대생이었다. 국립 국악중고교에서 대금을 공부하고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에 진학했다.


-다른 길을 걷고 있네요.
"대금 연주자가 꿈이었지만 대학에서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최고의 연주자가 되지 못하면 음악인의 길을 걷기 어렵다는 사실을요. 경영대 수업을 들으면서 음악과 예술, 문화를 접목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 끝에 이 일을 선택한 거에요."


-다른 졸업생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요.
"과 동기 50~60명 가운데 지금 악기 하는 친구는 4~5명뿐이에요. 10%만 전공을 살렸고, 나머지는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나 직장인이 됐어요. 저같은 경우도 부모님은 아쉬워하셨지만, 후회는 없어요. 대학까지 배운 음악과 예술 경험은 언젠가 비즈니스에 쓰일 때가 있을 거에요."

출처: 박 심사역 제공
대금을 연주하던 과거 박 심사역 모습

와디즈 입사 전 다른 일을 한 경험이 있다. 2014년 대학 졸업 후 이화여대 인재개발원에 들어가 예체능 출신 구직자 진로개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일했다. 2016년 문화콘텐츠사인 '문화예술 놀다'로 옮겨 기획업무를 하다, 그해 말 와디즈에 지원했다.


-금융이나 경제를 전공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합격했나요.

"프리젠테이션 면접에서 닥나무를 채취해 한지 원단을 만드는 업체 사례를 분석해 발표했어요. 한지를 이용해 젓가락을 만드는 아이템이 있는데, 괜찮은 펀딩 사례가 될 수 있다고요. 예술 쪽 전공과 관련있는 업체죠. 그러면서 지금 생각하면 시쳇말로 '무때뽀 정신'으로 얘기했어요. '악기와 예술을 10년 이상 공부했고 접촉한 예술계 인사도 많으니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당당하게 어필했더니 덜컥 합격했습니다."


입사 후 상품 리워드팀에서 일하다 4개월 만에 투자 심사역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영업이익, 순이익, 고정자산, 우선주, 배당주 등 모르는 용어가 태반이고, 기업과 미팅 때면 상대 질문에 얼버부리기 일쑤였다. 한 기업 대표와 면담에서 "나이도 어린데 뭘 알긴 알고 온 거야?"라는 면박을 당한 적도 있다.


-적응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나요.
"최초 6개월간 정말 많이 울었어요. '진작 금융공부 해둘 걸…' 후회도 들었구요.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 없었죠. 기업 미팅 때면 동석한 저희 팀장님 말씀을 모조리 녹음했어요. 퇴근해 집에 오면 녹취를 풀고 밤새 한 문장 한 문장 검색해가며 무슨 말로 대화했는지 공부했어요. 엑셀, 감사보고서와 씨름한 건 물론이구요. 그렇게 2년을 했더니 지금은 기업 대표와 만나 투자 조건을 회계적으로 짤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게 됐습니다. 공부는 끝이 없어요. 지금도 팀장님 말씀 녹음해 듣고 있습니다."

출처: 크리에이터 D
박 심사역

'내가 발굴한 기업의 성장에 희열을 느껴야 한다'


-투자심사역이란 직업을 가지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요.
"묻는 것이 일상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상분석업체 핀텔의 경우, 4번이나 회사 찾아가 어떤 기술인지 과외받다시피 했어요. 두번째로 기업 성장에 희열을 느낄 수 있어야 해요. 스크린골프 센서 업체 '스마트골프'란 곳을 담당한 적이 있는데요. 기업가치가 3년 전 120억원에서 지금은 300억원으로 뛰었어요. 코넥스 상장준비 중인데요. 이런 이야기 들을 때 가장 뿌듯해요. 여기서 보람을 느껴야 즐겁게 일할 수 있습니다."


-재테크 수단으로 크라우드펀딩 상품 투자를 설명해 주세요.
"저 스스로 여유 자금 상당액을 크라우드펀딩에 투자하고 있어요. 다만 스타트업 주식 투자는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투자이면서, 투자금 회수까지 3년~5년이 걸려요. 그래서 처음 투자 한다면 전시회 같은 문화콘텐츠 업체에 대한 채권 투자를 추천드려요. 흥행 성적에 따라 조기에 투자금 회수액이 결정되거든요."


박나래 심사역이 준비한 '그대, 나의 뮤즈2' 전시회 투자 프로젝트가 24일 오픈한다. 움직이는 그림 전시회에 투자하는 것이다. 박 심사역은 "투자자분들이 쉽게 접근하면서 많은 수익도 올릴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계속 발굴해 나가겠다"고 했다.


글·사진 jobsN 크리에이터 D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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