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는 사람이냐'는 소리들었는데..12년을 했습니다

조회수 2020. 10. 4. 15: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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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음악 사이에서.. 순수 DJ로만 12년
'꿈과 음악 사이에' 허윤희 PD 겸 DJ
목소리·사연·음악 3박자로 동시간대 1위
방송 초기에는 혹독한 신고식 치르기도···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오늘을 마무리하고 내일을 맞이하는 시간에 CBS 라디오 ‘꿈과 음악 사이에(꿈음)’ 허윤희(37)씨가 늘 찾아온다. 그는 보기 힘든 순수 DJ다. 대개 라디오 DJ는 가수나 아나운서, 배우가 맡는다. 하지만 허씨는 입사할 때부터 ‘DJ’로 시작했다. 꿈음을 2007년 1월 1일에 시작했으니 2019년 새해가 밝으면 12년을 꽉 채운다. 5년전부터는 PD도 맡고 있어 작가와 단둘이서 프로그램을 꾸린다.


라디오 ‘황금시간대’로 부르는 밤 10시 방송의 강자다. 수년째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내주지 않고 있다. 10년전부터 동시간대 경쟁자는 아이돌 슈퍼주니어, FT아일랜드의 이홍기, 이적, 타블로 등 팬층이 두꺼운 연예인들이었다. 지금 그의 경쟁자도 아이돌 B1A4의 산들, NCT, 아나운서 배성재 등 쟁쟁한 유명인사들이다. 꿈음은 왁자지껄한 토크쇼나 게임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와 음악만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았다. 2018년 한국방송대상 진행자상을 받았다.

출처: jobsN
'꿈과 음악 사이에' 허윤희 PD 겸 DJ.

아나운서 꿈꾸다 전문 DJ로


그가 방송을 시작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어쩌다가”라며 되묻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의외의 직업을 택했다는 뜻이다. “남 앞에 나서서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소심한 성격이었어요.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방송아카데미에 등록해 아나운서 스피치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아나운서를 꿈꿨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1년 내내 시험을 보러 다녔다. 지상파부터 지방 방송국까지 아나운서를 뽑는 곳 어디든 문을 두드렸다. 아나운서는 경쟁률이 높은 분야다. 방송사마다 1년에 남녀 각각 1명씩을 뽑는다. 그마저도 뽑지 않고 넘어가는 해도 많다. 지상파 방송국의 경우 경쟁률이 2000 대 1에 달한다.


“계속 떨어지니까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아나운서의 경우 대학에 들어올 때부터 아나운서 하나만 바라보고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늦은 편이었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도전해 합격한 곳이 라디오 방송국인 경기방송이었다. 2005년 3월 허씨는 그렇게 처음 방송에 발을 들였다. 경기 지역의 주요 이슈와 시정 운영 방향을 다뤘다. 1인다(多) 역을 맡았다. 현장에 나가 취재를 하고 원고를 만들어 방송 진행을 했다.


“제 성격과 정반대 일이었어요. 예를 들어 경기도에 어떤 정책을 두고 이슈가 있을 때 시민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택시를 아무거나 잡아타고 기사에게 물어보거나 마트에서 장보고 나오는 분을 붙잡아 인터뷰를 요청해요. 첨엔 수없이 매몰차게 거절당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정말 힘들었는데, 차츰 익숙해졌죠.”

출처: 허윤희씨 제공
2018년 한국방송대상 진행자상을 받았다.

이후 음악방송 진행자 제안을 받고 ‘감성터치’를 진행했다. 진행자·PD·작가로 일하며 1인 제작 시스템 노하우를 쌓았다. 2006년 CBS에서 ‘음악전문 MC’를 뽑는다는 공고가 났다. CBS 라디오 음악방송을 진행할 소속 프리랜서를 뽑는 자리였다. 허씨가 3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


그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처음 맡은 프로는 오후 4시 ‘가요 속으로’. 청취자가 중장년층으로 주로 1970~1980년대 노래를 틀었다. 팬층이 두꺼운 라디오는 진행자가 바뀌는 일에 청취자의 반감이 큰 편이다. 게다가 당시 허씨는 20대 중반이었다. ‘어린 친구가 옛날 노래 뭘 아느냐’는 반대에 부딪혔다. ‘순수 DJ’라는 점도 난관이었다. 보통 DJ 외에 본업이 따로 있는 유명인사가 진행을 맡는다. 하지만 허씨는 이름도 낯설고 본 적 없는 신인 DJ였다. 허씨에게 ‘뭐 하는 사람이냐’, ‘부끄럽지 않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실제로 학교 시험공부하듯 방송을 진행했다. 노래방 책자를 펼쳐두고 ‘ㄱ’부터 ‘ㅎ’까지 7080 가요를 공부했다. 스스로 좋아하는 노래보다 부모님 어깨너머 들었던 노래들 위주로 틀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결코 즐길 수가 없었다.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 조목조목 따져서 작성한 2~3페이지 분량의 편지도 받았어요. 방송을 사랑하는 분들의 애정 어린 의견이었죠. 그래서 원색적인 비난보다 더 가슴 아팠어요. 저는 누가 뭐라 하면 더 주눅 들어요. 비판을 많이 받다 보니 위축돼서 목소리도 작아졌습니다. 그러니 또 ‘목소리는 왜 그렇게 기어들어가냐’, ‘졸린다’는 악평을 듣는 악순환의 반복이었죠.”

