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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여상무님이 새벽 5시반부터 회사 택시를 모는 이유

조회수 2020. 9. 25. 16: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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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상무님이 새벽 5시반부터 회사 택시를 모는 이유
SK텔레콤 여지영 상무 택시운전자격증 취득
새벽 5시 반 출근…사납금 못채워
기사와 승객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

늦은 밤 영등포역. 거나하게 취한 승객이 택시에 오른다. 얼마 가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하니 5000원을 내민다. 미터기에 찍힌 금액은 3900원. 거스름돈을 챙기자 반쯤 꼬부라진 혀로 말을 건넨다. "젊은데 택시 운전하냐. 잔돈은 됐고 고생해라." 팁 1100원을 받았다. 초보 택시 기사 진성주씨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사납금을 채워야 하니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분들이 고맙긴 하지만 초면에 술에 취해 반말하는 건 기분이 나쁘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택시기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 사실 SK텔레콤 직원이다. 진성주 매니저를 포함한 T맵 택시 사업본부 직원들은 지난 6월부터 직접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T맵 택시 앱 개발을 위해 현장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사와 승객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위한 사업본부장 여지영(51)상무의 아이디어였다. 그 결과 2개월 뒤 모든 팀원이 택시운전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도 15명 팀원 가운데 2~3명은 택시를 몰고 있다. 생전 처음 택시 운전대를 잡은 여 상무와 그의 팀원을 만났다.

출처: SK텔레콤 제공
여지영 T맵 택시 사업본부장

개발도 이해와 공감이 먼저


SK텔레콤은 택시 배차 앱인 T맵 택시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작년 11월 조직을 개편했다. 그동안 외부업체에 맡겼던 T맵 택시 개발 업무를 TTS(Total Transportation Service)사업부로 옮겼다. TTS사업부는 운송 서비스에 관한 모든 것을 관장하는 부서다.


여 상무는 “사용자와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만든 서비스는 제 구실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택시 배차앱을 사용하는 승객들을 인터뷰해 불편한 점을 물어보고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도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입니다. 경험을 살려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죠. 그러나 택시기사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려니 현장 답사 및 취재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승객으로서의 경험만 있지 택시기사로의 경험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직접 해보기로 한 것이죠. 택시 기사 자격증을 따보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사업본부 15명 모두가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격증을 취득할 시간에 간접 인터뷰를 하거나 이용자를 늘릴 마케팅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여 상무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도록 설득했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을지라도 경험에서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고 믿었어요. 승객을 조사하고 마케팅 방안을 세우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SK텔레콤 제공
T맵 택시 사업본부

인·적성→필기→LPG운전자 교육→운수종사자 교육


택시 운전을 하려면 택시운전자격증이 필요하다. 택시운전자격증은 두 번의 시험과 두 번의 교육을 거쳐야 취득할 수 있다.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필기시험에 응시하려면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하는 운전적성정밀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아야 한다. 이동물체 속도추정 능력, 변화탐지능력 등을 평가한다. 운전할 때 필요한 자격을 평가하는 적성 검사인 셈이다. 이후 인성 검사 141문항을 풀어야 한다. 적합 판정을 받으면 다음 단계인 필기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필기시험은 LPG자동차 관리법, 도로교통법, 운송 서비스(영어·일어·중국어), 지리 부문에서 80문제가 나온다. 여 상무는 지리가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고산자로는 어디 있나' '남부세무서가 있는 동을 쓰시오' '다음 중 9호선 지하철역 라인에 있지 않는 건물은 무엇인가' 등을 물어요. 지도를 펴놓고 기출문제를 보면서 직접 지도에 그 위치를 표시해가면서 외웠습니다."


시험 준비를 위해 기출 문제집을 사서 퇴근 후와 주말에 공부했다. 앞서 시험을 본 팀원들이 줄줄이 합격하자 압박도 있었지만 100점 만점에 85점으로 합격했다. 자격증 취득 후 바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 실시하는 LPG자동차 운전자 교육과 교통연수원의 신규 운수종사자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미터기 조작법, 카드결제기 사용법 등을 여기서 배운다. 교육까지 마쳐야 승객을 맞이할 준비가 끝난다.

