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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 빚 때문에 농수산대학 가야만 했던 고3 여고생, 지금은..

조회수 2020. 9. 18. 15: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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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농사로 이룬 꿈
스타 농부 강보람

강보람 씨가 고구마 농사를 시작한 건 스물한 살 때다. 20여 년 전 귀농한 부모님이 김제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는데, 맛은 좋으나 판로를 잡지 못해 헐값에 넘기기 일쑤였단다. 또 수확부터 보관까지 농사 관련 지식이 없어 실패가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겨우내 고구마를 보관한 하우스가 폭설에 무너져 내리며 5억 원의 빚을 져야 했다. 고교 3학년 대학 입시를 앞두고 어머니는 집안의 맏이인 그를 앉혀놓고 국비 지원이 되는 한국농수산대학 진학을 권했다.


“농부가 되겠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고 답했죠. 농업으로 집이 이렇게 무너졌는데 농사를 이어가자고 하니까 왜 아니겠어요. 어머니는 ‘농업에 희망은 있지만, 우리가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해 어려운 거다. 네가 농업 경영을 배워서 이끌어 달라’고 하셨어요.”


꿀고구마로 대박


부모님의 권유로 들어선 길이지만 농업으로 돌린 발길은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재학 중 농촌진흥청 고구마연구소에서 실습하다가 ‘꿀고구마’를 알게 됐어요. 맛도 좋고 재배가 쉽다기에 부모님을 설득해 밭에 심었죠. 이듬해에 꿀고구마 열풍이 불면서 많은 수익을 올렸어요. 빚을 다 갚을 정도로요. 그걸 지켜보며 농업에서는 생산도 중요하지만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가야 할 길을 알게 됐습니다.”


졸업만 하면 바로 농부가 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여자가 무슨 농사야?’ ‘공부를 못했나 보다’ ‘취업이 안 됐나 봐’ 등 주변의 비난이 등에 화살처럼 꽂혔다. 흔들리는 그를 세운 건 부모님이었다. 두문불출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고민한 끝에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1년여의 고민 끝에 ‘아빠와 딸이 함께하는 고구마 농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강보람고구마’를 만들었다.


‘강보람고구마’를 세상에 널리 알린 건 TV를 통해서다. 2015년, 그가 블로그에 올리는 농사일지를 보고 젊은 처녀가 농사를 짓는 게 신기하다며 섭외 전화가 왔고, 토크쇼 형식의 공중파 아침 생방송에 가족 모두가 출연했다. 어리바리 토크쇼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그의 가족은 6000여 건의 주문 전화를 받았다. 시청률이 10% 가까이 나오며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린 것. 이후에도 각종 TV 출연 요청이 쏟아졌고 나가는 방송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스타 농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TV에서 얼굴을 알리니 매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꿀고구마 농사는 매년 성장해 2015년 4억 원, 2016년 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6년에는 가락시장에서 최고 경매가를 찍었고, 농협중앙회에서 개최한 농산물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해 1등을 차지했다. 2017년에는 수출 길도 열렸다. 그는 “젊은이가 열심히 산다고 주변에서 도와주신 덕분”이라며 웃는다.


“방송이나 기사에서 매출이 억대라고 소개하니까 부자인 줄 알아요. 막상 제가 사는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죠. 농업은 돈을 좇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아요. 지독한 가난을 겪어봤고 교복 살 돈이 없어서 울어도 봤어요.”


그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가 사는 벽돌집은 첩첩산중 홀로 선 단층 건물에 호사로울 것 하나 없이 단출했다. 남들은 억대 매출이라고 하면 외제 차 끌고 다니며 돈깨나 쓰는 줄 알겠지만, 그에게는 어림없는 얘기다. 매해 들이는 시설비만 수억 원대. 아직 벌이보다 써야 할 돈이 더 많다.


지금의 그는 단단해 보이지만 어려서는 큰 병을 오래 앓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이 합성피혁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그 때문인지 태어날 때부터 악성 아토피로 고생했어요. 병원에 입원하느라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 했죠.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에 걸려도 폐렴으로 번졌어요. 한번은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해라’ 할 정도로 앓았죠. 전국 방방곡곡 좋다는 병원에 다녀 보았지만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가라’는 답뿐이었어요. 때마침 IMF로 공장 운영이 힘들어지면서 부모님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하게 됐습니다.”


강보람 씨는 어릴 적 꿈 많은 소녀였다. 책을 읽으며 작가를 꿈꿨고 TV에 나오는 화려한 연예인도 꿈꿨다. 선생님이나 사업가의 미래도 머리에 그려봤다.


선생님이자 연예인, 작가이자 크리에이터

“농업 안에서 제 꿈을 다 이뤘어요. 농업을 세상에 알리려 강단에 섰으니 선생님이고,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으니 연예인이고, 글짓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작가의 꿈을 이뤘죠. 리포터도 되고 싶었는데, 농업 크리에이터로 1인 방송을 시작하면서 그 꿈도 이뤘어요. 농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막노동꾼이 아니에요. 만능 직업인입니다. 농업경영, 마케팅, 회계, 디자인, 작가, 강사, 크리에이터 등 많은 직업을 포용해요.”


꿈을 이루기 위해 5년 차 농부의 하루는 바쁘다. 새벽부터 일어나 농장에 나가 모종을 심거나 트랙터로 땅을 고르고, 수확기에는 일손을 도와 고구마를 캔다. 해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일의 시작이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 ‘보람찬농부’에 영상을 올리기 위해 동영상을 촬영하고 콘텐츠를 편집한다. 또 1년 중 고구마를 종식해 수확하는 시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시간을 배움에 몰두하고 있다. 더 멋진 농부가 되기 위해 지난해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올해부터 무역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누군가가 저에게 직업을 묻는다면 당당하게 ‘농부’라고 답해요. 이 일을 사랑하니까. 후회한 적 없어요. 이 안에서 꿈도 이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 기대됩니다.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농사를 짓는 것, 그게 바로 농부의 사명입니다. 우리 농부들 그리고 농촌이 잘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글·사진 jobsN 서경리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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