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람' 소리들으며 해녀학교 갔던 남자, 지금은..

조회수 2020. 10. 4. 16: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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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그만두고 해녀학교 입학해 해녀공연 만든 남자의 정체
문화 콘텐츠 스타트업 ‘숨비’ 이한영 대표
연 매출 2억에서 30억으로
한국의 ‘하우스오브댄싱워터’가 꿈

"휘이~ 휘이이~"


제주 바다 한켠에서 들을 수 있는 숨비소리다. 숨비소리는 해녀가 물 밖으로 나와 숨을 뱉을 때 나는 소리로 휘파람과 비슷하다. 숨비는 '숨을 비우다' '잠수하다'라는 뜻의 제주말이다. 이를 이름으로 내세워 해녀라는 우리 문화를 알리고 전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있다. 바로 이한영(44)대표가 이끄는 문화 콘텐츠 스타트업 '숨비'다.


숨비는 2012년 국내 최초 해녀 공연을 만들었다. 해녀 공연은 해녀들이 바다에서 하는 물질을 하나의 공연으로 꾸며 수조 안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공연뿐 아니라 제주 해녀 문화체험, 해녀 채취 식품 가공 판매 등을 통해 해녀를 알리고 있다. 이를 토대로 지금은 스토리텔링 수중공연, 홀로그램을 적용한 혼합현실 수중공연을 펼치는 문화 콘텐츠 회사로 자리 잡았다.

출처: jobsN
(왼쪽부터) 전호진 공연 총감독, 이한영 대표, 윤장서 본부장

제약회사 다니다 해녀학교로


이한영 대표는 젊었을 때부터 혼자서 작은 사업을 시작하고 접길 반복했다. 그러다 체계가 잡힌 곳에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회사에 들어갔다. 한 제약회사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다. 입사한 지 3년 뒤, 반복적인 회사생활에 지치고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해 회사를 나와 작은 출판사를 차렸다. 생각처럼 사업은 성장하지 못했다. 결국 이마저도 그만뒀다. 이런 삶에 지친 이 대표는 문득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


"육지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주에 대한 로망을 가슴감에 품고 있습니다. 저도 그중 하나였죠. 학생 때는 수영 선수로, 커서는 스킨 스쿠버 다이빙 강사로도 활동했으니 해녀처럼 물질을 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해녀학교가 생겨 지원했습니다. 지금은 평균 경쟁률 10대1이지만 제가 지원할 때만 해도 미달이었어요. 쉽게 들어갔죠. 그러나 주위에서는 저를 미친 사람으로 봤습니다. 남자가 해녀학교를 가겠다니 이상하게 본 거죠."


2008년 5월 해녀학교에 1기 교육생으로 입학했다. 잠수법, 호흡법, 해녀 장구 사용법 등 물질을 배웠다. 4개월 교육 수료 후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녀를 제주도 할머니들의 생계수단으로 봤지 문화로 생각하지 않았다. 교육을 받으며 해녀가 힘써서 지켜야 할 전통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표는 해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100만 서명 운동 등에 동참했다.

출처: 숨비제공
해녀복을 입은 이 대표(좌), 해녀들과 함께(우)

제주해녀문화보존회와 숨비 창업


2009년에는 해녀를 보존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문화로 만들기 위해 제주해녀문화보존회를 계획했다. 2010년까지 해녀를 연구하는 대학교수, 관련 행정가, 제주시 시장 등을 찾아가 자문을 하고 함께 하자고 설득했다. 2011년 비영리단체인 제주해녀문화보존회를 설립했다.


해녀를 알릴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다가 공연이 떠올랐다. 해녀가 물속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흥미로운 방법으로 알릴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아쿠아리움 수조에서 열리는 물질 시연회 형식으로 기획을 했습니다. 숨비의 첫걸음이었죠. 더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서울랜드 소속 전호진 공연 총감독님을 섭외했어요. 이후 인포테인먼트 쇼(infotainment show) 라는 장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수조 밖에서 해녀에 대해 설명하고 수조 안에서는 해녀 어머님들이 그들의 하루 일상을 주제로 물질 연기를 펼치셨습니다."


