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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4000만원인데..일하겠다는 사람 없어 걱정입니다

조회수 2020. 10. 4. 16: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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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버스 기사 입장에서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에세이 펴낸 5년 차 버스기사 허혁씨
가구점 사장→귀농 결심→운전대 잡기까지
“구호 아닌 정서로 노동 환경 얘기하고파"

‘버스가 막 출발하는데 당신이 뛰어와 타려는 경우 버스가 그냥 가버린다 해도 서운해 말 것.’


5년째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몰고 있는 허혁(53)씨가 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버스 기사가 책을 펴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시내버스 기사라는 직업의 노동 강도는 다른 직업에 비해 센 편이다. 대소변과 허기짐을 참아가며 18시간 내리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고된 노동만큼 정신적인 피로감도 높다. 버스에 오르내리는 승객들의 천태만상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105편의 원고는 운전대를 잡으며 2년 동안 틈틈이 쓴 것들이다. 일하기도 힘든데 책을 쓴 이유는 “한 번쯤은 기사 입장에서 말해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버스 기사가 노동 문제 얘기하면 읽히겠어요⋯”


급브레이크를 밟는 버스 기사를 향해 ‘왜 저렇게 운전을 험하게 하느냐’고 속으로 투덜대거나, 급한 마음에 차도까지 내려와 ‘제발 좀 태워주세요’라고 외쳐도 한사코 문을 열어주지 않는 버스 기사를 보고 야속한 생각이 든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난폭운전은 빠듯한 식사 시간을 만들기 위해였고 정류장을 벗어난 곳에서 문을 열지 않는 이유는 귀찮아서가 아닌 승객의 안전 때문이었다. 허 씨가 쓴 책에 나온 얘기들이다.


“버스를 운전하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문제가 어느 한 쪽만 잘못해서 벌어진 것이 아닌 경우도 많잖아요. 버스 기사들이 왜 그렇게 다들 무뚝뚝하고 화난 사람처럼 운전대를 잡는지 얘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버스기사에 대해 갖는 편견도 사실 열악한 노동환경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버스 기사가 책을 써 낸 것은 1990년대 중반 한 분이 노동 문제에 대해 책 말고는 없어요. 요즘 사회 분위기로 봐서 심각한 노동 문제로 글을 쓰면 사람들이 읽을 것 같지 않았어요.” 

출처: jobsN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저자 허혁씨.

책에는 ‘짜증으로 가는 길에는 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선글라스는 표정관리, 마스크는 욕 나올 때 좋다’는 등 버스 운전사의 애환을 솔직하게 표현한 구절이 많다. 투박해 보이지만 표현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직장 동료들에게 들고 가서 감수도 받았다. 허 씨는 “버스 기사가 쓰는 ‘버스 이야기’다. 내가 까칠하게 안 쓰면 누가 쓰겠냐”고 말했다. 독자들 반응은 좋았다. 출간 석 달 만에 1만 부가 팔렸다. 책이 안 팔리는 세태를 감안하면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책을 쓸 때 쉽고 솔직하게 쓰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버스 기사가 낸 책을 누가 사서 읽겠어요. 동료들에게 초고를 주고 읽어보라고 했어요. ‘형, 이거 표현이 너무 약한데’라고 말해준 동생도 있어요. 제가 원래 남의 눈치를 잘 안 봐요. 예전에 인터넷 카페에 때때로 글을 올리던 적이 있었어요. 체면 따지지 않고 쓰는 글을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글을 올렸는데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까 신이 나서 계속 쓰는 것도 있었고요. 원고를 다 쓰고 서점에 가서 출판사 이메일 주소를 일일이 수첩에 옮겨 적었어요. 원고 보낸 지 두 시간도 안돼 연락을 준 수오서재와 출판 계약을 했어요. 내 글을 제대로 알아봐 준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죠. 책이 이렇게 훌륭하게 출간될지 상상도 못했어요.”


가구점 →귀농 결심→버스 운전사 되기까지


‘산다는 것은 리듬을 타는 일이다.’ 책에 쓴 것처럼 그의 인생에도 적잖은 굴곡이 져 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제약회사를 다니다 가구점을 차렸다. 서른셋에 부모님 빚 3억원을 떠안고 아등바등 살았다. 18년간 일해서 빚을 청산하고 나니 돈에 대한 회의감이 몰아쳤다. 손님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견디기 힘든 수준까지 올라왔다. 장사를 하면서 계속 다른 곳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도 싫었다. 급기야 분노조절장애, 우울증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가구점을 접고 귀농을 하겠다 마음먹었다. 아내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아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시내버스 기사다. 관광버스 2년 몰아 경력을 쌓고 버스 기사가 됐다.


