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이적·선우정아..유명가수들이 선택한 '여성 1호'의 정체

조회수 2020. 10. 4. 16: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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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끝으로 음악을 만드는 음향 엔지니어, 곽은정 감독
음향 엔지니어 곽은정
여성 1호이자 20년 경력의 베테랑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윤상, 이적, 선우정아, 존박, 리쌍’


장르와 세대가 다른 가수들이지만 이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곽은정 음향 엔지니어와 작업했다는 점이다. 음향 엔지니어는 스튜디오·영화·공연·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리를 다루는 ‘소리 기술자’다. 곽감독은 녹음실에서 작업하는 스튜디오 엔지니어로 보컬·기타·드럼·베이스 등 곡을 만들기 위해 녹음한 재료를 조화롭게 다듬어 하나로 만든다. 이 작업을 믹싱(mixing)이라고 한다. 그래서 믹싱 엔지니어라고도 불린다.


곽감독은 1997년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20년 동안 활동한 베테랑이자 여성 1호 음향 엔지니어다. 1990년대를 주름잡던 윤상부터 힙합 듀오 리쌍, 싱어송라이터 곽진언, 선우정아까지 장르와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뮤지션들과 작업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곽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출처: jobsN
곽은정 감독

음악 좋아해 카페 DJ 활동


중학생 때부터 천문학자가 되고 싶던 곽 감독은 대학에 진학해 천문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때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천문학자의 꿈을 포기했다. 앞날을 미리 계획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다음 진로를 정하지는 않았다. 당시 음악이 좋아서 음악만 듣고 살았다. 발라드, 포크, 헤비 메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었다. 학교 앞 음악 카페에서 사연을 읽어주고 신청곡도 틀어주는 DJ로도 일했다.


졸업 후에는 아는 사람 소개로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청소, 환율 정리 등 간단한 일을 했다. 6개월 정도 일하다 다큐멘터리 작가를 준비하기 위해 그만뒀다. 공개채용은 없고 특별채용만 있다는 것을 알고 좌절하고 있을 때 친구가 음향 엔지니어 학원을 소개해줬다.


"그때 처음 이 직업을 알았어요. 궁금해서 수강했는데 딱히 배운 건 없었죠. 음향 엔지니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안 정도였습니다. 6개월 뒤 학원에서 여러 녹음실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주더군요. 광고 녹음실에 들어갔어요. 광고에 들어가는 효과음을 담당했죠.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곧 흥미를 잃었습니다. 제가 만든 광고가 TV에 나올 때만 좋았어요. 작업한 게 오래 남았으면 좋겠는데 광고는 너무 짧았죠. 그만두고 유학을 준비했어요."

출처: jobsN
곽 스튜디오 내부

락레코딩에서 음향 엔지니어 시작


유학 서류를 준비하던 중 당시 국내 최대 녹음회사 락레코드에서 연락왔다. 같이 일하자는 것이었다. 유학 다녀와서 잘 될 거라는 보장이 없기에 제안을 수락했다. 1997년 본격적으로 음향 엔지니어 일을 시작했다. 녹음실에 일을 가르쳐줄 사수 선배가 따로 없었다. 일회성으로 작업하러 오는 감독들의 보조로 시작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웠다.


회사가 다른 회사와 동업을 하면서 임창덕 음향 엔지니어가 선배로 들어왔다. 음향계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믹스하는 법을 따로 배운 것은 아니었다. "믹싱이라는 게 수학 문제 풀듯 공식이 있는 게 아닙니다. 본인의 귀로 듣고 느끼고 소리를 조절하는 것이죠. 선배님 작업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배웠습니다.


보조로 일하던 중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국내 최초로 하드 레코딩을 시작했다. 하드 레코딩은 기존 테이프에 녹음을 하는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컴퓨터에 녹음을 하는 디지털 방식이다. 가수들의 음정을 잡아주는 튜닝(tuning)도 할 수 있다. 멜로디의 조성(key) 및 음계(Scale)를 지정하면 음계를 이탈한 음정을 자동으로 잡아준다. 예들 들어 가수가 반음 낮게 불렀다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반음 올려주는 것이다. 락레코딩에서 처음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계 조작은 어시스트인 곽감독의 몫이었다.


다른 곳에서 오토튠(자동으로 음정을 보정하는 기능)을 해주면 곡당 50만원을 주겠다는 의뢰가 들어왔다. "한 달 동안 잠도 못 자면서 일해야 60만원을 받았는데 한곡 작업하면 50만원을 준다니 정말 큰돈이었죠. 두 곡을 작업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평생 오토튠만 하고 살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오토튠은 정통 믹싱 엔지니어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두곡 해주고 나서는 그만뒀습니다."

