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 정치·사회에 눈뜬 소년, 지금은..

조회수 2020. 9. 18. 14: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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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세상 일에 관심 없다'는 편견을 깬다, 1인 크리에이터 국범근
쥐픽쳐스 국범근 대표
요즘 애들 위한 시사 콘텐츠 제작
재미로 한 일이 직업으로

국범근(21)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활동한 1인 크리에이터다. 먹방이나 게임·뷰티 같은 유튜브 인기 콘텐츠와는 거리가 먼 ‘시사 이슈’를 다룬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십말이초)을 대상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라보는 영상 채널이자 1인 회사 ‘쥐픽쳐스(G pictures)’를 운영한다. ‘애들은 세상 일에 관심 없다’는 편견을 깬다.  


친구에게 말하듯이 편안하게 시사 이슈를 설명한다.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앞두고 선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기도 한다. 광복절에는 ‘열사와 의사의 차이’를 설명한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열사는 무력 아닌 맨몸으로 항거한 사람을 말해. 대표적인 예로 유관순 열사가 있지. 의사는 무력을 이용해 항거한 사람을 말하는데, 대표적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있어.’

출처: 쥐픽쳐스 제공
1인 크리에이터 국범근씨.

페북 팔로워수는 18만명, 유튜브 구독자수는 24만명, 누적 조회수는 2166만건을 넘는다. 비교적 인기가 떨어지는 시사와 역사를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수치다. 국씨의 콘텐츠는 요즘 세대를 전혀 몰랐던 부모 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요즘 세대와 부모 세대 간의 쿠션 역할을 자처한다. 26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주관하는 인문소풍 멘토로 참석한 국씨를 만났다. 10~20대 자녀들과 소통하고 싶은 부모 세대를 위해 요즘 세대 시각을 말하는 자리였다. 인문소풍은 유명 인사들과 하루 '소풍'을 즐기면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재미로 한 일이 직업으로


그의 영상은 ‘시사는 근엄해야 한다’는 인식에 반기를 든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비트코인을 설명하고 평양냉면을 먹으면서 북핵 문제를 말하는 식이다. 중년이 술자리에서 시사 이슈를 말하듯 10대, 20대도 음식을 먹으면서 시사를 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콘텐츠의 연성화’는 영상의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 목적은 아니다. 영상 한편에 이슈의 본질을 담는 게 중요하다. “시청자가 영상 한편만 봐도 특정 이슈의 배경과 맥락을 다 알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십말이초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영상을 무조건 짧게, 말할 때는 신조어만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이슈의 인과관계를 영상에서 잘 풀어내지 못하면 십말이초에게도 호응을 얻을 수 없어요.” 

출처: 쥐픽쳐스 유튜브
이슈먹방 '비트코인, 블록체인 한방에 이해하기' 편.

시사 이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난 후부터다. 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는지 궁금해 배경을 공부하다 답답함을 느꼈다. 역사적 사건을 파편적으로 설명할 뿐 앞뒤 맥락과 원인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정보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시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아요. 요즘 세대 시각에서 시사나 역사를 설명해주는 정보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고2 때 교내 UCC 대회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1인 크리에이터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학교 회장 선거를 통해 한국 정치를 풍자한 ‘프레지던트’가 그의 데뷔 영상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반응을 보고 두어 개 영상을 더 만들었다. 

출처: 쥐픽쳐스 제공
학창 시절 영상을 만드는 모습.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어요. 영상을 만들다 보니 더이상 ‘내가 재밌어서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영상을 만들 때면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까’라는 질문부터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에게 유익한 영상이 되길 바랐어요. 이 영상을 보기 위해 시간을 쓰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결과물을 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대학 입시보다는 영상 제작에 집중했다.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커서 뭐 될래’, ‘대학 입시에 도움 되지 않는 공부만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그와 교사인 어머니는 갈등하기도 했다. 자신의 진로를 두고 고민하면서도 교육 체제의 문제점을 영상으로 풀어냈다. 입시경쟁을 풍자한 ‘쾌변능력시험’이 대표적이다. 똥 잘 싸는 사람이 최고의 인재로 평가받는 똥 나라의 이야기를 담았다. 대한민국의 입시 경쟁을 '똥 냄새만 풀풀 난다'고 표현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잠시 일 쉬고 나를 돌아보는 중


시사를 다루는 범근뉴스, 이슈먹방을 비롯해 두명의 역사 인물이 랩 대결을 하는 한국역사인물랩배틀, 10대들의 생각을 담은 학교 썰전 등의 시리즈를 만들면서 입소문이 났다. 2017년에는 쥐픽쳐스 법인을 설립했다. CJ E&M 다이아TV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에게 콘텐츠 제작을 맡기는 기업과 기관도 생겼다.


