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SM 다니던 그녀 인생 바꾼 기사 하나
어린이용 콘텐츠 유통 플랫폼 ‘마고스튜디오’ 전수진 대표
엔터 회사 다니다 시민단체 만들며 유아 문제에 관심
"K팝 같은 ‘K동요’ 만들어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그때는 제 인생의 변곡점이었죠.”
여기서 말하는 '그때'는 마고스튜디오 전수진(42) 대표가 전혀 생각치 못한 인생의 항로를 걷게 된 2012년을 말한다. 여느 때처럼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어내려가던 중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경기도 여주에서 4세 여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였다. 더 울화가 치밀었던 대목은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피해 여아를 성적 비하 대상으로 삼는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당시 네 살 딸아이를 키우고 있던 전 대표는 그때 심경을 한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이것이 계기가 돼 그는 '시민모임 발자국'이란 아동성폭력추방시민단체(시민모임 발자국)를 만들기에 이른다. 이를 계기로 평범한 워킹맘에서 시민단체 발기인으로 변모했던 그가 몇 년 뒤 또 다른 명함을 들고 등장했다. 어린이용 오디오 콘텐츠를 다루는 플랫폼 회사인 ‘마고스튜디오’를 세웠다. 전 대표는 “내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는 건전한 동화와 동요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음원사이트에서 ‘곰 세 마리’ 찾으면 검색 곡만 수천 개
전 대표가 마고스튜디오를 만든 계기는 딸 때문이다. 차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지루해하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일이 많아졌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동영상을 보여 주는 것이 마뜩지 않았지만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오디오 동화’로 생각이 번졌다. 이것으로 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전직인 엔터업의 경험을 십분 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벅스뮤직을 거쳐 SM엔터테인먼트에서 10여 년 간 콘텐츠 비즈니스 업무를 담당했다.
“엄마 입장에서 아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음악, 영상 등의 콘텐츠 비즈니스를 10년 정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디오 콘텐츠 시장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어린이용 영상을 다루는 회사는 많은데 오디오 동화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는 없어요. 영상을 만드는 곳에서 오디오 콘텐츠를 곁가지로 다루는 정도죠. 음원사이트에 ‘곰 세 마리’라는 동요를 검색하면 같은 음악이 천 개가 넘게 나옵니다. 같은 음악을 유통사들이 리패키지라는 명목으로 업로드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시장의 문제점을 발견하니 하루라도 빨리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건전함이라는 덕목을 갖춘 동요와 동화를 공급하겠다는 것이 전 대표 철칙이다. “초등학생 유튜버가 생겨날 정도로 영상 중심의 세상이 됐어요. 긍정적인 기능도 있겠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더 많아요. 4~7세가 주로 이용하는 우리 플랫폼을 통해 나가는 콘텐츠는 무조건 건전성을 갖고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고스튜디오 홈페이지에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도덕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라고 명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도덕성에 대한 부분은 어떤 것보다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끔 고객들이 콘텐츠에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성차별적인 내용도 지적해줍니다. 이런 부분도 최대한 바로잡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K동요’로 세계 무대 진출하는 것이 장기 목표
전자책 분석 사이트 굿이리더닷컴은 전 세계 오디오 콘텐츠 시장 규모를 3조 원대(2016년 기준)로 추산한다. 이 시장은 2013년 이후 3년 연속 20%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AI) 스피커의 확산이 오디오 콘텐츠 시장 성장에 가속도를 붙여줄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마고스튜디오는 앱으로 1만여 개 동화와 동요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레몽’이라는 앱을 내놨다.
“동요, 동화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한국동요문화협회에 속한 작사, 작곡가들과 협력 관계를 맺은 상태이고 지난해 4월부터 레몽 앱을 통해 요일별로 동화를 연재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시장은 서서히 열리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네이버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인 오디오 클립에도 우리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구독자 수가 1만 2000명을 넘어섰습니다. 2018년 콘텐츠 유통으로 일으킨 매출은 2017년 대비 5배 증가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장 속도는 더디지만 AI 스피커에 들어가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오디오 콘텐츠 시장은 확대될 겁니다."
마고스튜디오는 최근 네이버로부터 콘텐츠 투자를 받았다. 네이버가 제공한 전래동화와 명작동화 100편을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현지어로 번역해 사용자들에게 공급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 K팝처럼 우리 동요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게 목표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게 동요야?’ 싶을 정도로 어른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좋은 곡들이 많아요. 다른 나라말로 번역해 둔 작품도 준비 중입니다. 노래도 중요하지만 누가 부르느냐도 관건입니다. 노래를 잘 하는 어린이를 발굴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 같아요. 가창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울림을 주는 노래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돈 벌어 ‘어린이 위한 재단’ 만드는 게 꿈
전 대표는 지난해부터 마고스튜디오에 전력하기 위해 7년 전 만든 ‘시민모임 발자국’의 대표직을 내려놨다. 전 대표는 ‘익명에 숨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처벌하자’는 데 뜻을 함께 한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아 시민 1000여명의 이름으로 고발장을 제출, 법원은 악성 댓글러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는 단체 대표를 맡으면서 아동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에 참여하고 아동 성폭력 범죄 형량 강화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등을 벌이며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있는 발자국을 떼는데 일조했다.
지금은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단체 일에서 손을 떼긴 했지만 어린이를 위한 일을 하겠다는 뜻은 변함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꿈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막연하게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죠. 제 꿈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나올 무렵이었습니다. 장기적으로 일을 한다면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자 마음먹었어요. 시민모임 발자국이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이죠. 근데 이 꿈이 굳은 의지와 좋은 사람들 몇몇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돈을 많이 벌어서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싶은 것이 제가 바라는 궁극적인 꿈입니다.”
글 jobsN 김지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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