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잘 다니던 언니, 술독에 빠져 여동생과 '벌인 일'

조회수 2020. 9. 25. 01: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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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술독에 빠져 본업까지 바꾸고 '이것' 만드는 사람
술맛 아는 게 자랑이냐고요? 이제 자랑이죠
살룻(SALUD) 이은지 대표
국내 최초 담금주키트로 창업
“틀림없이 사랑에 빠질 거예요”

담금주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엌 찬장 한 켠을 차지한 노란 빛깔의 길쭉한 병을 떠올린다. 인삼·더덕·도라지 등 약초가 주 재료인 담금주는 예스럽고 쓴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담금주키트 브랜드 살룻(SALUD) 이은지(29) 대표는 담금주의 기존 이미지를 180도 바꿨다. 아기자기한 유리병에 딸기, 베리, 자몽 등 과일과 잎을 조합해 넣었다. 달달한 맛뿐 아니라 감성적인 상품명과 디자인으로 사랑받아 론칭 1년 만에 월 최고 매출 2억을 기록했다. 달콤한 술독에 빠져 본업까지 바꾼 이은지 씨의 이야기를 jobsN이 들어봤다.

살룻(SALUD)의 이은지 대표와 동생인 이규희 실장. 첫 사진 왼쪽이 이은지 대표. 두 번째 사진에서는 오른쪽이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살룻을 운영 중인 이은지입니다. 스위스 글리옹 호스피탈리티 경영대학교에서 호텔경영과 마케팅을 전공했습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담금주라는 아이템으로 작년에 창업했어요.”


-살룻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담금주 키트 전문 브랜드에요. 키트는 사용자가 직접 조립할 수 있도록 완성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묶어 파는 상품이에요. 원하는 증류주만 넣으면 담금주를 만들 수 있도록 병과 그 속에 건조한 과일, 허브 등을 저희만의 비율로 담아 판매합니다. 담금주키트는 저희가 국내 최초로 내놨어요.”


-창업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신문사 편집국 전략팀에서 4년 동안 일했습니다. 해외 연사를 초빙해 글로벌 컨퍼런스를 기획하는 일이에요. 해외 기업·기관·학교를 섭외해 인터뷰하고 한국으로 초청하는 등 행사 전반을 기획했어요. 지금은 계약직으로 관련 업무를 사업에 무리 없는 선에서 하고 있어요.”


-원래 술을 좋아하시나요?


“네. 스위스 유학생활을 떠올릴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뱅쇼(따뜻한 와인)였어요. 술자리 분위기가 좋아 술을 마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술 자체가 맛있다고 느껴요. 전에는 그게 어디서 자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본업으로 담금주키트를 판매하고 있으니 이제는 자랑이죠.”

출처: 본인제공
(왼쪽부터) 대림미술관에서 운영하는 구슬모아당구장에서 뱅쇼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이은지 대표. 뱅쇼를 너무 좋아해 평소 작업실에서도 끓여 마셨다.

-'담금주키트'라는 아이템은 어떻게 떠올렸는지.


“창업하고 싶은 아이템이 100개는 있었어요. 지역 농산물과 조리 레시피를 한 박스에 넣어 판매하거나 네일아트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서 수출해볼까도 생각했죠. 그중 담금주키트가 제일 간단하고 빠르게 시작할 수 있어서 골랐어요.”


-친동생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여동생 규희(26)와 함께 일하고 있어요. 동생은 미대를 나와 손재주가 좋아서 상품 디자인을 전담해요. 살룻은 술 좋아하는 언니와 만들기를 잘하는 동생이 의기투합해서 탄생한 거죠.


같이 일하면서 처음으로 30분 동안 머리채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싸우기도 했어요. 저는 성격이 불같고 동생은 좀 진중한 편이다 보니 사업 초기에 의견 충돌이 많았거든요. 아버지가 아시고 이제 둘이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형제끼리 싸우는 꼴은 못 보겠다고 하셨어요. 그 이후로는 서로 말이나 행동을 좀 더 조심해요. 감정이 상하면 둘 중 하나가 ‘닭발 고?’하면서 화해의 사인도 보내요.”


