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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A 초아, 소녀시대 수영 떠올리며 그렸어요”

서른에 그리기 시작해 ‘인생툰’ 만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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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의 세포들’ 이동건 작가
밴드 베이시스트 꿈꾸다 서른에 웹툰 시작
롱런하는 웹툰작가 반열에
“캐릭터 귀엽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흔들리는 버스에서 볼 수 있는 웹툰 그릴 것”

‘원고 수정할 시간이 주말밖에 없어! 서둘러 작업해야 겨우 끝낼 수 있을 거야!’

‘자신 없는데…’

‘큰일 났다!!! 사랑세포가 따라붙었어!!!!’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가진 두상과 소시지를 연상시키는 도톰하고 짧은 다리. 머리와 몸통을 감싸고 있는 파란색 쫄쫄이. 사람도 인형도 아닌 것 같은 귀여운 캐릭터는 네이버 인기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 등장하는 ‘세포들’이다. 이들은 한 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주인공 유미 마음속 한자리씩을 차지하는 사랑, 분노, 식욕 등의 감정을 담당하면서 선택의 순간마다 논리 대결을 펼치며 유미의 행동을 결정 짓기 때문이다.


‘30대 여성의 일과 연애’라는 식상한 주제를 다룬 이 명랑만화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여성 독자들에게는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작가’로, 남성 독자들에게는 ‘남자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형’으로 불린지 오래다. 회당 2만 개 이상의 ‘좋아요’ 세례를 받는 이 웹툰의 독자는 10대 초등학생부터 50대를 아우른다. 유미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수는 200만명을 넘었다. 유미의세포들 단행본을 비롯해 게임, 의류, 인형에서부터 이야기에 등장하는 떡볶이까지 상품으로 나왔다. jobsN이 유미의 세포들의 ‘아버지’ 이동건(37) 작가를 만났다. 국내 언론을 포함한 미디어와의 대면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동건 작가.

출처jobsN

다이어리 스티커에서 탄생한 첫번째 작품 ‘달콤한 인생’


웹툰 작가가 꿈은 아니었다. 미대를 자퇴하고 밴드 베이시스트 활동을 하며 홍대 언저리에서 20대를 보냈다. 10년을 매달려도 주목을 받지 못하자 ‘더 이상 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손 댄 문구제품 판매도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물건을 팔아야했기에 만화로라도 제품을 알려보자는 생각으로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데뷔작 ‘달콤한 인생’은 그렇게 탄생했다.


“재능은 없는데 애정만 많은 일을 하니까 슬퍼지더라고요. 음악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 같았어요. 밴드 활동을 접고 문구회사에서 제품 디자인을 했어요. 그런데 회사가 업종을 바꾸면서 제가 할 일도 없어졌죠. 집에서라도 물건을 만들어 팔아야했어요. 다이어리에 붙이는 스티커를 만들었어요. ‘오늘도 활기찬 하루!’, ‘수고하세요’ 같은 문구가 적힌 스티커요. 근데 도무지 팔리지를 않더라고요. 하루는 이걸 어떻게 팔까 고민하다가 만화를 그려서 알려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처'달콤한 인생' 캡처 화면.

다이어리 스티커를 홍보하려고 만든 웹툰 달콤한 인생은 2011년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올리는 코너인 '네이버 도전만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커플의 사랑과 일상 얘기를 담은 이 웹툰은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1년 동안 연재를 이어갔다. 물건 팔려고 그린 웹툰이 제품보다 더 인기를 모았다. 그러던 중 기대하지 않은 ‘러브콜’을 받았다. 네이버가 정식 연재를 제안했다.


“달콤한 인생은 말풍선이 없는 웹툰이었어요. 만화를 만드는 방법 자체를 몰랐던 때죠. 정말 마음대로 그렸어요. 배경, 구도 이런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요. 정식 연재를 시작하면 '이렇게 하는 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정식 연재 후 초반에 조회 순위가 낮아지기도 했고요. 메이저 무대로 진출하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깨달았어요. 이후 헤어진 남녀의 얘기를 다룬 ‘전 여친’을 다음에 연재했어요. 헤어진 남녀가 각기 어떻게 시간을 보내면서 이별을 마무리해 나가는지를 그린 작품이에요. 유미와 웅이(유미 전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전 여친’ 스토리를 떠올리면서 만들었어요.”


