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일본에서 실패했습니다" 국립대 98학번 선배의 현실 충고

조회수 2020. 10. 4. 15:36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일본 취업 1년 만에 돌아온 K씨 사연
[해외취업 허와 실④]일본 취업 1년 만에 돌아온 K씨 사연
사전 현지 기업 정보 없이 갔다가 낭패
“알선업체 정보 파악 필수⋯한국서 일본계 기업 취업 시 도움”

<편집자주> 2017년 해외 취업자 수가 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국내 고용 한파가 계속되면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일본, 싱가포르, 미국 등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들도 있지만 적응에 실패해 한국으로 U턴하는 쪽도 적지 않습니다. jobsN이 해외취업 성공, 실패담을 들어봤습니다.


“해외 취업은 여행 가듯 준비하면 안 돼요.”


K(39)씨는 14년 전 일본으로 취업을 하러 갔다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장 큰 실패 요인은 취업하는 기업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시작한 데 있다. 일본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갖고 일본 취업을 감행했다는 점도 문제였다. K씨는 “오래전 경험이지만 해외 취업을 생각하는 이들이 준비해야 할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며 jobsN과 만나 실패담을 풀어놨다.(K씨 요청으로 인터뷰는 익명 처리합니다.) 

게티 이미지 뱅크

“한국보다 나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은 독”


K씨는 지방 국립대 공대 98학번으로 한 번의 휴학 없이 졸업했다. 졸업을 하고 학사장교로 입대한 때가 2002년. 제대 후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해외 취업이 눈에 들어왔다. 화학공학을 전공했지만 이와 관련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하면서 살까 궁리하다가 해외 취업에 관심이 생겼어요. 제가 취업을 준비하던 2000년대 초만 해도 연봉, 생활환경 등 일본 근무 여건이 한국보다 좋았어요.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막연하게 외국에서 일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K씨는 한국산업인력공단 도움을 받아 군대에서 틈틈이 일본 취업을 준비했다. 당시 산업인력공단은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원서를 받아 일본 기업과 연계해주는 일을 주선했다. K씨는 2004년 6월 말 제대를 하고 한 달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일본 도착 하루 만에 그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당시 들어간 곳은 한국에 본사를 둔 회사의 일본 지사로, 4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영세업체였다. “기업에 대해 상세하게 조사를 해보지 않고 간 것이 문제였어요. 한국인 사장과 재무담당자, 또 다른 한국인, 일본인 직원까지 4명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저를 포함한 3명의 인턴이 들어갔어요. 출근하자마자 우리 앞에 전화번호부가 던져졌습니다. 회사가 만든 제품을 살 의향이 있는지를 전화하는 업무였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해 하루 종일 전화만 돌리는 일이었죠. 이 정도 규모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회사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K 씨뿐만이 아니었다. “한 친구는 일본에서 떡 상점을 운영한다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사무 업무를 볼 것으로 생각하고 왔지만 정작 일본에 가서 그 친구가 한 일은 호떡을 굽는 일이었다고 해요. 떡집 앞에서 임시로 호떡을 팔고 있었는데, 그 일을 맡겼다는 겁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대학 졸업하고 호떡 구우려고 한국에서 대학 나와 어렵게 일본까지 간 것은 아니잖아요. 그때 한국에서 같이 간 친구들이 들어간 업체들은 직원 수 10명 미만의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었어요. 저를 포함해 같은 회사에 온 3명은 공단 측에 항의를 했고 결국 100일을 못 채우고 다른 회사로 이동했습니다.”