“유튜브 수익구조는 조회수나 구독자 수뿐만 아니라 국가나 채널 유형에 따라 천차만별이에요. 제 경우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부모님께 용돈 받지 않고, 아르바이트하지 않고 먹고사는 정도입니다.”

9월부터 일을 잠시 쉬고 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저는 아직 어리고 성장기를 거치는 중입니다. 1인 크리에이터 일을 평생 직업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공백기를 보내면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 앞으로 제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려 합니다.”


어릴 적부터 학교 공부보다는 책을 좋아했다. 데미안 등 세계 고전, 역사란 무엇인가(E.H. 카),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같은 역사·철학서적, 태백산맥(조정래) 같은 대하소설 등을 섭렵했다.


인생에서 큰 고민이 있을 때마다 꼭 읽는 책이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테라)이다. “고2때 처음 읽었고,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때, 2년전 그리고 지금 4번째 읽고 있습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한 책입니다. 무거운 역사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이 존재의 가벼움을 추구하면서 각종 의무와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는 내용입니다. 제게도 사회의 기대나 제 안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책입니다.”   

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인문소풍에 명예 멘토로 참석한 국범근씨. 문소풍은 유명인사들과 하루 '소풍'을 즐기면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세대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다음은 인문소풍에서 국범근씨와 20여명의 참석자들이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날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1020세대와 부모세대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국씨는 “다양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제가 요즘 세대를 대표해서 말한다는 게 조심스럽다”며 “제 경험을 근거로 한 의견임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Q. (50대 참석자) 자녀가 밤새도록 게임에만 빠져삽니다. 요즘 30~40대에도 게임에만 빠져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걱정이에요.

A. (국범근) 저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게임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제 또래 친구들이 하는 게임이란 게임을 모두 했어요.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져서 지금은 안하기는 합니다만. 게임을 그만뒀다고 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보진 않습니다. 게임 속 세계관은 창조적인 문화 콘텐츠라 생각합니다. 짜임새 있고 상상력이 풍부해요. 제 경우에는 영상을 만들 때 게임을 했던 경험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장은 게임을 하는 게 비생산적이긴 해도, 이후 그게 어떤 식으로 기여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요. 물론 일상생활과 취미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Q. (50대 참석자)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걱정입니다.

A. 제가 정책을 입안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어느 한 문제를 해결한다고 풀리는 문제는 아닙니다. 너무 살기가 힘들어요. 서울에서 정직하게 일해도 집 한 채 사기 힘들고, 생활비도 상당하죠. 맘 맞는 사람과 만나 미래를 계획하면 좋은데,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큽니다. 자기 노력만으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또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느냐. 그건 다른 얘기죠. 누군가는 가정보다 개인의 자유가 더 소중할 수 있습니다. 과거 결혼은 양가 부모님끼리 하는 약속이었고 종의 보존을 위한 행위였습니다. 지금은 인간이 종의 보존만을 위해 사는 개체는 아니에요. 개인의 행복과 삶을 중시하는 가치관 변화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Q. (30대 참석자)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요.

A. 저는 2~3년전만 해도 콘텐츠를 만들 때 비판적인 의식을 반영하는 콘텐츠를 많이 만들었어요. 제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즉 욕해도 될 것 같은 사람을 정하고 ‘꼰대들 너무 싫지 않냐’고 말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과연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꼰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꼰대가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꼰대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세상이 원래 그래’라는 말을 자주 하죠. 자기가 경험하고 해석한 것을 절대 진리로 믿습니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지 않아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꼰대 마인드가 생깁니다.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습니다. 젊은 꼰대도 많습니다. 어느 순간 저도 고등학교 후배에게 ‘그러면 안돼’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하려 합니다.


Q. (10대 참석자) 제 꿈이 확실하지 않은데 어떻게 할까요.

Q. (20대 참석자) 범근님이 요즘 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Q. (30대 참석자) 아들이 하고 싶은게 없어요, 어떻게 할까요.

A. 요새 제 고민도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을까’입니다. 또래에 비해 당장 뭘 해야 할지 명확하지만, 저도 잘 모르겠어요. 4년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5년, 10년 뒤 제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고 생각해서, 저를 믿으려고 합니다. 10대, 20대 때부터 앞으로 이래야겠다 모든 걸 정하고 전전긍긍하기보다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Q. 세대 간의 어려움 해결 방식은

A.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지루할 것 같고 말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일단 들어보자’라는 식으로요. 의식적으로 열린 마음을 가지자고 되새기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소통의 부재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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