‘안 돌아가는 맷돌 굴리지 마’ 아내와 나눈 대화에서 얻은 모티브 

웹툰에 등장하는 세포들과 이동건 작가.

출처jobsN

준비 중이던 작품은 ‘유미의 세포들’이 아니었다. 주인공 이름이 ‘유미’이긴 했지만 내용은 달랐다. 초안을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너무 재미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당장 새로운 것을 준비하기에 시간이 빠듯했지만 아내가 함께 생각해보겠다고하니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아내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자 그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 “으이그, 맷돌 안 돌아가면 내버려 둬. 애써 굴리지 마.” 평소 자주 쓰던 말인데 그날은 "빵 터졌다”고 한다.(유미의 세포들 웹툰에는 결단이 필요한 순간 세포들이 힘을 합해 맷돌을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가는 "음, 어디 맷돌 한 번 그려볼까"라며 연습지에 맷돌을 그리고 캐릭터들이 굴리는 모양을 그렸다. 웃음보가 또 한 번 터졌다. 이틀 만에 두 편을 후다닥 만들어 회사에 보냈다. 그의 세 번째 작품 ‘유미의 세포들’이 탄생한 비화다.


“처음 유미 얼굴을 구상할 때 평범하게 그리려고 했어요. 너무 예쁠 필요도 그렇다고 못생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죠. 유미의 단발머리는 당시 걸그룹 AOA 멤버 초아를 보고 떠올렸어요. 어중간한 길이의 ‘거지존’ 머리일 때는 모델이 소녀시대 수영이었어요. 어느날 수영이 길거리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봤는데 너무 예뻐 보였어요. ‘나중에 유미가 머리를 기르면 저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유미 남친 유바비의 가운데 가르마는 아내가 보여준 지드래곤을 사진을 참고해서 그렸어요. 남자인 제가 봐도 멋졌거든요. 의상디자인을 하던 아내가 유미나 바비의 의상을 그리는데 도움을 많이 줘요. 저는 좀 쨍한 색으로 그리고 싶은데 아내가 ‘요즘 누가 그런 옷을 입느냐’고 핀잔도 줍니다. 옷 잘 입는 유미, 바비를 그릴수 있는 것은 아내 덕분이에요."

웹툰에 등장하는 세포들.

출처'유미의 세포들' 캡처 화면

유미나 바비의 스타일만큼 주목받는 또 다른 주인공은 세포들이다. 각기 역할에 따라 성격이 다른 세포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누가 봐도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만드는 귀여운 외모다. 작가가 제일 좋아한다는 떡꼬치를 머리 위에 꽂고 다니는 ‘출출세포’, 야릇한 생각을 할 때마다 실눈을 뜨며 등장하는 ‘응큼세포’, 세포들 중 유일하게 핑크색 옷을 입은 ‘사랑세포’, 미련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구질구질 세포’ 등 등장하는 40여개의 세포들마다 개성이 분명하다.


“캐릭터가 귀엽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아요. 일본 만화 철완 아톰의 작가 데즈카 오사무가 그린 '불새'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그 영향도 받은 것 같아요. 초반에 세포들과 유미 발을 아톰 발처럼 뭉뚝하게 그렸어요. 왜 저렇게 코끼리 다리처럼 그리냐는 얘기들도 하는데 제 눈에는 그게 너무 좋아 보였거든요.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취향도 담겼고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너야’...항상 끝자리 앉았던 나를 생각하며 떠오른 대사”

이동건 작가.

출처jobsN

‘헤어질 마음이 없는 여자 친구는 결국 져주는 것 말곤 선택할게 없어.’