K씨가 일본에서 두 번째로 간 직장은 한국인 사장이 직원 20여 명을 두고 운영하는 여행사였다. 여행업 뿐 아니라 연예인 초청 행사 등 이벤트 업무로 사업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K씨에게 사장 비서 역할이 떨어졌다. “당시 한류 열풍으로 한국 연예인을 불러 팬미팅을 하는 행사를 일본에서 많이 진행했어요. 여행업도 시장 상황이 괜찮았고요. 사장 비서를 하면서 여행, 이벤트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죠. 미팅에 사장과 항상 동반하다 보니 일본어 실력도 빠르게 늘었고요. 문제는 일에 대한 만족도가 커지면서 또 다른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일본에서 지낸다면 한국 가족, 지인들과 관계를 이어가지 못할 텐데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 지인과 함께하지 못하고 타국에서 살아가는 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저는 ‘못한다’였습니다. 그곳에서 9개월 일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

게티 이미지 뱅크

“장기 투숙자 아닌 생활인으로 현지 경험해봐야”


K씨는 스스로를 “일본 취업 실패 사례”라고 말했다. 그가 꼽은 실패 원인은 크게 ‘기업에 대한 무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부족한 언어 실력’이었다. “가고자 하는 기업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갔던 점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며 "내가 살고자 하는 나라의 문화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만 갖고 시작했다. 그때 숙고했더라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인터넷 환경이 발달해 알고자 한다면 알아볼 수 있는 정보들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제가 취업하려는 회사에 대한 정보를 알기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든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알아보든 제대로 된 정보를 최대한 많이 파악해야 합니다. 당장 일본 현지인들에게 회사 이름을 말했을 때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고 한다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죠. 회사의 홈페이지조차 갖추지 않고 있는 곳은 숙고를 해 볼 필요가 있고요."


취업 알선업체 얘기만 믿어선 안된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산업인력공단이 운영하는 해외 구인, 구직 정보 통합망인 ‘월드잡 플러스’에는 일본 기업들이 규모에 관계없이 채용 공고를 올릴 수 있다. 기업에 대한 검증은 본인 몫이란 얘기다. “정부가 알선해주는 곳이니까, 취업 중개업소가 알아서 소개해주는 곳이니까 믿을만한 곳이겠다라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위험해요. 나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노동 착취를 일삼는 악덕기업을 뜻하는 ‘블랙 기업’에 취업해 피해를 본 사례들이 여전히 많아요. 덜컥 취업했다가 계약서에 기재하지 않은 근무를 강요한다든가 수당을 제대로 계산해 주지 않는 등의 얘기가 나오는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요. 블랙 기업은 일본에서 인력을 구하기 어려우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어요."


‘일본을 좋아하는 것’과 ‘일본에서 취업해 사는 것’이 다르다는 점은 K씨가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다. 향수병까지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도 그에겐 부담이었다. “방학 때마다 찾은 일본이었지만 여행자였을 때 보는 시각과 실제 생활인으로 살아보며 느낀 것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게다가 전 일본어를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았지만 능숙하게 하지는 못했거든요. 일본에서 살면서 일가친척이나 친구들과의 교류를 할 수 없다는 점도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어요. 한마디로 한국에서의 인연을 놔두고 일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쉽지 않았어요. 일본 취업을 생각한다면 일본에서 6개월이라도 살아보고 나서 결정을 해도 늦지 않는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게티 이미지 뱅크

현지 취업 경험 살려 일본계 한국지사 취업


일본에서 1년을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K씨는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 입사를 준비했다. 현재 일본에 본사를 둔 ICT 기업에서 근무 중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 일본계 반도체 회사에 취직했고 일본계 전자제품 기업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안착했다.


“일본에서 지내는 1년 동안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일본어 공부를 확실히 해 둘 수 있었던 것은 큰 도움이 됐어요. 외국계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던 계기도 됐고요. 반도체 회사에 근무할 때는 일본 현지에 발령받아 2년 정도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한때 생활을 했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곧바로 일본 기업으로 취업할 수 없다면 거꾸로 한국에 지사를 둔 일본 기업에 취직해 경험을 충분히 쌓은 뒤 일본 본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도 방법일 수 있어요." 


글 jobsN 김지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