허윤희씨 제공

“작은 확신만 심어드릴 뿐”


3년 같은 석달을 보내고 ‘꿈과 음악 사이에’ 진행을 맡았다. 그가 학창시절 즐겨 듣던 90년대 음악을 주로 다뤘다. 연령층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그제야 맞는 옷을 입은 허씨는 훨훨 날았다.


“이전에는 악평이 많았다면 꿈음에서는 큰 반응이 없었어요. 청취율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입소문만으로 서서히 단골 청취자들이 생겨났다. 진행을 맡은 지 4~5년째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90년대 음악을 주로 틀던 꿈음은 이제 2000년대 노래도 즐겨 튼다. 청취자들은 한때 자주 들었지만 잊고 있던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 ‘아 맞다, 이 노래 있었지’라며 반가움을 느낀다. “되도록 음악을 다양하게 듣고 저만의 목록을 쌓아둡니다. 오래 하다 보니 이젠 ‘어떤 사연에 뒤에 붙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되도록 3주~한달 내 틀었던 음악은 다시 틀지 않으려 합니다. 또 장르·템포·가수 남녀 성비 등을 생각해 다양하게 구성합니다.”


막상 음악을 틀고도 DJ는 음악을 즐길 여유는 없다. “음악 나갈 때 원고 보고, 사연도 봐야 하고 노래도 골라야 해요.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죠.”


하루에만 1000~1500개씩 사연이 쏟아진다. 라디오 DJ의 특권은 청취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특히 감수성이 발달하는 밤 10시에서 자정 사이에는 더욱 속 깊은 사연을 들을 수 있다. 청취자들은 친구나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과 걱정을 털어놓는다. 아예 ‘이건 윤희씨에게만 이야기할게요’라고 시작하는 사연도 있다. 10년 동안 청취자들의 울고 웃는 인생사를 함께 했다. 허씨가 사연을 고르는 기준은 ‘공감’이다. 

10년 전에는 청취자가 보낸 사연 속 고민에 답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현명한 답변을 주고 싶어 빨리 서른이 넘기를 고대하기도 했다. ‘답을 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이젠 공감할 줄 안다.


“오히려 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제3 자라서 고민을 털어놓기에 부담이 없어요. 청취자분들에게 제가 답을 드리진 못해요. 마치 일기를 쓰듯 사연을 적으면서 자신의 고민을 구체화할 수 있어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죠. 사연을 보면 모두 답을 갖고 계세요. 저는 작은 확신만 심어드릴 뿐입니다. 대개 우리는 작은 힘이 부족해 앞으로 나가지 못하니까요.”


그는 가방 속에 사연이 적힌 A4용지를 한뭉치씩 넣고 다닌다. 때론 사연을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 보관하기도 한다. “방송 중 사연을 소개해도 깊게 읽을 수가 없어요. 그때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사연을 소개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나중에 읽어보면 눈에 들어오는 사연들이 있어요.”


그는 최근 11년간 꿈음에 도착한 사연을 추리고 모아 ‘우리가 함께 듣던 밤’이란 에세이를 냈다. 방송에 소개하지 못했거나 소개해도 곱씹을 여유가 없던 사연 뒤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그가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한 책이기도 하다. 그는 방송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책에는 작은 부품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 추억, 휴가철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빗방울 소리, 쿠바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와의 펜팔 이야기도 들어있다.


라디오 사연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요즘엔 라디오 그 자체만을 즐기기보다는 야근을 하거나 시험공부를 하면서 듣는 분이 많아요. 유독 힘들다는 사연을 자주 봅니다. 임용고시나 경찰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 직장 그만두고 다른 길에 도전하는 분이 많아요. 또 가정에 집중하다 새직업을 찾았다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 분들의 사연도 자주 보입니다.”

출처: 허윤희씨 제공
청취자가 보내준 손글씨와 함께.

뚜렷한 목표 좋지만 여러 경험해봤으면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 제약은 없다. 방송 시작 1~2시간 전쯤 스튜디오에 도착해 방송을 준비한다. “계약상 월급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방송국 진행자들 끼리도 서로 몰라요. 제 경우 일당으로 계산해서 월급을 받습니다. 가끔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등의 일을 맡기는 하지만 어쨌든 주 수입은 꿈음이죠. 저는 방송 일에 몸담는 거 자체가 행복해요.”


라디오 특유의 감성 탓에 DJ를 꿈꾸는 학생이 많다. 실제 그에게 ‘어떻게 하면 DJ가 될 수 있냐’는 메일과 쪽지가 쏟아진다. 하지만 허씨가 이렇다 할 답을 줄 수는 없다. 대부분 라디오 DJ는 아나운서·가수·배우 아니면 적어도 업계에서 유명인사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라디오 DJ로 시작해 DJ만 본업으로 하는 건 그가 유일하다.


“저는 운좋게 여기까지 왔어요. 아나운서라는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오히려 제게 맞는 일을 찾은 거 같아요. 라디오 방송을 재밌어하고 잘한다는 걸 첨엔 스스로 잘 몰랐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릴 때 이적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매일 듣고 녹음해서 담날에 또 듣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꿈 많은 청춘들이 뚜렷한 목표를 갖는 것은 좋지만 하나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리지 않기를 바란다. “‘이게 좋아’라고 하지만 직접 겪어보면 아닌 경우도 많았어요. 꿈음 사연 중에도 몇년을 매달려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했는데 겪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달라 그만뒀다는 분이 있어요. ‘이 길만 가겠어’라고 생각하기보다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경계를 명확히 나누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 같아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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