남자친구와 이별을 직감한 주인공이 내뱉은 이 대사는 여성 독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동건이 형’은 독자들이 이 작가를 부르는 애칭이다. 이름만 보면 단박에 성별을 가늠할 수 있지만 작가 이름을 알기 전에 웹툰을 보면 ‘여성 작가가 썼을 것’이라 추측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만큼 표현이 섬세하다는 얘기다. 혹시 아내에게 카운슬링이라도 받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성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근데 솔직히 그런 말에 잘 공감이 안돼요. 사실 단어 하나만 바꾸면 남자의 마음이거든요. 헤어질 마음이 없는 남자 친구는 결국 져주는 것 말곤 선택할게 없죠. 저도 처음에는 남자의 마음과 여자의 마음이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은 어떻게 표현하느냐 차이인 것 같아요. 같은 말도 단어마다 다르게 쓰면 확 느낌이 달라지거든요. 연애가 아니더라도 친구, 회사, 학원처럼 주변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그건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자주하면서 터득한 거에요. 아내는 흔히 말하는 여성의 감수성과는 거리가 좀 먼 사람이에요. 간지러운 표현을 싫어하고 저보다 무뚝뚝한 편이에요.”

출처'유미의 세포들' 캡처 화면

세포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다가도 무심한듯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명대사'를 내뱉는다.

‘운명은 없어. 선택만 있을 뿐이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명이거든’ 같은 대사는 이 작가가 스스로에게 해주던 말이기도 하다. “어떤 자리에 가면 끝에서 두 번째쯤 앉거나 주목 받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자존감이 엄청 떨어졌을 때였어요. 당시 정확하게 대사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건 내 인생인데 어떤 무리의 의견에 맞춰서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무리를 떠날 수도 있는 거잖아라는 생각이요. ‘나는 딱 이 정도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규정해리면 ‘뭘 해도 안된다’는 얘기가 돼요. 그래서 선택을 하기로 했어요. 그러면 인생도 바뀔 것이라 믿었고요. 세포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욕망이죠.” 

출처'유미의 세포들' 캡처 화면

매 회 짧은 문장이지만 곱씹을만한 의미를 담는 대사들이 나올 때 독자들은 즉각 반응한다.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을지 궁금했다. “50대 여성이라고 소개한 분이 메일을 주셨어요. 웅이와 서새이가 말싸움을 하는 장면에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서 친구로 삼는 것이지, 친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었어요. 사업 파트너와의 관계를 이어갈지 말지를 두고 굉장히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던 중 웹툰을 보고 비로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메일을 받고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묘하더라고요. 책임감도 느껴졌고요.”


“흔들리는 버스서도 볼 수 있는 웹툰 그리고 싶어”


유미의 세포들이 네이버 웹툰에 연재된 횟수는 지금까지 총 347회. 올해로 4년째다. 일주일에 두번씩 꼬박꼬박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뭘까. 그는 세이브 원고(예비 원고)를 두지 않는다. “예전에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 세이브 원고를 갖고 있던 적이 있긴 했어요. 그런데 만족도가 너무 떨어져서 이제 안해요. 원고가 미리 있다고 생각하면 위기의식도 덜해지고요. 토요일자 원고는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준비해요. 시간을 타이트하게 잡고 생각하면 저만의 한계도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아요. 원동력은 굳이 꼽자면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보는 습관 아닐까 싶네요. 취향이 일정치 않은데 공포물 빼고 추리, 로맨스를 좋아해요. 한 달에 영화는 서른 편 정도 봐요. 한국 드라마 말고 미드, 영드, 일드도 많이 보고요.”


2015년 서른한 살이었던 유미는 이제 서른네 살이다. 작가는 유미의 세포들과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미는 초반에 감정을 많이 숨기던 사람이었어요. 그 감정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관계 없이요. 유미가 감정을 잘 드러내는 사람으로 변했으면 좋겠어요. 감정, 욕망에 솔직하면서 좀 멋지게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으로요. 그런 것이 어른이 아닐까 싶거든요. 유미의 세포들이 끝나고 앞으로 그릴 다른 웹툰들도 '가볍게’ 그리고 싶어요. 제 모토는 ‘편하게’에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편하게 보는 웹툰을 꾸준히 그리고 싶습니다.”


글 jobsN 김지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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