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사람들 웃기려고 잡았다가 직업이 바뀌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5. 16:04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웃기려고 한 지휘, 직업으로 바꾼 이 사람
유쾌한오케스트라 단장 김현철
2014년부터 지휘자로 본격 변신
악보 못 읽어 클래식 곡 전부 외워

초등학교를 다녔던 소년은 남을 웃기는 걸 즐겼다. 또래 친구들이 당시 유행한 개그맨을 따라 하곤 했는데, 그에게는 너무 진부해 보였다. 새로운 것을 찾다 발견한 게 성악. 가사도 몰랐지만 소리 나는 대로 ‘오 솔레 미오’를 따라 했다. ‘Che bella cosa’(케 벨라 코자)라는 부분은 ‘케벨라 꽂아’로 불렀다. 성악가의 표정까지 흉내 내니 친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조금 더 욕심이 난 그는 젓가락을 들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에 맞춰 지휘 흉내도 냈다.


이 소년은 자라서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지휘봉도 함께 잡고 있다. 개그맨이자 유쾌한 오케스트라 단장 김현철씨를 만나 개그맨의 오케스트라 지휘 도전기를 들었다. 지식공유 서비스 위키피디아에서 김현철을 검색하면 ‘대한민국의 지휘자이자 개그맨’이라고 나온다.

유쾌한오케스트라 김현철 단장

지금은 지휘자 아닌 ‘지휘 퍼포머’


“위키피디아에 지휘자라고 나와있지만 감히 지휘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휘자용 악보’(스코어)도 볼 줄 모르거든요. 지휘자는 오랜 시간 음악을 공부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입니다. 저는 클래식을 좋아하고 지휘자 흉내를 내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거죠. 사람들이 지휘자라고 불러주는 것이 좋고, 멋진 지휘자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지금은 지휘 ‘퍼포머’(performer)라고 불러주세요.”


김단장의 집안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학창시절 음악 실기 시험을 보면 노래를 못한다며 혼이 날 정도로 음치였다. 그런데도 그가 클래식을 좋아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좋아해서다. 그러다 중학교를 다닐 때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


“이전까지는 그저 웃기려고 연주자를 따라 했어요. 그런데 아마데우스를 보고 충격에 빠졌죠. 그때부터 클래식을 제대로 듣기 시작했어요. 음악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지만 클래식 연주에 사용하는 악기 소리 하나하나 구분해서 듣기 시작한 거죠.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곡은 통째로 외워서 지휘를 따라 했어요. 1994년 SBS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하고 나서도 개그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고 지휘하기도 했어요.”


개그맨이 무슨 지휘자냐 싸늘한 시선도


클래식 개그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를 개그맨으로 성공시킨 건 ‘말더듬이’ 캐릭터였다. 하지만 방송가에서는 이미 ‘클래식을 좀 아는’ 개그맨이었다. 2013년부터 이숙영의 파워FM에서 ‘어설픈 클래식’이라는 코너를 맡았다. 그 해에 클래식 음악회에서 해설을 맡아 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해설을 하면서 관객 앞에서 지휘를 해보라는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다. 어설픈 개그를 기대했는데, 제법 능숙한 솜씨에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눈을 의심했다.


“제법 그럴싸하게 했던 것 같아요. 끝나고 나니 박수가 엄청나게 쏟아지더라고요. 그런 기쁨은 20년 개그맨으로 방송생활을 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죠.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4년은 개그맨 김현철이 음악인 김현철로 본격적으로 변신한 해다. 그해 7월 2014년 은평인터내셔널유스오케스트라가 부지휘자 자리를 제안했다. 보수는 없는 명예직이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은평구 청소년들과 매년 공연을 하고 있다. 그해 말 ‘유쾌한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2015년 6월 ‘제주 해비치 아트페스티벌’에 참가했다. 클래식 공연을 보기 힘든 지방에서 공연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지방 공연이 있어요. 최근에는 경주에도 다녀왔죠. 지자체 예산으로 하는 공연은 심사가 엄격한 데, 그 관문을 뚫은 것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를 창단할 때 연주자들과 클래식 애호가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개그맨이 지휘자 흉내 내 박수 좀 받았다고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자를 직접 뽑는다고 하니 거부감이 생긴 것. 클래식을 개그맨이 웃음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는 겸허하게 그런 비판을 받아들인다.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신성하게 여기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우리 오케스트라는 사람들이 클래식을 즐겁게 누리게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모였습니다.


클래식 비전공자이고, 아직 10년도 못 채운 신입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연극의 3요소는 무대, 관객, 희곡입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관객이죠. 보지 않는 연극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클래식도 더 많은 사람이 즐겁게 들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이 훌륭한 지휘자라고 기억하면 제일 좋겠지만, 클래식 전도사였다고 기억해줘도 충분합니다.”


클래식 개그도 언젠가 재도전 할 것


그는 지휘할 음악을 악보를 보고 공부하지 않는다. 사실 스코어를 공부한 적이 없어서 볼 줄 모른다. 계속 반복해 들으면서 곡 전체를 외운다. 개별 악기들의 소리를 미세하게 구분해서 들어야 한다. 지휘를 해낼 수 있는 곡은 40곡 정도다. 일 년에 1곡 정도 그의 지휘 레퍼토리에 추가한다. 요즘은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을 외우고 있다. 40곡이어도 한 공연에서 모두 소화할 수 없으니 레퍼토리는 충분하다고 한다.

출처: 사진 MBC 능력자들 캡처, 김현철 제공
김현철 단장이 예능프로그램에서 모차르트를 재연한 모습(왼쪽)과 지휘 장면.

“지휘자가 악보를 보고 곡을 떠올린다면, 저는 곡을 듣고 나름의 악보를 그립니다. 계속 듣다 보면 나름의 공식이 생기거든요. 연주하는 사람들은 ‘악보도 안 보고 어떻게 지휘를 하느냐’고 궁금해해요. 그러면 ‘어떻게 악보를 보고 지휘를 하냐’고 되묻죠. 악곡을 외워서 연주하는 것을 암보(暗譜)라고 합니다. '안 보고' 지휘한다고 하니까 '암보로' 지휘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암보 지휘는 거장들이나 하는 거라면서 실력을 오해하신 거죠.”


방송활동도 하고 있지만 요즘은 클래식 공연이나 강연에서 그를 더 쉽게 볼 수 있다. 지방에 클래식 해설 강연을 나갈 때도 단원 몇 명은 꼭 함께 간다. 해설을 하면서 연주를 하면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방송활동과 공연을 함께 하고 있지만 본업이 바뀐 것 같아요. 방송 출연과 공연 계획이 겹치면 무대에 서는 걸 택합니다. 수입은 반이나 줄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로 사람들이 즐거울 수 있다면 그걸로 행복합니다. 나중에 더 실력이 쌓여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때쯤에는 다시 클래식 개그를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글 jobsN 최광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