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 차리려는 직장인에게.." 직업 만드는 남자의 조언

조회수 2020. 10. 4. 16: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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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만드는 게 직업인 남자
신직업개발 전문가 임상철 한국능률협회 상무
웨딩플래너 등 26개 직업 만들어 대통령 표창
“자신의 강점을 찾아 나만의 일자리로 만들어야”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9층 한국능률협회에 들어서자 말쑥한 정장차림에 다부진 체격의 50대 남성이 맞았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뭔가 성에 안 차 보였다. 옆 대회의실에 자리가 나자 그쪽으로 옮겼다. 그는 입고 있던 양복 상의를 벗고 디지털 화이트보드에 각종 도표와 그림, 개요도를 그리며 자신의 인생을 설명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에너지가 넘쳤고, 자신감 있었고, 분명했다. 한 시간을 예상했던 인터뷰는 2시간 반이 걸렸다.


그는 신직업개발 전문가인 임상철(52) 한국능률협회 미래혁신부문 상무다. 한국능률협회는 1962년 설립돼 경영자 교육, 인재개발, 평생교육, 일자리 창출 등을 지원하는 사단법인이다. 임 상무는 이곳에서 30년간 일하며 현재는 신직업 개발과 일자리 정책 지원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2012년 일자리 창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임 상무는 “경력 단절된 주부, 은퇴한 군인 등 개개인이 가진 경험과 적성을 살려 새로운 직업을 만들고, 기존 직업을 다른 분야와 융복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 내 일”이라고 했다.

출처: jobsN
임상철 상무.

경력 단절된 주부를 위해 만든 웨딩플래너


이제껏 임 상무가 만든 직업은 웨딩플래너, 병원코디네이터, 천연비누제조사, 맛평가사, 부동산경매분석사, 노르딕워킹전문가 등 26개나 된다. 그는 자연을 보다가, 지인과 대화하다가,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자그마한 실마리가 발견되면 이를 활용한 직업을 연상하고 산업과 연계할 방법을 찾는다. 그렇게 지금껏 만든 직·간접적 일자리가 3만여개라는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가장 먼저 만든 직업은 뭔가.


“2000년에 웨딩플래너라는 직업을 만든 게 처음이다. 당시에는 웨딩설계지도사라는 이름이었다. 처음부터 크게 계획해서 만든 것은 아니다. 2000년에 잠깐 K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직업 상담 코너에 출연했었다. 한 주부가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잘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할 줄 아는 것은 살림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뭔가 안쓰럽기도 하면서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 주부들의 이런 마인드를 바꿔야한다는 나름의 치기가 올라왔다. 그전까진 전혀 생각지 않았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웨딩설계사라는 직업이 있다고. 결혼을 해본 주부들이 적임자라고.”


-당시에 진짜 그런 직업이 있었나.


“당시에는 웨딩설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때다. 라디오 방송 중 경력 단절된 여성이 하면 적합한 직업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방송사고를 친 거지. 방송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와 보니 이미 60명이 방송에서 말한 웨딩설계지도사를 문의했다더라. 사고를 쳤으니 수습해야했다. 그때부터 예식장 사장님 등 웨딩업계 사람들을 만나서 교육 과정을 짰고 한국능률협회 직업전환센터에 전문 강좌를 개설했다. 매년 200~300명이 교육을 받았고 그 중 70% 이상이 취업했다. 그 이후 나도 본격적인 신직업 개발을 시작했다.”

출처: 임상철 상무 제공
웨딩설계지도사 수료식 장면. 왼쪽 사진 왼쪽에서 4번째가 임 상무다. 오른쪽은 한국능률협회 직업전환센터가 2002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성 신직업페스티벌을 연 모습.

고졸 영업사원에서 신직업개발 전문가로


임 상무는 창문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경북 영덕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조그마한 지역 신문사에서 광고영업을 했고,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팝콘을 팔기도 했다. LED 간판 업체 영업직으로 일하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서울로 올라왔다. 1988년 12월 한국능률협회 통신교육본부 수당직 영업사원 자리를 얻었다. 기업을 돌아다니며 한국능률협회가 제공하는 임직원 교육, 역량강화 교육 등을 영업하는 일이었다.


-수당직 영업사원에서 어떻게 정규직이 됐나.


“초반엔 실적이 없어서 몇 달째 돈을 벌지 못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어느 회사를 대상으로 삼으면 우선 그 회사를 연구했다. 그 회사의 키맨, 즉 핵심인물이 누군가를 알아내는 데 주력했다. 키맨에게 한번, 두번, 세번 거절당하다 보면 어느새 그와 나는 구면이 된다. 그러다 보면 한번 쯤은 설명을 들어준다. 노력이 통했는지 영업은 결실을 보았고 어느새 모든 영업사원 중 나와 거래하는 회사가 가장 많았다. 한 달에 벌어가는 수당이 못 가져가면 250만원, 잘 가져가면 400만원에 달했다. 그때 다른 비슷한 연차의 정규직 임금이 80만원이었다. 수당이 너무 부담됐는지 회사가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더라. 월급은 전에 받던 것 3분의 1 수준이었다.”