출처: 소속사 홈페이지, 방송화면 캡처
곽감독이 함께 작업한 뮤지션들 (왼쪽부터) 존박, 윤상, 선우정아

프리랜서 전향 후 윤상 5집으로 정식 데뷔


임창덕 감독이 새로운 녹음실을 차렸다. 나가면서 곽감독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맡은 프로젝트가 있어 바로 따라나갈 순 없었다. 2000년 말에 작업을 모두 마치고 회사를 나와 임감독에게 갔다. 아직 회사가 공사 중이라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공사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 당시에는 음향 엔지니어 어시스턴트 중에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프리랜서라는 개념도 생소하던 때에 얼떨결에 소속회사 없이 홀로서기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나 이제 프리랜서야'보다 '이제 어떡하지'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러다 2001년 가수 윤건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신기했어요. 그 즈음에 리쌍에게도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는 녹음만 했어요. 얼마 뒤 윤상씨 5집 앨범을 통해 입봉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보컬, 악기 등을 녹음하는 레코딩 보조를 거쳐 메인인 믹싱을 담당하는 메인 엔지니어 일을 처음 맡는 것을 입봉이라 한다. 최소 7~8년을 보조로 일한다. 이후에도 선배나 프로듀서가 판단해 일을 주면 메인 음향 엔지니어로 일할 수 있다. 곽감독은 회사 소속의 하우스 엔지니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을 줄 사람이 없었다. 대신 윤상씨가 직접 데뷔할 기회를 준 것이다.


"제게 녹음과 믹스 전체를 맡겼어요. 왜 나한테 맡기지 하는 의문이 컸지만 ‘잘해야겠다 민폐만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죠. 또 팬이었기 때문에 함께 작업한다는 자체도 행복했어요. 윤상씨와 일하면서 보컬 디렉팅, 편곡 등도 참여했어요. 보컬디렉터가 없었고 녹음을 저와 둘이 하던 중에 윤상씨가 '이 부분에서 어떻게 부르는게 좋겠니'라고 물었어요. '살살 부르는 것보단 세게 부르는 게 듣기 좋다'고 답했죠. 나중에 보니 보컬이 의견을 물으면 '다 좋다'고 답하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라고 하더군요. 솔직하게 답한 덕분에 지금도 보컬디렉터가 없는 싱어송라이터 친구들과 작업할 때는 의견도 주고 받으면서 작업합니다."

출처: 네이버 뮤직, jobsN
(왼쪽부터)정식 데뷔한 윤상 5집 앨범 'There Is A Man', 믹싱을 담당한 리쌍 3집 'Library Of Soul', 곽 스튜디오 입구

'곽 스튜디오' 오픈…"이 직업 많이 알려졌으면"


음향 엔지니어를 시작한 지 10년쯤 되던 때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가수들이 소중하게 작업한 음악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커졌다.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뭐 하냐고 묻길래 일 관둘 거라고 말했죠. 선배가 자기 녹음실로 부르더군요. 갔더니 음악이나 듣자고 해서 수십 곡을 연속으로 들었습니다. 그만두겠다고 결정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으니 음악을 다듬어보고 싶은 영감이 떠올랐어요. 그걸 구현하고 싶은 욕구가 다시 생겼습니다."


2014년에는 여러 녹음실을 전전하는 생활을 접고 서울 마포구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이름은 곽 스튜디오. 건물 5층에 자리 잡았다. 홍대 근처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 뮤지션과의 작업도 많이 한다. 음향 엔지니어에게 들어오는 저작권료는 따로 없다. 녹음이나 믹싱비용을 받을 뿐이다. 이 비용은 엔지니어와 그들의 경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한 곡에 30만원, 누구는 100만원 이상 받기도 한다. 곽감독의 월 수입은 약 1000만원 수준. 작업량에 따라 더 적게 버는 날도 있다고 한다. 또 그는 가끔 편곡에도 참여하기 때문에 편곡자로서 저작권료를 받기도 한다.


20여년 간 음향 엔지니어로 활동해 이제는 베테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곽감독의 목표는 '잘하는 사람'이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아요. 목표를 이루고 나면 너무 허무하잖아요. 그냥 주변 음악인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 이 직업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음향 엔지니어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20년 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공감능력 덕분입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최대한 공감하려고 해요. 그래야 뮤지션들과 소통하고 그들이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흐릿하게나마 알 수 있습니다. 공감능력을 키우세요. 장르에 구애받지 말고 음악은 물론 영화, 그림, 여행 등 문화 전반을 접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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