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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11시전에 퇴근한적 없었어요..어느순간 겁 나더라고요"

조회수 2020. 10. 4. 16: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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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3년차에 사표내고 찾은 '평생 직업'
[n잡시대 ③] 프리랜스 통번역가 구현주씨
야근과 격무에 시달려 통번역가로 전업
“밤 12시 회사 앞 택시 지금도 선해”

<편집자주> 직장 한 곳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정년퇴임으로 은퇴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을 넘어 ‘n번째 직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당신의 n잡은 무엇인가요. 이직·창업·프리선언 등 전업에 성공한 ‘프로 전업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영국 유학. 경영학 학사, 소비심리학 석사 학위 취득. 졸업 후 귀국해 2013년부터 외국계 기업 연구원으로 재직….


구현주(33)씨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직장생활 3년차가 되던 해 회사를 나왔다. 이후 2016년 중앙대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했다. 통번역가가 되고 싶었다기보단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싶었다.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면서 자아실현이 가능한 삶을 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정해진 시간에 나를 맞춰야 하는 직장생활이 아닌 시간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회사가 아닌 자신의 성장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었다.


2년 뒤인 2018년 3월부터 현주씨는 새내기 프리랜서 영어 번역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통역보다는 번역이 적성에 잘 맞았다. 프리랜서 생활의 불안함을 떨쳐내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현주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출처: 구현주 제공.
다이빙을 떠나는 구현주씨.

행복을 찾기엔 너무나 바빴던 첫 번째 직장


현주씨가 2013년 입사한 첫 직장은 외국계 소비자 조사 기업이었다. 전 세계 70개가 넘는 나라에 지부를 둔 큰 회사였다. 핸드폰·패스트푸드·담배 등 다양한 상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수집·분석해 고객사에게 자료를 제공했다. 현주씨는 핸드폰 팀 선임 연구원이었다. 제품 출시 전후, 소비자를 연령·성별·취향 등을 기준으로 묶어 선호도를 조사했다.


일은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배운 전공과 업무가 연속성이 있어 좋았다. 현주씨는 영국 로열홀러웨이유니버시티오브런던 대학교(Royal Holloway University of London)에서 경영학과 마케팅을 전공했다. 전공 공부가 재밌어 같은 계열의 대학원을 가기로 결심했다. 애스턴대(Aston University)에서 소비자 심리학, 프랑스 오덴시아 경영학교(Audencia école de management)에서 국제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첫 직장도 전공을 살려 일하고자 소비자 조사 회사를 지망했다.


그러던 현주씨는 입사 3년차인 2015년 8월, 회사를 그만뒀다. “딱 퇴사 1년 전에, 딱 내년 이맘때도 같은 맘이면 퇴사해야겠다고 정해놓았죠.” 표면적인 이유는 과도하게 많은 근무 시간과 업무량이었다. “지금도 밤 11~12시가 넘어 회사 앞에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택시가 눈에 선하네요.” 국내 유수의 제조업체부터 작은 회사까지 고객사로 두고 있던 현주씨의 회사는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출근 시간은 보통 회사보다 약간 늦은 9시30분이었지만, 밤 11시 이전에 퇴근한 기억이 드물다. 국내 상품의 해외 시장 반응 조사도 주요 업무였기에 해외 출장도 잦았다. 일이 급할 때에는 현지와 한국의 업무시간에 모두 맞춰 일하느라 밤을 새우곤 했다.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 개인의 삶은 사라져만 갔다. 주말에도 이어지는 업무 때문에 정말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을 때, 이렇게 사는 건 틀리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나도 즐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2010년 처음으로 스쿠버 다이빙을 접하고 바다에서 돌고래떼와 수영했어요. 그때 돌고래들이 내던 노랫소리는 너무 황홀해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후로 현주씨는 다양한 고래를 직접 보기 위해 프리다이빙을 배워 지금도 꾸준히 즐기고 있다. 프리다이빙만이 아니었다. 2009년부터 꾸준히 해온 웨이트 트레이닝은 물론, 클라이밍·마라톤·서핑·수영 등 평소 행복과 만족감을 주었던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 퇴사 열망은 점점 커져갔다.

출처: 구현주 제공.
구현주씨(가운데)가 프리다이빙을 즐기며 혹등고래와 수영하고 있다.

“이렇게 회사에 계속 다니다보면 내가 행복한 삶을 평생 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겁이 났어요.” 소비자 조사라는 일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일보다 더 즐거운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일과 삶이 양립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했다. 몇 주씩 해외에 나가야 할 수 있는 다이빙 등 아웃도어 활동을 이어나가기엔 보통 회사의 15일 연차는 너무 적었다. 결국 답은 프리랜서였다. “결국 나는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을 냈죠.”