-정규직 된 걸 오히려 후회했을 수 있겠다.


“갑자기 지갑이 얇아졌다. 대신 직장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못했던 대학 공부를 했다. 1993년 서경대 야간대학에 들어가서 법학을 전공했고, 내친김에 연세대 교육대학원도 다녔다. 공부를 하면서 기업 임직원들의 교육을 넘어 평생 교육과 일자리 창출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처: 임 상무 제공
한국능률협회 직업전환센터장 재임 당시 임 상무 모습. 오른쪽은 직업전환센터가 부동산자산관리사를 양성하고 관련 협회까지 설립된 모습.

계속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그는 IMF가 닥친 1997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회사에서 잘린 건 아니다. 경제 위기가 닥치자 영업 대상이던 기업들은 가장 먼저 교육비를 줄였다. 나라 전체가 휘청거리던 시절이다. TV에는 고용부 장관이 실직자 재취업 사업을 위해 3600억원을 지원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임 상무는 그 뉴스를 듣고 ‘변해야 산다’고 되뇌었다.


-그래서 뭘 했나.


“그동안 한국능률협회는 기업체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망하는 상황에서 변화가 필요했다. 은퇴했거나 퇴직한 사람들을 위한 창업 교육·직업개발 교육·평생 교육을 하자고 회사에 제안했다. 회사도 이를 받아들여 1998년 3월 직업전환센터를 개설했다. 내가 센터장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영업직에서 직업 개발 업무로의 변화였다. 센터장을 맡으며 웨딩설계지도사, 병원코디네이터, 천연비누제조사, 펜션경영전문가, 인성교육전문가 등의 직업을 만들고 양성화 과정을 개설했다. 능률협회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사회교육원을 만들어 부원장도 지냈다.”


-직업을 만들고 교육을 시킨 후 취업은 잘됐나. 그냥 자격증 장사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것 같은데.


“새로운 직업을 만들고 양성 과정을 통해 인력을 교육하고 자격증을 주며 항상 교육생들의 취업을 염두에 둔다. 그게 가장 기본이다. 양성 과정을 밟은 교육생들에게도 항상 취업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해준다.”

출처: 임 상무 제공
작년 전국지방자치단체 일자리 대상에서 임 상무가 이낙연 국무총리와 함께 한 모습. 오른쪽은 임상철 상무가 2012년 일자리 창출 공로로 받은 대통령 표창.

미래에 없어지는 일자리? 뻔해. 중요한 건 그에 맞는 직업 교육


임 상무는 “없던 직업을 새로 만들려면 발명이나 발견처럼 순간적인 직관이나 영감, 시대와 사회의 트렌드를 읽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새로움에 대한 추구,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가 매우 중요하지만,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 작은 행동과 실천 조각들이 모여 전체 습관이 되고 이것이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


-추진력이 대단한 것 같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도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꿈꾸지 않는 자는 이룰 게 없다. 기존 세대의 입장에서 미래 세대들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끊임없이 꿈꾸고 실천하자는 이러한 신념을 지키며 산다. 건강한 신체를 갖기 위해 노력하다 작년엔 건강한 몸을 뽐내는 ‘제1회 뷰티니스 스타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앞으로 새로 생길 일자리는 뭐가 있을까.


“빅데이터, AI 분야는 엄청난 인력이 필요하다. 드론, 태양광, 치매 관리 등과 관련한 미래 일자리가 무궁무진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적용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많은 것이 바뀌는 상황에서 인재 육성 방식도 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학과 개편, 교육 구조개혁 등을 해야 한다.”

출처: 임 상무 제공
작년 열린 뷰티니스 스타 대회에 출전한 임상철 상무. 그는 건강한 신체를 가꾸기 위해 '몸짱대회'에 출전하는 등 에너지가 넘친다.

-미래에 없어질 일자리가 엄청날 것 같은데.


“많은 학자가 미래엔 직업과 일자리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똑같이 이야기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일거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며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대를 맞아 빠르게 인력 양성 교육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회사 퇴직 후 치킨집이나 편의점 등 자영업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신직업 개발과 창직이 살길이다. 지금은 포지티브 시대다. 자신의 강점을 찾아 더 장점화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해 나만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직업 개발이다. 물론 개인이 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 전체가 이러한 인력의 강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글 jobsN 김성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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