-어떻게 창업하게 됐나요?


“회사 다닐 때 틈틈이 레시피를 구상해두고 작년 3월 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제작·판매를 시작했어요. 아이템이 신선해서인지 삼성카드 홀가분 나이트 마켓 등 입점 경쟁률 꽤 센 마켓에서 저희를 불러줬어요. 인스타그램에 제품 사진을 업로드하니 그쪽으로도 주문이 조금씩 들어왔구요.


한 달 뒤 살룻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이후 네이버 스토어팜 사이트와 텐바이텐, 핫트랙스 등 유명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하면서 사업 규모를 키웠어요. 최근 롯데닷컴과 엘롯데에서도 입점 제안이 들어와 준비 중입니다.”

출처: 본인제공
(왼쪽부터) 첫 번째로 참가했던 플리마켓. 삼성 카드 홀가분 나이트 마켓에 참가했을 때. 현대백화점 판교에서도 살룻 제품을 판매했었다.

-담금주는 직접 만들 수도 있지 않나요?


“물론 직접 만드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담금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주의가 필요해요. 우선 병을 잘 씻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몇 주만 지나도 곰팡이가 생기거든요.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재료 배합 비율도 중요해요. 살룻 키트는 그런 수고와 위험 없이 담금주를 즐길 수 있는 제품이에요.


또 주류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디자인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가질 수 있도록 상품명과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써요. 집들이 선물·신혼 선물·명절 선물로 사랑받는 이유에요.”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엄청 반대하셨죠. 부모님은 지방에 계시는데 서울에서 신문사 다니는 딸이 있는 게 큰 자랑이셨어요. 해외 출장도 가고 큰 행사 기획도 하는데 뭐가 아쉬워서 술을 만드냐고 하셨죠. 그래서 작업실 계약도 비밀로 했어요.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외식하고 기분 좋게 해드린 후에 공개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건 꼭 하고야 마는 성격인 걸 아세요. 이제는 저희 자매를 언제나처럼 응원해주고 자랑스러워하세요.”


-술에 스토리를 담고 싶다고.


“완성품이 아닌 ‘키트’로 제작한 이유에요. 직접 증류주를 골라서 붓고 담금주가 적절하게 우러나길 기다리는 그 설렘의 시간까지 상품에 담고 싶었어요. 같이 술을 넣는 사람과 술을 개봉하는 날짜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죠. ‘틀림없이 사랑에 빠집니다’, ‘이꽃잎, 너한입’처럼 상품명과 디자인에 특별히 신경을 쓴 것도 그런 이유에요.”

이은지·이규희 자매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요?


“가장 주문량이 많았던 올해 2월에는 월 매출이 2억 정도였어요. 2018년 상반기만 따져보자면 7억원 정도 될 것 같아요. 작년에 플리마켓에서 처음 팔았을 때 수입이 20만원 정도였으니 많이 성장했죠. 맛있게 마셔주시고 좋은 리뷰를 남겨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해요.”


-창업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아이디어를 보호받지 못한 게 가장 힘들었어요. 저희가 만든 레시피를 조금만 바꿔 내놓는 후발 업체들과 홈페이지에 적은 문구와 팁을 그대로 따라 하는 곳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처음에 예상했던 일이고 지금은 살룻만의 가치를 알아주는 분들을 위해 더 열심히 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고 있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이걸로 담금주가 가능해?’ ‘이걸 건조할 수 있어?’라고 생각할만한 다양한 재료를 찾아 실험하고 있어요. 아직 개발 중이라 공개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처럼 좋은 맛뿐 아니라 살룻만의 감성적인 디자인을 얹어 선보일 계획입니다. 살룻이 좋은 술맛뿐 아니라 미적인 즐거움과 좋은 시간까지 선물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해 나갈 거예요."


글 jobsN 서은수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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