“가구점 운영할 때 장사가 잘 됐어요. 그런데 돈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벌이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버스 운전이 쉬운 일이 절대 아니지만 장사할 때 손님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에서는 자유롭죠. 성격이 예민한데 먹고살려고 기를 쓰다 보니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칠 대로 지쳐갔어요. 좀 적게 벌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출처: jobsN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저자 허혁씨.

책에는 유년시절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와 지적 장애를 갖고 사는 딸아이 등 가족사와 서른셋에 3억원의빚을 떠 안은 사연, 가구점을 운영하다 귀농을 결심하고 가출을 감행한 일화 등 개인사를 가감 없이 적었다. “책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을 아내가 반대했어요. 하지만 안 쓸 수가 없더라고요. 내 삶을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아버지를 객관화해서 상처를 치유하고 싶기도 했고요. 딸아이는 저 산소증으로 태어나 지적 장애가 있지만 직감이 좋아요. ‘인생 별거 없다’는 등 선문답 같은 화두를 저에게 던져줘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사실 딸아이거든요. 버스 기사를 하는 부족한 아빠지만 삶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는 아빠라는 것을 딸아이에게 보여줬다는 것 하나만으로 뿌듯해요.”


“식사 시간도 없는 노동 환경…버스도 변하는 세상에 맞춰 가야”


버스 기사를 직업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그는 하루 18시간 운행을 “기사들에 대한 사회적 학대이며 봉건제적 사회 야만”이라고 표현했다. 기사들은 새벽 대여섯시부터 운전석에 앉아 내리 달린다. 저녁 여덟 시쯤 되면 감각도 둔해지고 온몸이 결리는 느낌을 수시로 받는다. 식사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배차 시간을 감안해 요령껏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10월 전주시 시내버스 노사와 이용자들이 참여하는 ‘시민의버스위원회’에 강연자 자격으로 참석해서도 이런 얘기를 강조했다.


“어떤 직업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람들에게 ‘고맙다’, ‘수고하신다’는 인사를 듣겠어요.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는 일이긴하지만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는 직업이라 참 좋아요. 그런데 사실 걱정이 많이 됩니다. 지금 한시적으로 주52시간 근무제 때문에 1일 2교대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다시 예전처럼 격일제 18시간으로 바뀌면 어쩌나 걱정이죠. 정부가 다시 탄력근로제 얘기를 들고 나오는데, 탄력근로제는 격일제로 운행할 때의 근무시간을 고수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2교대를 반대하는 직원도 많아요. 하지만 2교대를 하면 하루 8시간씩 일하면서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겨요. 밥 먹을 시간을 만드느라 무리하게 운행할 필요도 없고요. 버스 회사들의 배차 간격도 승객 이동량에 맞춰 유연하게 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렇게 되면 기사들이 승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어요. 2교대를 하고 나서 달라진 점은 손님을 봐도 이제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버스 기사는 진입 장벽이 높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정 정도 경력은 필수다. 버스 회사에 입사하려면 1종 대형면허를 따고 레미콘, 덤프트럭 등 대형차를 몰아본 경험을 2년 정도는 쌓아야 한다. 허 씨는 버스 기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성숙한 버스 문화를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2교대 실시로 버스 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기사들이 줄줄이 나왔어요. 이런 기사를 보면 한숨부터 나와요. 우리 사회에는 운전기사라는 직업을 인생 막장에 몰려서 할 것 없는 사람들이나 한다고 보는 편견이 팽배합니다. 지방 버스 기사 연봉이 4000만원 수준입니다. 수시로 사람을 뽑지만 인력이 늘 부족해요. 악조건 속에서 일하는 만큼 처우를 개선해 준다면 젊은층도 오려고 할 겁니다.”


이번 책이 잘 팔리고 있으니 다음에 쓸 책도 이미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아직요. 책 나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이 얘기 말고는 쓰고 싶은 것이 없어요. 책을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쓰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가끔 피곤하다고 하면 우리 딸이 나보고 그래요. '아빠, 애쓰지 말라'고. 버스 기사를 하는 한 효율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승객을 보고 운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버스는 시민들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잖아요. 근로 환경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이 바라는 안전하고 친절한 버스가 나올 수 있거든요. 바람이 있다면 제 책을 국토교통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이 읽어준다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김지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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