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jobsN

육사 3등 졸업에도 집에서 혼났던, ‘열등감’ 남자의 결말

‘퍼스트맨’이 될 뻔한 남자

180,139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달 착륙 순간, 암스트롱 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닐 암스트롱은 선장, 버즈 올드린은 달착륙선 조종사
명성에 목맨 올드린, 직업의식 높았던 암스트롱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을 밟았다. ‘퍼스트 맨’이 된 닐 암스트롱은 “이것은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역사에 남을 발언을 했다.


2019년은 인류의 달 착륙 50주년이다. 이를 앞두고 최근 닐 암스트롱의 유일한 공식 전기인 ‘퍼스트 맨’이 번역 출간됐다.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퍼스트 맨’도 개봉했다. 전기와 영화는 달에서 돌아온 후 지구촌 전체의 우상이 되었지만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 ‘은둔자’가 된 닐 암스트롱의 면면을 보여준다.

영화 '퍼스트맨' 포스터

영화에는 안 나오는 뒷얘기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전기에는 닐 암스트롱 대신 ‘퍼스트 맨’이 될 뻔했던 인물이 등장한다. 달에 착륙한 우주선에는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타고 있었다. 닐 암스트롱은 우주비행 전체를 지휘하는 선장, 버즈 올드린은 달착륙선 조종사였다. 버즈 올드린이 먼저 출입구를 열고 나가 달을 밟으면서 ‘퍼스트 맨’이 될 수도 있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누가 퍼스트 맨이 될까?’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을 밟는다’는 기사가 주요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이전의 우주비행에서 선장은 우주선에 남아있고, 다른 우주비행사가 밖으로 나가 선외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영화 '퍼스트맨'

그런데 점차 닐 암스트롱이 퍼스트 맨이 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듣고 초조해진 버즈 올드린은 동료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이 퍼스트 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닐 암스트롱은 조용히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다. “길이 3미터인 달 착륙선 다리가 달 표면에 닿은 후에 누군가의 높이 2.54센티미터 부츠 바닥이 다시 닿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며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필사적으로 명성을 좇았던 버즈 올드린과 명성에는 관심이 없었던 닐 암스트롱. NASA는 두 사람 중 닐 암스트롱을 퍼스트 맨으로 선택했다. 왜일까? 당시 NASA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크리스토퍼 크래프트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퍼스트맨'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는 퍼스트 맨은 지구촌 전체의 영웅이자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되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올드린과 달리 암스트롱은 겸손해서 ‘내가 퍼스트 맨이 될 거야’라고 떠들썩하게 자랑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침착하고 조용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였다. 모두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부와 명예에 관심 없던 닐 암스트롱


같은 분야에서 일한 두 사람의 태도가 왜 이렇게 달랐을까? 닐 암스트롱은 사명감으로 일 자체에 집중했을 뿐, 일을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닐 암스트롱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았고, 그 길을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게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 더없이 좋은 시대에 살았다.

영화 '퍼스트맨'

암스트롱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류의 오랜 꿈을 이루어낸 라이트형제의 고향과 가까운 오하이오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찍이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여덟 살이나 아홉 살 때부터 비행기에 관심을 가졌고, 비행기를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모형 비행기를 만들었고, 비행기를 잘 설계하려면 비행기 조종도 알아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조종도 배웠죠.”


그는 비행 훈련비용을 모으기 위해 열다섯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열여섯 살 때 학생 비행기 조종사 면허증을 받은 직후 처음으로 단독비행을 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퍼듀대학에 입학해 항공공학을 전공한 다음에는 NASA의 전신인 NACA(미국 항공 자문위원회)에 들어가 새로 개발된 최첨단 비행기들을 조종하면서 연구했다.


넘치는 실험정신으로 공기가 희박한 고도까지 올라간 후 제어되지 않는 비행기 때문에 위험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NASA에서 달에 착륙할 우주선의 개념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종사이자 엔지니어로서 두루 능력을 검증받은 암스트롱은 1962년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고, 1966년 3월에 제미니 8호의 선장으로 첫 우주비행을 한 데 이어 1969년 7월에는 달을 향해 떠났다.

영화 '퍼스트맨'

암스트롱이 살았던 시대는 비행기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미국과 소련이 서로 먼저 달에 착륙하기 위해 경쟁하던 시기다. 하지만 컴퓨터는 지금처럼 정교하지 않았고, 우주선도 초기 시제품에 가까워 우주비행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전이었다. 암스트롱과 가까웠던 우주비행사들이 훈련 중 사망하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암스트롱은 자신의 일이 '인류를 위한 도전'이라고 생각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철저히 준비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를 가졌기에 위험한 순간에도 담대하고 침착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인류는 달까지 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사명에만 충실했을 뿐 다른 사람의 평가나 명성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닐 암스트롱 역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 / 영화 '퍼스트맨'

성공과 명성에 눈먼 버즈 올드린


하지만 버즈 올드린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시시각각 촉각을 곤두세우는 인물이었다. 버즈 올드린의 아버지는 미국 항공계의 거물이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한 후 공군 비행센터 소장으로 일했고, MIT박사에 이름난 항공 컨설턴트이기도 했다.


올드린은 아버지 덕에 일찍이 비행에 관심을 가졌고, 아버지처럼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MIT박사도 받았다. 1963년에는 우주비행사로 선발됐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1930년생 동갑내기로, 둘 다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올드린의 아버지는 아들을 인정하지도 격려하지도 않았다. 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하자 “왜 1등이나 2등을 하지 못했느냐”며 못마땅해 했다. 암스트롱이 퍼스트 맨이 된다는 소문이 나돌자 “네가 퍼스트 맨이 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화를 냈다. 아들을 퍼스트 맨으로 만들기 위해 영향력 있는 친구들을 동원해 로비도 했다. 그런 아버지 때문인지 버즈 올드린은 어디에서나 자신을 내세우려고 했고, NASA의 책임자나 동료들은 그를 껄끄럽게 여겼다.

영화 '퍼스트맨'

아버지 때문에 일생 열등감에 시달렸던 올드린은 암스트롱과 비교되면서 또다시 열등감을 느꼈다. 달에서 돌아온 우주비행사들이 세계 일주를 하면서 여러 나라를 방문했을 때 주로 암스트롱이 대표연설을 맡았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싫어했던 암스트롱은 멋진 연설로 사람들을 감동시켰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했던 올드린은 열심히 준비해서 연설해도 감동을 주지 못했다.


올드린은 세계 일주를 할 때부터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안달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서전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일찍이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흔들림 없이 그 일에 집중했던 닐 암스트롱, 그리고 뛰어난 아버지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조바심을 냈던 버즈 올드린. 같은 일을 했지만 두 사람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달랐다.


글 jobsN 이선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작성자 정보

jobsN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