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복만 23kg..최전방 지뢰 제거, 이렇게 합니다

조회수 2020. 10. 4. 16: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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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지뢰병' 동기들의 지뢰제거 경험담

“지뢰는 봐도 봐도 적응 안 돼. 정말 무서웠다.”


군 복무 시절, 민간인통제구역을 넘어 지뢰제거를 하고 온 이재현(27)씨가 말을 꺼냈다. 함께 군생활을 한 최재호(26), 유도열(26)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2012년 1월8일 입대해 강원도 고성 일대를 관할하는 ‘육군 제22사단 공병대대’에서 함께 근무한 ‘공병’ 동기다. 주특기로 지뢰를 취급하는 훈련을 받았다.

출처: 본인 제공.
왼쪽부터 이재현, 최재호, 유도열씨.

지뢰는 반(反)인도적인 무기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합동참모본부는 2018년 11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에 약 88만개의 지뢰가 1308곳, 1억2780만㎡에 흩어져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군은 그동안 꾸준히 지뢰제거를 해왔고 지금도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등에서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뢰지대를 걷는 병사들의 마음은 어떨까? 이재현 씨는 “파란색 모형 지뢰만 보다가 암녹색 실제 지뢰를 봤을 때 온 몸에 돋은 소름을 잊을 순 없다”고 했다.


-지뢰제거는 언제 다녀왔나.


(이재현)“나와 도열이는 두 번 다녀왔다. 첫 번째는 이등병이던 2012년 7월20일~9월7일 7주 동안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 인근 야산으로 다녀왔다. 30명 정도가 작업했다. 산 일부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지뢰를 제거했다. 두 번째는 10~11월에 걸쳐 4주간 다녀왔다. 약 10명의 인원이 남방한계선(Southern Limit Line·SLL) 아래에서 지뢰를 제거했다. 총 11주를 한 셈이다.

출처: 'YTN NEWS' 유튜브 화면캡처.
미확인 지뢰지대를 알리는 경계표시.

(최재호)“나는 두 번째 작업만 다녀왔다. 지뢰제거 작업은 ‘파견’ 형태로 이뤄졌다. 자신이 복무하는 부대를 잠시 떠나 작업‧작전 지역에서 일이 끝날 때까지 머무는 것이다. 두 번째 지뢰제거는 ‘노크 귀순’ 사건을 계기로 했다.”


노크 귀순은 2012년 10월2일 북한군 병사가 최전방 경계를 피해 우리 측 지오피(GOP‧남방한계선 철책선에서 24시간 경계근무하는 초소)까지 내려와 생활관 문을 두드리고 귀순 의사를 밝힌 사건이다. 군은 후속조치로 GOP에 열감시장비, 울타리 구축, 나무 제거 등 전방 시야 확보 작업을 실시했다. 그 전에 작업 인원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지뢰탐지를 한 것이다.


-어느 지뢰를 제거했나.


(유도열)“지뢰는 ‘M-14 발목지뢰’와 ‘M-16 도약식 대인(對人)지뢰’ 그리고 ‘M-15 대전차(對戰車)지뢰’ 등이 있다. 발목지뢰는 팽이보다 조금 작고, 도약식 지뢰는 파인애플 통조림만 하다. 지뢰는 일정한 무게 이상을 받으면 곧바로 폭발한다. 도약식 지뢰는 약 3.6kg 이상 무게에 눌리면 약 1.5m 높이로 튀어올라 터진다. 약 200kg 무게에 터지는 대전차지뢰는 사람이 밟아선 안 터진다. 우리 구역에 대전차지뢰는 없었다. 첫째 파견 때 발목·도약식 지뢰를 합쳐 약 17개, 둘째 파견 때 대인지뢰만 13개 정도를 제거했다.”

출처: 대인지뢰, '국방TV' 유튜브 화면 캡처. 발목·대전차지뢰, 'YTN NEWS' 유튜브 화면 캡처.
왼쪽부터 '발목지뢰', '도약식 대인지뢰', '대전차지뢰'.

-파견 인원 모집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최)“부대에서 지뢰제거를 실시하라는 명령을 내려 인원을 선발했다. 파견 가기 이전에 지뢰병을 모아 지원을 받았다. 공병(工兵) 병과에는 폭탄을 설치하는 폭파병이나 지뢰병 등이 있다. 상명하복이 철저한 군대지만 지뢰제거 작업에는 강제로 참여시키지 않았다. 간부들은 지뢰제거 작업의 위험성을 상세히 알려주며 조금이라도 가기 싫은 인원은 빠지라고 했다.”


(이)“파견이 끝나면 포상휴가 준다고 하길래 갔다. ‘뭐 진짜 큰 일 나겠나. 어차피 지뢰탐지기 있고 조심해서 하면 되는데’ 생각했다.”


-지뢰제거 작업은 어떻게 하는가.


(최)“덧신·각반·헬멧·몸통보호대 등 보호 장구로 전신을 감싼 후 지뢰 탐지기로 땅을 조사한다. 막대사탕 모양인 탐지기는 맨 끝에 달린 원반으로 땅 아래 금속을 포착한다. 한쪽에는 헤드폰이 있어 금속을 발견하면 소리가 나온다. 탐지한 금속의 양을 알려주는 눈금도 있다. 양이 많을수록 소리가 커지고 눈금이 높이 올라간다. 몸통이 철인 도약식 대인지뢰는 발견하면 큰 소리가 난다. 그러나 몸통이 플라스틱인 발목지뢰는 철 부분이 적어 총알을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나 구분이 힘들다.

