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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하고 붙임성 있으면 유리..17년만에 부활한 직업

조회수 2020. 10. 4. 16: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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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이!" 돌아온 버스안내양
버스안내양 최초 부활지 충남 태안
지원자격은 튼튼한 다리와 밝은 성격
5년차 버스안내양 김선(39)

“오라이! 오라이!”


이미 만원 버스에 손님을 집어넣는 버스안내양. 정작 자신은 출입구 손잡이에 의지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간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승객을 태우는 것이 중요했다. 30~40년 전 풍경이다.


“엄마, 여기 안쪽으로 앉으셔. 오라이!”


2006년 2월 충남 태안에서 버스안내양이 부활했다. 1989년 사라진 이후 17년 만이다. 그 역할은 조금 달라졌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안전한 승·하차를 돕는 일이 주 임무다. 

출처: 김선씨 제공
5년차 버스안내양 김선씨는 '사랑받는 직업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태안여객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


5년차 버스안내양인 김선(39)씨도 옛 버스안내양을 직접 본 기억은 없다. 어릴 때 TV에서 본 것이 전부다. “여기 태안에서는 ‘안내양’보다 ‘차장’이라고 더 많이 불렀대요. 그 시절엔 사람은 많고 자동차는 별로 없어서 버스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죠.”


2017년 기준 태안군에는 6만여명이 살고 있다. 이 중 약 27.3%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해마다 노인 인구는 늘고 있다. 태안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역시 대부분 어르신이다. 버스안내양이 필요한 이유다.


“일단 자리에 안전하게 앉을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해요. 몸이 불편하신 분은 부축해드리고, 무거운 짐이 있으면 들어다드리죠. 그리고 나서 요금을 받아요. 현금을 받아서 요금함에 넣고 교통카드도 대신 찍어주고 다시 가져다 드립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수밖에 없겠죠?”

출처: KBS '다큐멘터리 3일' 캡처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태안버스터미널'

8년 만에 돌아왔어요


충남 태안군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노인들이 넘어지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잦아지자 2006년부터 버스 안내양을 다시 태우기 시작했다. 당시 김선씨는 태안여객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2003년부터 3년간 사무직으로 태안여객에서 일했습니다. 둘째를 임신하면서 그만뒀어요. 퇴직하던 해에 ‘버스안내양 1호’ 언니가 일하는 걸 봤는데, 승객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더라고요. 퇴직하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안내양 새로 뽑으시면 다시 올게요”라고 했어요.”


2014년, 기존 1명이던 버스안내양이 3명으로 늘면서 정말 김선씨에게 연락이 왔다. “덥석 하겠다고 대답하고 이력서, 건강검진결과지 같은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어요.” 이후 면접을 통해 성격이 활발한지, 체력이 튼튼한지를 확인한 후에 채용이 정해졌다. 그 해 3월 1일부로 정식 출근했다.

출처: KBS '다큐멘터리 3일' 캡처
김선씨의 주된 임무는 어르신 승객의 짐을 대신 들어다드리거나 승·하차를 도와드리는 일이다.

김선씨는 버스에 오르는 어르신들에게 “엄마”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동하는 동안 도란도란 수다도 떤다. 원래 붙임성이 좋다거나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엔 저도 어르신들 대하기가 어려웠어요. 인사라도 잘 하자 싶어서 한분 한분께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하고 크게 인사했더니, ‘인사 잘하는 안내양’이라면서 칭찬해주시더라고요. 이제는 “엄마” “아버지”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KBS '다큐멘터리 3일' 캡처

사랑받는 직업, 감사할 따름


버스안내양이 타는 코스는 신진도·만대·안면도 총 3코스다. 3명의 안내양이 하루마다 돌아가면서 다른 코스로 근무한다.


“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매일 출·퇴근 시간이 달라져요. 9~10시쯤 출근해서 6~7시에 버스에서 내립니다. 버스 노선이나 시간이 바뀌면 거기에 따라 안내양 근무시간이 같이 바뀌기도 해요.”


몇 년 전까지는 안내양이 6개월마다 3코스를 바꿔가며 탔다. “6개월이 지나서 다른 코스의 버스를 타면 1년 만에 그 코스를 타는 거예요. 그러면 승객분들이 제 손을 꼭 잡고 “어디 갔었냐” “보고싶었다”고 말씀해주세요.”


기억에 남는 승객을 묻자 김선씨는 주저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6개월마다 코스를 바꿔 타던 때였어요. 유독 저를 예뻐해주시던 아버님이 계셨어요. 버스에서 만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죠.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면서 사탕 하나라도 손에 꼭 쥐어주셨어요.


그 아버님께서 직접 읍내까지 나오신 적이 있어요. 볼 일이 있으셔서가 아니라 저를 만나러 나오신 거였어요. 코스가 바뀌어서 요새 통 안보인다고요.”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과거형으로 끝난다. 몇년 전 돌아가셔서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타시던 정류장에 가면 항상 생각이 나요.”

KBS '다큐멘터리 3일' 캡처

사랑 받는 직업이라지만 마냥 좋을 순 없다. 사랑이 과해 비뚤어질 때도 많다. “남자 손님들이 ‘고맙다’면서 몸을 쓰다듬거나 톡톡 두드리실 땐 정말 곤란해요. 다른 손님을 도와드리러 간다거나 황급히 화제를 돌리는 방법이 최선이죠.”


가장 피하고 싶은 승객은 취객이다. 요금도 받아야하고 어디까지 가시는 지도 알아야하지만 도통 답을 들을 수 없다. 인사불성인 승객은 버스기사나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모셔드려야 한다.

출처: 김선씨 제공
버스안내양 김선(왼쪽)씨와 버스기사.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버스안내양


김선씨는 남편 그리고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딸 둘과 함께 살고 있다. 버스안내양으로 일하기 시작할 때는 두 딸의 반응이 내심 신경 쓰였다.


“처음엔 엄마가 버스안내양이란 걸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다른 사람이 딸아이에게 “엄마 무슨 일 하시니”하고 물었을 때 “버스안내양이요”하고 답하면 “그게 뭐야”하고 되묻더래요. 아무래도 생소한 직업이니까요.”


여러 방송에서 김선씨를 소개하면서 아이들의 눈빛이 바뀌어갔다. 이젠 오히려 “우리 엄마는 TV에 나오는 사람”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담임선생님이 “어머니께서 멋진 직업을 가지셨네!”라고 말해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단다.

출처: 김선씨 제공
김선씨의 두 딸도 엄마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한다.

김선씨 스스로도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론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승객들에게 “고맙다” “보고싶었다” 소리를 들으며 힘을 낸다.


근무여건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근무하면서도 11년간 줄곧 140만원을 받았다. 올해 초 ‘주 52시간 근무 규정’ ‘최저임금’ 등의 영향으로 임금이 올랐다. 현재 주 5일 40시간쯤 근무하고 1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소속은 태안여객이 아니라 태안군이다.

출처: 김선씨 제공
현재 태안군 소속으로 태안여객에서 근무하는 세 명의 버스안내양. 맨 오른쪽이 김선씨다.

충남 태안을 시작으로 당진·보령·서천 지역에도 몇년 전 버스안내양이 다시 생겼다. 경남 하동, 경북 의성 등에서도 다문화가정 여성, 경력 단절 여성들을 버스 안내양으로 고용하고 있다.


“일단 저희 지역부터 버스안내양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웃음) 원래 1명에서 지금 3명으로 늘긴 했지만요. 5명 정도로 늘어서 더 많은 코스에 있는 승객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이영지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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