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체질이요? 안 믿기시겠지만, 저 아역 배우였어요"
남의 집을 꾸며주고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 이른바 홈스타일리스트다. 최근 자신의 취향에 맞게 집을 꾸미는 문화가 퍼지면서 주목 받는 직업이다. 영어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5년 전 홈 스타일리스트로 변신한 김지율(38) 이동구갤러리 이사는 ‘라킴(RaKim) 스튜디오’라는 닉네임으로 일하는 홈스타일리스트다.
10월 10일 과천의 한 외국계 페인트 업체에서 홈 스타일링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김지율 씨를 만났다. 열정적이었던 강의의 여운이 남아있는 듯,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 톤이 살짝 높은 상태였다.
- 홈 스타일리스트는 생소한 단어다.
“글자 그대로 집을 꾸며주는 사람이에요. 홈 스타일리스트는 두 종류가 있어요. 집 구조까지 뜯어 고치며 인테리어 하는 스타일리스트가 있고, ‘홈 드레싱’이라고 공간은 그대로 두고 가구, 패브릭(커튼, 침구), 소품으로만 집을 꾸며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홈 드레싱을 하고 있어요.”
-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집을 새롭게 꾸미려는 고객들의 의뢰를 받아서 상담을 통해 집 전체를 하나씩 꾸며나갑니다. 주로 이사를 하거나 새 집에 입주하는 분들이 고객들이죠. 집 도면을 보고 집을 분석한 후, 가족 구성원을 고려해서 동선에 맞게 가구를 배치해요. 그리고 구성원들 취향에 따라 톤을 맞추고 패브릭과 세밀한 소품까지 고객과 고민해서 선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 강의도 많이 하시던데.
“오늘은 페인트 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컬러 매칭에 대해 강의를 했어요. 입소문이 나면서 강의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입니다. 삼성전자에서도 강의를 해요. 가전제품 판매원들이 홈 스타일링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 고객들의 성향과 집 인테리어에 맞는 제품 추천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합니다. 일반인들 대상으로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집 꾸미는 방법에 대한 강의도 해요. 가끔은 새 아파트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요청도 들어옵니다.”
- 홈 스타일리스트는 어떻게 시작했는지.
“영어 학원 강사를 10년쯤 했을 때 가구 전문점을 운영하시는 어머니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출이 지지부진하던 가구갤러리를 살려보고 싶었는데, 홈 스타일링을 접목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한 2013년 당시만 해도 자료가 많이 없었어요. 가르쳐 주는 곳도 없었구요. 포털 사이트에서 있는 자료는 다 찾아보고 박람회 등에 가서 직접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해외 자료까지 모두 찾아가며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집을 꾸며보는 연습도 필요했습니다. 자료에 있는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색감과 톤을 보는 건 차원이 다르거든요. 가구 전시장을 리모델링하면서 직접 30평형 대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만들었어요. 벽면 색깔도 수없이 바꿔보고, 집을 갖가지 콘셉트로 꾸며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보며 공부했어요. 지금은 많이 대중화돼서 홈 스타일링에 관한 강의도 많고 학원까지 생겨났습니다.”
- 결과가 좋았나요.
2013년에 매출이 전년 대비 40% 올랐어요. 이후로 지금까지 매년 매출이 30% 이상 오르고 있습니다.
- 본인의 스타일은 무엇인지. 요즘의 트렌드도 궁금합니다.
“고객 중에 90% 이상이 화려한 것 보다는 실용적이고 심플한 스타일을 선호해요. 집을 적극적으로 꾸미는 연령대가 30~40대이고, 고객 대부분이 평범한 주부들입니다. 저는 특별한 스타일을 선호하기 보다는, 의뢰하는 고객들에게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중적인 트렌드가 계속 바뀌다보니 하나의 스타일만 고집하다가는 뒤쳐질 수 있거든요. 예전에는 화려한 엔틱가구가 인기였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구조가 주방과 거실은 커지고 방은 작아지는 형태로 변하고 있어서 부피가 큰 엔틱가구는 인기가 없어졌습니다. ‘미니멀라이즈’ 스타일이 뜨면서 최근에는 깔끔한 북유럽풍 스타일이 유행이고, 원목 재질을 많이 선호합니다.”
- 실적 이야기를 해볼까요. 가구갤러리에서 홈 스타일리스트로 일하자마자 가구점 매출이 40% 늘었습니다. 비결이 뭐였나요.
“홈 스타일리스트를 필요로 할 것 같은 곳을 찾아다녔어요. 주로 새로 입주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을 공략했습니다. 새 집으로 들어갈 때는 집을 전체적으로 다시 꾸미고 싶어 하거든요. 가구 공동구매 입찰을 위한 설명회에서 가구에 대한 단순 설명이 아닌, 홈 스타일링을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인상적이었나 봐요. 공동구매 업체로 선정되는 일이 많았고 입주자들로부터 홈 스타일링에 대한 상담 요청도 많이 받았습니다.”
- 강의도 하고 프레젠테이션도 잘 하는 걸 보니 무대 체질인가요.
“하하. 안 믿기시겠지만 어렸을 때 아역 탤런트였어요. 초등학교 때 드라마 연속극에도 출연했죠. 1992년 방영한 '궁합이 맞습니다'란 드라마였습니다. 고등학교는 예고 연극영화과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학원 강사도 해봤으니, 무대 체질 맞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앞에서 말하는 게 재밌거든요. 그게 지금도 일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 일 하는 게 재밌어 보이는데.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과 인연을 맺고 감동을 주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일이 그렇거든요. 고객들과 함께 집을 꾸며나가고 하나하나 골라주면서 만족감을 느낄 때 희열을 느낍니다. 가끔 홈 스타일링을 해주고 몇 년 지났는데 연락 오는 분들도 있어요. 이 일이 재밌는 이유입니다.”
글·사진 오종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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