처음에는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꺼렸다고 한다. 옛날에 물질하면서 입었던 '소중기'라는 옷은 물에 들어가면 다 비쳤다고 한다. 그래서 물질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한 것이다. 지금처럼 고무 옷을 입어도 옛날 생각 때문에 쉽게 부끄러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연을 거듭할수록 자녀와 손주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공연을 즐기시기 시작했다.


해녀 공연은 제주도에 오면 꼭 봐야 할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수익은 모두 해녀에게 지급했다. 지금까지 누적 관객은 수백만 명.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은 수조 안에서 연기를 펼쳤던 해녀의 딸이었다고 한다. "해녀 어머님의 딸이 공연을 보러 왔어요. 공연을 보면서 펑펑 우시더군요. 그분은 그날 어머니가 이렇게 깊고 차가운 바다에서 일하는 모습을 처음 본 것입니다. 단순히 문화를 알리는 것보다 더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뭉클했습니다."

출처: 숨비 제공
(왼쪽부터) 제주 아쿠아리움에서 하는 수중 공연, 홀로그램으로 투영한 마술사가 마술을 선보이면 이에 맞춰 수중 연기자들이 수조 안에서 연기를 펼친다.

수중 공연 기획 기업으로


공연뿐 아니라 해녀가 직접 채취한 해초로 만든 해초 샐러드 등을 판매했다. 2015년에는 '제주 해녀 문화체험'을 기획해 창조 관광사업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카메라로 물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해녀들이 채취한 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해녀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다 보니 다큐멘터리도 세 편 정도 찍었다. 나중에 이 다큐멘터리는 세계여성의 달을 맞이에 UN TV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해녀와 별개로 이 대표와 공연 기획자는 수중 공연 시장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싶었다. 처음엔 싱크로나이즈드로 시작했다. 물속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다이빙 선수, 플라잉 서커스단을 섭외했다. 화려한 다이빙과 서커스, 그리고 수중 공연을 합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공연이 인기를 얻었어요. 다시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싶었죠. 총감독님이 2014년 대만에서 헬로키티 40주년을 맞이해 홀로그램 쇼를 기획했습니다. 이렇게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혼합현실을 수중쇼에 적용했어요. 물속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 살아 움직이는 육지·해양 생물 등 실제 세트로 준비할 수 없는 것들을 영상으로 구현했죠. 홀로그램 영상과 배우들이 함께 연기하는 뮤지컬과 수중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수중 공연을 할 때는 수족관 유리에 특수처리된 필름을 붙인다. 그곳에 영상을 쏘면 홀로그램이 생긴다. 이어 공연에 맞는 조명을 잘 배치해 홀로그램의 입체감을 살려주면 공연 준비는 끝난다. 현재 플레이 아쿠아리움에서 무료로 공연을 하고 있다.

한국의 하우스오브댄싱워터 꿈꾼다


숨비는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시작해 다양하고 새로운 공연을 기획하는 콘텐츠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항상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위기의식을 느꼈을 때도 있었다.


“처음엔 우리가 공연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2015~2016년쯤 아쿠아리움이 커지자 경쟁사들이 생기기 시작했죠. 성장세도 주춤했고 큰 위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로 인해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새로운 공연을 기획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2011년 사업을 시작했을 때 연 매출은 2억원. 7년이 지난 지금은 30억원을 번다고 한다. 이런 숨비의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중국과 말레이시아 진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수중 쇼 마카오의 ‘하우스오브댄싱워터’ 팀처럼 성장할 겁니다. 또 여기서 올린 수익으로 해녀를 알릴 수 있는 콘텐츠에 재투자하는 것도 또 다른 목표입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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