출처: 'YTN NEWS' 유튜브 캡처.
지뢰탐지기 사용 장면.

지뢰 추정 물질을 발견하면 간부에게 알려야 한다. 흰색 가루를 땅에 뿌려 표시하기도 한다. 소리가 클수록 많이 뿌렸다. 이후 간부가 지뢰에 압력을 적게 주는 뾰족한 ‘탐침봉’이나 호미로 주변 땅을 파 지뢰를 드러낸다. 크라운(덮개) 등을 씌워 표시해 놓으면 ‘폭발물처리반(Exlosive Ordnance Disposal Team·EODT)’이 와서 수집해간다. 과거 전쟁지역이었던 탐지 구역에는 지뢰보다 총알, 포크, 군번줄 등이 많이 나오긴 한다. 수류탄은 정말 많이 나온다. 심지어 바주카포도 봤다.“


(이)“경사가 급한 곳과 완만한 곳의 탐사 방법이 다르다. 대부분 지뢰지대는 산이나 구릉이다. 경사가 완만한 곳은 각자 올라가며 한다. 그러나 급경사 지대를 탐색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안전한 길을 통해 산 위로 올라가 아래로 내려오며 지뢰지대를 탐색한다. 헬기 강하 훈련 때 사용하는 끈으로 두 명을 연결하고, 한 명이 위에서 잡아주면 다른 한명은 아래에서 지뢰탐지기를 돌리며 내려간다. 혼자 미끄러지면 지뢰 위로 떨어질 수 때문에 2인1조로 하는 것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땅이 어는 겨울에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가기 전에 받은 훈련은


(유)“모두 훈련병 시절,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육군공병학교’에서 2012년 5월21일부터 6월12일까지 지뢰 설치 및 제거 교육을 받았다. 파견 가기 전에도 부대에서 2주 동안 연습했다. 지뢰탐지기 작동‧점검법, 지뢰를 파는 법, 발견했을 때 취해야 할 행동 등을 배웠다. 무섭고 신중해야 하는 작업이지만, 단순 노동이어서 배우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출처: 이재현 제공.
이재현씨가 육군으로부터 받은 지뢰병 자격 인증서와 지뢰 제거 표창장.

-작전을 해본 느낌은


(최)“실제 지뢰를 처음 봤을 때 잘못하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섬뜩했다. 처음의 안일한 마음은 금방 사라졌다. 처음 발견한 때는 작업 시작 7일 후였다. 그 전까지 총알이나 포크만 나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들어보지 못한 기계음이 ‘쨍’ 울렸고 직감적으로 ‘올 게 왔구나’ 느꼈는데 대인지뢰였다.”


(이)“누가 처음으로 지뢰를 발견했다고 소리쳤는데 함께 갔던 병장이 부리나케 뒤로 도망가 몸을 가리고 숨은 적도 있다. 첫 파견 때 이미 지뢰를 제거한 지대에 다음날 지뢰가 또 놓여있던 적도 있다. 비가 와 다른 곳의 지뢰가 쓸려 내려온 것이다. 지뢰를 매일 발견하진 않아 안일해졌다가도 이런 일이 있으면 또 긴장하고 작업을 했다.”


(유)“간부가 땅을 파다가 지뢰를 ‘툭’ 건드린 것을 지켜봤을 때 식은땀이 흘렀다. 한 번은 호미에 둥근 고리가 걸려 나왔는데 더 파보니 낡은 수류탄이 있었다. 폭발을 막아주는 안전핀이 걸려 나온 것이다.”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고.


(이)“작업 복장만 약 23kg이다. 작업을 하면 한여름에 스키복을 다 갖춰 입고 등산하는 기분이다. 첫 파견을 갔던 9월에는 날씨가 아직 더웠는데 온몸에 땀이 찌든 채로 작업을 했다. 작업이 끝나고는 몸에서 생전 못 맡아본 악취가 풍겼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빨래를 했다.”


(유)“지뢰 작업은 너무 위험해 해가 질 때면 바로 멈춘다. 오후 5시면 작업을 그만 뒀는데, 그 후엔 선임들도 충분히 쉬라는 의미로 일‧이등병들에게 잡일을 전혀 시키지 않았다.”

출처: 이재현 제공.
지뢰 파견 일정과 느낌 등을 기록해 놓은 이재현씨의 당시 일기.

-지뢰제거로 받은 보상은.


(최)“파견 당 4박5일짜리 휴가가 끝이다. 만약 지뢰제거 작업에 시급을 매긴다면 2만원~2만5000원은 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다른 데선 못해볼 경험을 한 것 자체가 만족스럽다. 멋져 보이는 작업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반(反)인도적 무기를 없애는 것이 매우 뿌듯했다. 또 외금강, 해금강 등 말로만 듣던 풍경을 직접 볼 수 있어 좋았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언젠간 관광으로 가볼 수 있길 바란다.”


(유)“주특기를 제대로 살려 군복무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찼다. ‘해외 파병을 가면 이런 느낌일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지금도 전방에선 장병들이 지뢰제거를 하고 있다.


(이)“진심으로 응원한다. 다만, 정말 위험한 작업이니까 몸조심하고 사고가 없길 바란다. 우리 사회도 그들이 큰 노력과 고생을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음 좋겠다.”


글 jobsN 정경훈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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