퇴사와 통번역대학원 준비


“사직서 내던 날은 홀가분한 마음에 정말 자동으로 춤이 나올 것만 같더라고요.”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이 다시 내것이 되니 삶을 되찾은 것만 같았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머리도 하고 생각만 하고 가지 못한 곳도 여기저기 다녔다. 하지만 가장 큰 설렘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쁜 마음의 한편에는 불안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업에서 연봉을 받다가 통번역가가 될 때까지 별다른 수입 없이 생활해야 하는 점이 막막했다. 수업이 바쁜 통번역대 특성상 넉넉한 생활비를 벌 부업을 가지기도 힘들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최소 2년 동안 학교에 다녀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다시 처음부터 경력을 쌓기엔 늦은 나이가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25년 넘게 사업을 해오신 아버지의 조언은 퇴사 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용기를 주었다. “아버지께서 지금 다니는 회사 일처럼 자기 일을 하면 뭐를 해도 될 것이라고 하셨던 게 와닿았어요. 이제는 웬만하면 100살까지 산다잖아요. 회사는 아무리 오래다녀도 정년 채우고 나와야 하니까, 제가 투자하는 노력이 회사가 아닌 내 것이 되는 삶을 살자는 생각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통번역가’는 퇴사를 계획하는 단계에서 정해놓은 다음 직업이었다. 사실, 통번역가라는 직업 자체보단 프리랜서로서 살고 싶었다. “업무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직업은 돈 버는 수단으로 삼고 취미·여가 생활로 자아실현을 하고 싶었죠. 갑자기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제가 프리랜서로 할만한 것을 찾다보니 통번역밖에 없더라고요.”


현주씨는 퇴사 5개월 전인 2015년 3월부터 통번역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통번역대는 보통 매년 11월에 시험을 실시한다. 대학원마다 시험 과목과 방식이 다르다. 주로 영어 지문 청취 요약이나 통·번역 시험을 치른 뒤 면접을 본다. 필기 없이 구술면접으로만 이뤄진 경우도 있다.


준비를 시작하자마자 서울 강남에 있는 통번역대 준비 학원 주말반에 등록했지만, 회사와 병행하기 힘들어 3개월밖에 다니지 못했다. 퇴사 이후 학원을 재등록했고 11월 중앙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했다. 영국 유학 경험과 잦은 해외 출장 등으로 쌓은 영어 실력이 시험에 적잖은 도움이 됐다.


통번역대학원에서의 공부 과정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면 많이 여유로울줄 알았는데 공부할 게 엄청 많더라고요.” 통번역대학원 시절에 대한 현주씨의 회상이다. “통번역대학원은 순수학문을 연구소라기보단 직업학교 같은 느낌이에요. 2년 안에 통번역가를 길러내기 위해 과제를 엄청 많이 내죠. 대부분 스터디를 꾸려 파트너를 정하고 서로 발음이나 듣기 실력을 체크해주면서 공부해요. 이동하고 밥먹는 시간 빼놓고는 계속 과제와 수업준비를 했습니다. 그래도 저녁에 간단히 운동할 짬은 나니 회사보단 덜 바빴던 셈이네요.”


“통번역대 과정은 공부일정이 빡빡해서 직장생활과 병행할 수 없어요.” 중앙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의 경우 한 학기에 18학점이다. 한 수업에 보통 1, 2학점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시간짜리 수업을 보통 8~9개 들어야 한다. 수업마다 매주 한 개씩 과제를 내준다. 법·산업·경제 등 다양한 분야 중 하나를 번역하거나 통역수업의 내용을 복습하는 것 등이다. 학생들은 한학기 보통 4~5개 정도의 스터디에 참여한다고 한다. “너무 바빠서 생활비 벌 시간도 없을 정도에요. 직장에서 학비나 생활비를 모아놓고 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출처: 구현주 제공.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현주씨는 ‘자신이 딱히 관심 없는 지식도 의무에 가깝게 익혀야 했던 점’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통번역가는 어느 분야에서 의뢰를 받을지 모른다. 어제는 제약회사에서 번역을 맡겼다면, 오늘은 정치 관련 문서를 외국어로 옮겨야 할 수도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상식을 외우는 일이 가장 힘들었어요. 매일같이 신문을 읽거나 별도의 공부를 해야 했죠.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통번역가가 짊어지고 살아야 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직장을 다니다 이직한 통번역가라면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분야 번역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주씨의 경우 마케팅이나 시장조사 관련 문서를 비교적 빠르고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다.


현주씨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통역가가 아닌 번역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통번역대 과정을 밟으며 통·번역 수업을 모두 들어야 하지만 통역사가 될지, 번역가로 일할지는 자신이 선택한다. 보통 자신의 성향에 따라 결정하며, 통·번역을 겸업할 수도 있다. “통역에는 순발력이 필요한데, 저는 느긋하게 앉아서 하는 번역이 맞더라고요.”


통번역대학원의 가장 높은 관문은 역시 졸업시험이다. 졸업시험은 순차통역·동시통역·일반번역·전문번역 네 과목으로 이뤄진다. 과목마다 영한·한영 번역을 모두 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8과목 시험을 치른다. 현주씨는 “졸업시험 때는 정말 피말렸습니다. 떨어지면 1년을 더 다녀야하니까요”라고 어려움을 회상했다.


