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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수천명 떠나보낸 그녀의 당부 "자책도, 원망도 마세요"

조회수 2020. 10. 4. 14: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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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둔 환자의 마지막 함께하는 일, 23년째 하고 있습니다
환자 아픔 공감해주고 용기 주는 일
미술·원예치료와 미용 봉사도 한다
인턴·수습기간도 있다는 호스피스 봉사

“40대 위암 말기 환자였습니다. 암을 너무 늦게 발견해 항암 치료도 못 했죠.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병상에서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환자 어머니도 십수년 전 위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죽음을 앞두고 자책하거나 원망하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죠.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자주 이야기를 나눠요. 환자분들이 겪는 고통을 최대한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김영원(76)씨는 호스피스 봉사자다. 호스피스란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의 고통이나 불안을 덜어주는 일을 말한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암 병동에서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먹고 씻는 일을 돕는다. 1995년 고려대 사회교육원에서 호스피스 1기생 교육을 수료하고 23년째 봉사를 해왔다. 지난달 5일 열린 ‘2018 전국자원봉사자 대회’에서 최고상인 국민훈장 석류장도 받았다. 그에게 호스피스 봉사에 대해 물었다.


-호스피스 봉사는 어떻게 시작했나.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기 전 원불교 봉사단체 '봉공회'에서 8년 동안 회장직을 맡았다. 국내외 재해·재난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했다. 1995년 고려대학교에서 호스피스 봉사 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는 호스피스 봉사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나도 잘 몰랐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라 생각하고 지원했다.”


-하루 몇 명의 환자와 만나나.


“봉사자는 40명 정도다. 일주일에 한 번 4~7시간 봉사한다. 하루 5~6명이 활동하는데 한 명당 환자 30여명을 돌본다. 이들 중 호스피스 봉사를 거부하는 환자도 있다. 치료 중이거나 자고 있어서 만나지 못할 때도 있다. 실질적으로 하루에 대면하는 환자는 6~10명이다.”

출처: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제공
'2018 전국자원봉사자대회'에서 석류장을 받았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영원씨.

-호스피스 봉사자의 일과는.


“보통 오전 10시에 나와 환자 명단과 심리 상태나 특이사항 등을 써 놓은 기록지를 확인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환자 심리 상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본다. 기록지를 보고 환자를 만나면 대화가 비교적 수월하다. 병실을 방문해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 주 업무다. 남에게 말 못하는 아픔을 듣고 공감해준다. 식사나 목욕을 돕기도 한다.


요일별로 미술·원예치료나 종이접기·마사지·전통차 모임 등 취미 활동도 한다. 미용 봉사도 한다. 해당 분야에 자격증이 있는 봉사자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은 호스피스 봉사자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환자와 빨리 친해질 수 있다.”


-주로 어떤 사람이 호스피스 봉사를 하나.


“봉사자 40여명 중 10명이 고려대학교 간호학과 학생이다. 방학 등 시간이 있을 때 병원에 와서 봉사한다. 학기 중에는 3~4명 정도 활동한다. 간호학과 학생이 아닌 일반인 봉사자는 30여명이다. 은퇴한 60대가 많다. 요즘은 60대까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학생이 아닌 일반인 봉사자를 찾기 힘들다. 병원에서는 65세까지 교육 신청을 받고 있다. 정년은 없다.”

조선DB

-봉사자는 어떻게 뽑나.


“매년 7월 중순 병원에서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한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이틀 동안 수업한다. 이 교육을 이수해야 호스피스 봉사를 할 수 있다. 이론 수업을 들으면 인턴 과정을 거친다. 선배 봉사자 옆에서 12번 정도 봉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배운다. 인턴 과정이 끝나면 수습 기간도 있다. 직접 환자와 대화하고 기록지도 써본다. 봉사 자격이 있는지 선배가 심사한다. 고칠 점을 말해주기도 한다.


수습 기간은 봉사자마다 다르다. 젊은 사람들은 빨리 배운다. 연령대가 높은 봉사자는 연륜이 있어서 환자와 일찍 친해진다. 인턴과 수습 과정을 거친 봉사자를 정회원으로 뽑는다. 연령대가 높은 봉사자들 중 힘들다는 이유로 인턴·수습 기간에 그만두는 분이 많다. 요즘은 학생 말고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일반인 봉사자가 드물다. 그래서 걱정이다.”


-경제적 지원은 없나.


“고려대 안암병원에 호스피스회가 있다. 의료진 등 병원 직원 400여명이 매달 2000원씩 후원한다. 후원금은 호스피스 봉사에 필요한 원예·미술치료, 종이접기 등에 필요한 재료 구입비로 쓴다. 따로 돈을 받지는 않는다. 돈을 받으면 봉사가 아니다. 병원에서 점심 식사는 제공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호스피스보조활동담당인력도 있다. 간호사를 도와 환자를 간병한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 중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에서 시행하는 교육을 40시간 이수해야 한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려면 60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들은 따로 수당을 받지 않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한다. 교육까지 따로 받아가며 힘든 일을 하는 분들이다.”

본인 제공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했을 때 몸져 눕기 전까지 그만두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했다. 23년 동안 봉사를 하면서 ‘힘들다’, ‘어렵다’와 같은 표현을 쓴 적이 없다. 나이가 있어서 몸이 불편하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환자 앞에서 봉사가 힘들다고 말할 수 있나. 결국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남을 돕는 일이지만 환자를 보면서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죽음을 앞두고 자책하거나 원망하는 환자가 많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자주 대화한다. 그래도 쉽지 않다. 환자가 겪는 심리적인 고통을 최대한 덜어드리고 싶다.”


글 jobsN 송영조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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