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빚더미에서 100억 회사 대표로..신불자의 인생역전

조회수 2020. 9. 25. 15: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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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빚더미에서 100억 회사 대표로..신불자의 인생역전
집닥 박성민 대표 인터뷰
건설업 하던 부친 영향으로 인테리어 관심
10억 빚더미 속에서도 ‘내 사업’ 꿈 지켜
출처: 집닥 제공
박성민 집닥 대표.

“현장에 나가면 몸은 힘들어도 잡생각이 안 나요. 지방으로 출장이라도 가면 거기서 하루 건 이틀이건 머물면서 교통비도 아끼니까 좋고요. 다시 저의 과거로 돌아간 거죠. 그렇게 살면서도 이게 참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박성민(43) 대표가 집닥을 만든 이유다. 집닥은 한 달 평균 견적 신청만 6000건이 들어오는 인테리어 업체 중개 플랫폼이다. 인테리어를 하고 싶어도 마땅한 업체를 찾을 방법이 없어 막막해하는 이용자와 인테리어 업체를 연결해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인테리어는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시공 현장에 들락거린 경험이 녹아든 아이템이다.


박 대표가 인테리어 중개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기까지 녹록지 않은 시간들이 있었다. 이십 대에 호기롭게 벌인 사업이 크게 실패했다. 삶이 바닥을 친 순간을 견뎌내야했다. 지난 11일 강남구 역삼동 집닥 사무실을 찾아 박 대표를 만났다.


게임보다 PC 좋아한 꼬마가 가출한 사연


‘컴퓨터’.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 매개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컴퓨터 학원이란 곳을 갔다. 컴퓨터를 배우려고 간 학원에서 공부보다 게임을 더 많이 시키는 게 꼬마 눈에는 이상해 보였다. 서점에서 책을 사서 코볼, 베이직같은 컴퓨터 언어를 독학했다. 학원을 다니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빠져 들었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부수고 조립하고 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컴퓨터도 기계니까 관심이 가더라고요. 혼자 공부하니까 진도가 팍팍 나가더라고요. 베이직, 코볼 같은 컴퓨터 언어를 알게 되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내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되니까 친구들한테도 알려주고 싶어서 저만의 언어로 쓴 책도 만들었어요."

출처: 집닥 제공
박성민 집닥 대표.

‘컴퓨터 사랑’은 고등학교에 가서도 이어져다.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은 새벽 6시. 전교에서 가장 먼저 등교하는 학생이었다. 컴퓨터가 있는 동아리방에 가기 위해서다.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 컴퓨터를 만지고 놀았다. 이런 생활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부모는 대학입시를 앞두고도 컴퓨터를 붙잡고 사는 아들을 못마땅해했다. 컴퓨터를 전공하고 싶었던 아들을 나무라자 그는 가출했다.


“반항심이었죠. 중학교 때 컴퓨터를 뜯어 일부러 고장도 내면서 하드웨어 개념을 이해했어요. 컴퓨터 부품으로 조립도 했어요. 고등학교에서도 소프트웨어 공부를 많이 했어요. 저는 이게 너무 좋았는데 어른들 생각은 그게 아니었나 봐요. 이쪽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 같은 시절이 올 것이라고 생각을 못 하셨을 수도 있죠.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니까 공부도 싫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넘어가기 직전에 자퇴를 했어요.”


부도 겪고 무작정 상경...“다시 살아보자”


호기롭게 집을 떠났지만 6개월 만에 돌아왔다.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그때부터 ‘현장’ 일을 배웠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건축 사무실 한 켠에서 연장을 쥐고 용접을 익혔다. 집을 짓는 것도 지켜봤다. 인테리어 현장도 그때 경험했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야지 싶어 중도하차했던 학교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박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제대하고 나서다. 고생문도 함께 열렸던 시기다.


“처음부터 ‘내 일’을 하자 생각했던 것은 아니에요. 1998년에 인테리어 역경매 회사를 차렸는데 잘 됐어요. 그렇게 경험을 쌓다 보니까 한 단계 위로 가보자해서 분양대행을 시작했죠. 아파트 분양이었어요. 남의 집만 팔다 보니까 내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행사를 시작했어요. 얼마 안 되서 100억원대 부도가 났어요. 앞뒤 안보고 무리를 한 탓이었죠.”


도심 최고 실버타운을 만들겠다는 꿈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시행사가 지불해야 할 땅값만 380억원. 부도가 난 뒤 그는 신용불량자 신세였다.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아 빚을 갚아도 10억원의 채무가 남았다. 가장으로서 죄책감이 밀려왔다.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이러고 있으면 될일도 안 될게 뻔하다. 다시 살아보자’고.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 올라왔다. 반지하 월세방을 얻고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인테리어는 인생의 터닝포인트"


몸은 공사장에 가 있지만 머리는 아이디어 구상으로 분주했다. 온라인 거래에 관심이 많았다. 배달 중개서비스가 한창 뜨던 2014년 지인과 손잡고 ‘아빠컴퍼니’라는 배달중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이 그를 들썩이게 했다.


“완전한 ‘내 것’을 하고 싶었어요. 배달 중개서비스는 같이 하던 사람들에게 맡기고서 나는 인테리어하겠다고 나왔어요. 아버지 따라 현장에 가서 쭉 봐왔던 게 인테리어 쪽이었거든요. 뭐라도 하려면 처음부터 잘 배워야겠다 싶어서 SK테크엑스가 운영하는 T아카데미 3개월 과정부터 수강했어요.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먹고살던 때였지만 그래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훌륭한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사업을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어요. 거기서 지금의 집닥 멤버들을 만났고요." 

출처: 집닥 제공
박성민 집닥 대표.

인테리어는 박 대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집닥이 성공가도에 오르면서 개인 빚도 청산했다. 그는 집닥 이용자들에게도 인테리어를 통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주고 싶어한다. 2015년 문을 연 집닥 앱은 2018년 현재 월 거래액 100억원을 웃돌며 승승장구 중이다. 집닥과 손잡고 있는 인테리어 업체만 450여 곳.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서울투자파트너스 등 다양한 투자사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액은 65억원이다. 지난해 매출 40억원을 냈고 올해 1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집닥이 인테리어 중개시장에 불을 붙이자 한샘, LG하우시스 등 대기업도 뛰어들었다.


“집닥은 물건을 파는데 목적을 둔 서비스가 아닙니다. 고객과 인테리어 업체를 연결해주는 역할에 집중하죠. 이 곳을 통해서 사람들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대기업이 인테리어 중개서비스 구도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에 경쟁자가 많아지면 고객들에게 돌아가는 서비스 질도 향상되니까요.”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내가 좋은 것을 하지 말고 남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하라’는 것.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대강 이러할 것이다라는 가설만 갖고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인들에게 ‘이 아이디어 어때? 괜찮지? 될 것 같지?’라고 물어보고나서 '좋을 것 같다'는 반응을 들으면 다음 생각은 잘 안 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사업은 잘 안풀릴 확률이 높아요.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고객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뭔지를 찾아야 해요. 그렇게 해서도 실패하면 어쩌냐고요? 실패를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실패도 즐길 줄 알아야 해요. 힘들어서 미칠 것 같은 상황도 견뎌봐야 진짜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하는 수천, 수만 가지 일들이 벌어지니까요.”


글 jobsN 김지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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