통번역가로의 전업을 추천하느냐는 질문에 현주씨는 “프리랜서를 꿈꾸시고 영어를 꾸준히 공부할 자신 있는 분이라면 괜찮다”고 답했다. 또 꼭 해외파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통대에 들어가보니 학부에서 바로 올라오신 분들부터 직장인하다 오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프리랜서 번역가로서의 활동


현주씨는 2018년 2월 중앙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3월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는 3~4월엔 불안함이 컸어요. 완전 처음이니까 ‘과연 일이 잡힐까’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은 많았고, 일도 많았죠. 7~8월엔 주말도, 쉬는시간도 없었어요. 3주 넘도록 매일 적어도 10시간씩은 번역을 했죠. 그때를 지나며 일이 끊기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과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번역료는 보통 원문 기준 자(字)수나 단어수를 기준으로 책정한다. 번역하는 언어마다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 중앙대학교 통번역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번역요율표를 보면,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시 한국어 원문 1자당 최저 160원을 매긴다. ‘아니오’를 ‘no’로 번역할 경우 480원인 셈이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경우 영어 1단어 당 최저 140원이다. ‘great’을 ‘훌륭해’라고 번역하면 140원인 것이다.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통번역을 의뢰하는 회사마다 부르는 값이 달라 평균 번역료를 내긴 어렵다. 다만, 실제로는 최저에 못미치는 번역요율을 받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으며, 경력을 쌓을 수록 점점 요율이 올라간다.

출처: 중앙대학교 통역번역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통번역 요율표.

한편, 통역료의 수준도 경력이 좌우한다. 영어 통역의 경우 졸업 후 2년 미만의 통역사의 경우 1시간 이하 업무에 50만원을 받지만 2년 이상인 경우 60만원을 받는다.


“퇴사는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현주씨는 프리랜서 번역가가 된 이후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다고 답했다. “일만 조금 익숙해지면 매일 조금씩 나눠서 일할 수도 있고, 몰아서 해놓고 쉴 수도 있어요. 요즘도 일할 때에는 보통 하루에 8~9시간 정도 일하지만 업무 시간을 자기가 정할 수 있으니 편해요.”


한편, 현주씨는 “성격에 따라서는 프리랜서보다 직장이 훨씬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빼먹지 않고 전했다. “통번역가 중에서도 직장에 소속해 일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회사가 업무 일정을 정해주는 것이 더 편할 때도 있잖아요? 제시간에 마감을 딱 맞추거나 스스로 일을 구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성격이라면 직장 생활이 삶을 더 윤택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기업에서도 일을 받아야 하는 통번역가는 보통 해외 통번역 대행사(에이전시)를 통해 기업과 접촉한다. 잡플랫폼에 이력을 올리면 대행사가 기업과 연결해주는 식이다. “처음엔 어떻게 할지 몰라서 올릴 수 있는 웹사이트엔 제 이력을 다 올렸어요.” 현재 현주씨는 30개의 기업과 연결 돼 있다. 연차가 높은 프리랜서 번역가들은 대행사를 거치지 않고 기업에서 바로 일을 받아 하기도 한다. 현주씨의 목표도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기업을 늘리는 것이다.대행사를 끼고 일하면 대행사의 결제일에 번역료를 받아야 해서 불편한 점이 많다.


프리랜서로 한 달에 얼마나 버냐고 묻자 현주씨는 “실력마다, 통역이나 번역가의 전문성에 따라 천차만별이에요. 많이 받는 사람은 대기업 직원만큼 받기도 합니다”라고 답했다. 통번역가들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일을 구한다. 외국의 통번역가 중개업소(에이전시)에 자신의 정보를 올리면, 일을 소개받을 수 있다. “동남아시아부터 미국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일을 맡기죠. 올해 초에는 ‘과연 일이 많을까’ 불안하기도 했지만, 세계에 기업이 많은 만큼 통번역가가 할 일도 무궁무진합니다.”


일을 시작한 현주씨의 현재 목표는 소설을 많이 읽으며 한국어 표현 실력을 쌓는 것이다. “학부에서도 경영학을 전공했고 회사 다니면서도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소설을 많이 못읽었어요. 하지만, 번역가에게 중요한 한국어 표현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소설을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옛날엔 유명한 소설은 대부분이 ‘한국전쟁’이나 민족사적 이야기를 해서 무거웠는데 요새는 가볍고 재밌는 소설이 많이 나와서 좋아요.”


또 프리랜서를 시작하며 얻은 시간을 자아실현을 위해 투자할 생각이다. 벌써 내년 1월, 4월 여행 계획도 세워놓았다. “프리다이빙을 더 많이 다녀야죠. 통번역대를 다니던 작년 겨우 짬을 내 통가(뉴질랜드 북동쪽에 있는 섬나라)에서 혹등고래를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프리랜서는 바짝 일하면 긴 휴가를 낼 수 있으니까 해외에도 더 오래 머물면서 다이빙을 즐기고 싶습니다.”

글 jobsN 정경훈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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