출처: SK텔레콤 제공
직접 택시 운전을 한 여 상무

새벽 5시 반 출근…사납금 채우지 못해 사비로


자격증을 딴 구성원들은 현장으로 나갔다. 최소 2일에서 많으면 5일씩 택시를 운전했다. 여 상무도 그중 한 명이었다. 택시는 두 개 조로 운영한다. 새벽 5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택시를 모는 주간 조와 오후 5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운행하는 야간 조다. 여 상무는 주간 조였다. 평소 출근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운전석에 앉았다. 걱정이 앞섰다. 내가 모르는 승객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모셔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고 한다.


5시 30분에 출발했지만 9시까지 승객 4명을 태운 것이 다였다. 초보 택시 운전자가 손님이 많이 몰리는 곳, 일명 '스팟(spot)'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승객 없이 빈 차로 돌아다니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차를 회사에 반납하기 전 사납금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납금은 하루 12시간 택시를 사용하는데 내는 일종의 렌트비다. 하루 12만5000원을 채워야 했지만 여 상무는 2500원 정도 모자랐다. 부족한 금액은 회사에서 택시기사에게 주는 1일 기본급에서 뺀다.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기사가 가져가는 금액이 줄어드는 것이다. 반대로 사납금을 채운 후 벌어들이는 수익은 모두 택시기사의 몫이다. 월 평균 220만원을 번다고 한다. 그러나 서툰 초보 기사는 월 100만원 벌기도 빠듯하다.


“한 택시기사 중 한 분은 한 달에 400만원을 번다고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주 5일, 오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꼬박 19시간 운행을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입니다. 일반 직장인보다 2배를 일하는 셈이죠.”

출처: SK텔레콤 제공
여지영 상무(좌)와 T맵 택시 관련 회의하는 사업본부 팀원들(우)

딸 걱정에서 시작한 '안심귀가 라이브 서비스'


직접 운행을 하면서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택시기사들의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운전 중 전방주시를 해야 할 기사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쏠린다는 점이다. “거리에 있는 승객을 태우기 위해 오른쪽 인도를 보는 것은 물론 운전 중 ‘콜’이 울리는 핸드폰 역시 오른쪽에 있어요. 그 밖에도 미터기를 켜고 끄는 것, 표시 문구 변경 등 운전 외에 조작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운전에 집중할 수 있게 앱 화면 구성을 간소화하고자 했습니다.”


택시 운전사끼리도 경쟁을 벌인다.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불법 유턴, 신호 위반 등을 하기도 한다. T맵 택시 사업본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기술로 배차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라면서 “현재 순방향 배차 알고리즘을 탑재한 택시를 시범 운영 중”이라고 했다. 기존 배차 앱은 방향에 상관없이 가장 가까이 있는 택시를 배치한다. 그러나 T맵 택시는 거리가 아닌 최단 도착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또 순방향·역방향 정보를 제공한다. 이때 택시 기사는 방향을 미리 파악해 승객과 직접 도착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무리하게 속도를 내거나 불법 유턴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여 상무는 이틀 동안 택시를 몰았다. 앱 기능 개발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다시 운전대를 잡을 준비가 돼 있다. 한편 그는 엄마로서 앱에 필요한 기능을 제안하기도 했다. 늦은 밤 귀가하는 딸 걱정에 딸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 통화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에 택시 정보는 물론 실시간으로 자녀가 탄 택시가 집에 가까워오고 있는지 동선을 볼 수 있는 ‘안심 귀가 라이브’ 기능을 추가했다. 기존 택시 배차 앱은 택시를 타면 호출한 택시의 정보가 문자로 뜨지만 그 기능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구성원 절반은 거리 위에서 택시운전사로 미래의 고객을 만나고 있다. 이들이 현장에 직접 나가는 이유는 한 가지다. “시민의 이동권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동시에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택시를 통해 생계를 책임지는 기사분들의 생활을 높이는 방안을 찾고 싶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운전을 하는 고단한 환경에 있는 택시기사분들이 T맵 택시 앱을 통해 수익을 내고 시민들에게 친절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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