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친구들보다 수입 많았지만.." 피아노 명장의 현실 조언

조회수 2020. 10. 4. 16: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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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동안 피아노 속 들여다 본 이 사람
남들 안 하는 일 찾다가 ‘조율사’로
일과 취미까지 두 마리 토끼 잡아
돈 대신 쌀로 요금 낸 손님도

어렸을 때부터 기술을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 동시에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우연히 교회에서 피아노를 조율하는 모습을 봤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길로 피아노 조율학원을 찾았다. 26년 동안 피아노를 조율해온 조영권씨(49)는 피아노를 고치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피아노 현의 음 높이(피치)를 맞추고 고장난 부품은 고친다.

출처: 본인 제공
피아노 조율사 조영권씨.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


“22살 때 피아노 조율을 가르치는 학원에 다녔다. 6개월 동안 정규 수업을 듣고 피아노 판매점에 취업해서 일을 시작했다. 조율은 물론이고 제품 판매나 고객 서비스까지 다양한 일을 맡았다. 학원 수업으로는 조율을 배우는 데 한계가 있어서 매장에서 대부분의 일을 손에 익혔다.


매장 직원으로 일하다가 10년 전부터 직접 피아노 매장을 경영하고 있다. 많은 조율사가 피아노 판매업을 겸한다. 프리랜서로 소속 없이 피아노 조율만 하는 사람도 소수지만 있다. 프리랜서 중에서는 여성이 더 많다. 조율사로 일하려면 피아노를 들거나 옮기는 등 육체적인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피아노를 수리하거나 분해하는 작업에도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자가 매장에 취업하기 유리하다.”


-조율 과정을 알려달라.


“어쿠스틱 피아노는 그랜드피아노와 업라이트피아노로 나뉜다. 그랜드피아노는 연주회에 쓰이는 대형 피아노다. 1700년대 초반 피아노가 처음 나왔을 때 그랜드피아노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집에서 쓰기에는 부피가 크다는 이유로 100년쯤 지나서 크기가 작은 업라이트피아노가 만들어졌다. 그랜드피아노는 자재가 많이 들어가서 비싸고, 스피커 역할을 하는 음향판의 면적이 넓어서 소리가 크다.


두 피아노 모두 조율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피아노의 케이스를 벗기고 ‘액션’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한다. 건반과 현을 때리는 해머 사이에 있는 액션은 6200~8000개 부품으로 이뤄진 정교한 부분으로, 소리를 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문제가 있으면 원래대로 고친다. 피아노는 현악기라서 시간이 지나면 음의 높낮이가 달라지는데, 이 피치를 조정한다. 절대음감이 아니라도 훈련을 하면 소리만 듣고도 음을 맞출 수 있다. 조율은 보통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한다.”

출처: tbs 유튜브 캡처
예술의전당은 전속 조율사를 두고 있다.

-지금까지 몇 대의 피아노를 조율했나.


“보통 피아노에 큰 문제가 없으면 한 대를 조율하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한 시간 일하면 10만원 정도 번다. 피아노 시장이 호황이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하루에 5~6대씩, 한 달에 100대까지 조율했다. 요즘은 시장 자체가 작아져서 일도 줄었다. 많아야 한 달에 20대 정도 한다.”


-갈수록 일이 줄고 있다고.


“10년 전부터 소비자가 어쿠스틱 피아노 대신 디지털 피아노를 찾았다. 디지털 피아노는 저렴하다. 보통 국산 기준 100만원대 초반이면 살 수 있다. 어쿠스틱 피아노 중 국산 업라이트피아노는 저렴한 게 400만원대다. 지금 매장에서 전시하고 있는 제품도 어쿠스틱 피아노보다 디지털 피아노가 훨씬 많다.


30년 전 디지털 피아노가 처음 나왔을 때는 제품의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 건반을 누를 때의 느낌인 타건감이 어쿠스틱 피아노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금은 디지털 피아노를 워낙 잘 만들어서 타건감은 물론이고 소리의 완성도도 높다. 가격도 저렴하고 차지하는 공간도 적으니 디지털 피아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출처: 유튜브 캡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는 모든 공연에 전속 조율사를 동행한다.

-조율사를 하려면.


“조율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있다. 학원에서 공부하거나 바로 피아노 판매점에 취업해서 조율을 배울 수도 있다. 국가기술자격으로는 업라이트피아노 조율 능력을 검증하는 ‘피아노조율기능사’가 있고, 그랜드피아노 조율 능력을 시험하는 ‘피아노조율 산업기사’ 자격시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조율 기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요즘은 조율사에 대한 수요가 많이 줄어서 피아노 판매점에서 사람을 잘 뽑지 않는다. 전문가에게 지도받는 게 조율사를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싶다. 피아노 판매점 직원으로 일하다가 경력이 쌓이면 대부분 직접 매장을 경영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매장에서 일할 때는 친절하게 고객 응대만 하면 끝이지만, 출장 중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언젠가 강화도에 출장 갔을 때는 돈 대신 찹쌀 한 말(8kg)을 받아온 적이 있다. 10년 전에는 한 학생이 조율을 의뢰했는데, 서울 유명 여대의 피아노과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조율을 하러 집에 방문했는데 형편이 아주 어려워 보였다. 수십 년 전에 만든 중고 피아노를 간신히 구해서 연습하고 대학에 간 것 같았다. 피아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조율뿐만 아니라 손 댈 부분도 많았지만 요금을 받지 않았다.”


-돈은 얼마나 버나.


“26년 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피아노 매장에서 받는 급여가 40만~50만원이었다. 개인적으로 의뢰가 들어와서 조율한 것으로 월급만큼 더 벌었다.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들보다 수입이 많았다. 당시 대기업 초봉이 한 달에 50만원 정도였다. 피아노 산업 자체가 호황이어서 조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수요도 많았다. 요즘은 조율만 해서는 많이 벌지 못한다. 매장에서 피아노를 팔아서 나오는 수익의 비중이 높다. 그래도 전문 기술인 만큼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출처: 조선DB 제공

-지방으로 출장도 많이 간다고.


“예전보다 많이 줄기는 했지만, 요즘도 한 달에 4~5번 지방에 내려간다. 미용실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처럼, 조율도 맡기던 사람한테 맡기고 싶어 한다. 수도권에 살던 손님이 지방으로 이사를 가도 의뢰가 들어온다. 이동 경비는 따로 받지 못하지만 일을 좋아해서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낯선 지역에 자주 가다 보니 맛집을 찾아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지방에 내려가면 외식을 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 눈에 들어오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기왕 지방까지 왔는데 소문난 식당을 찾아가기로 하면서 맛집 리스트를 적고 식당을 찾아다녔다. 남들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검색하다가 7년 전부터 직접 블로그를 운영해 맛집을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에는 맛집을 소개하는 책도 냈다. 출장 가면 일도 하면서 취미 활동까지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조율사에 관심이 있는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


“전자악기를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일이 많이 줄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 함부로 일을 추천하기는 어렵다. 1년에 한 번씩 악기박람회에 참석하러 중국에 다녀오는데, 갈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쇼룸에서 어쿠스틱 피아노보다 전자악기를 더 많이 전시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전자악기 산업의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어쿠스틱 피아노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다른 악기보다 피아노가 유난히 전자악기 시장의 성장이 빠르다. 바이올린이나 첼로보다 피아노를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서 역설적으로 전자악기 기술에 대한 투자도 다른 악기보다 더 일찍 시작했다. 전문 기술인이라는 자부심은 분명 있지만, 시장 상황은 분명히 알고 이 길에 뛰어들어야 한다.”


글 jobsN 송영조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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