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는거 알면서도 핵심인력 외국 보내는 '이상한' 회사

조회수 2020. 9. 25. 01: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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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틀란타에서 전문가의 업무 배웠어요"
EY한영 해외 근무에 소속 회계사 10% 보내
대부분 한국 법인 일 안해
현지에서 일해봐야 글로벌 사고방식 배울 수 있어

보통 기업의 해외 파견 근무는 해외 법인에 영업이나 마케팅 등에 필요한 사람이 가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구매에 필요한 인력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회사의 핵심인력 10분의 1이나 해외로 파견 근무를 보내는 회사가 있다. 가서 하는 일도 대부분 회사의 이익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일이 아니다. 현지 법인의 매출에만 도움을 줄 뿐이다. 보내는 직원도 한참 일할 대리급 직원부터 임원급 직원들까지 구분이 없다.


회계 업체인 EY한영이 그 이상한 회사의 정체다. 현재 해외에서 근무하는 EY한영 소속 회계사는 약 70명. 해외 근무를 준비하는 회계사도 30명이나 있다. EY한영의 소속 회계사는 1000명 수준이다. EY한영 서직선 대표는 해외 근무 설명회에서 소속 회계사들에게 "글로벌 회계법인이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직접 가서 일을 해보는 것 말고는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소속 회계사를 해외로 보내고도 법인의 매출은 5년 연속 두자리수 성장을 했다. 2017년 매출은 전년보다 22.7% 증가한 3393억원을 기록했다.

출처: 사진 EY한영
현병화 EY한영 회계사

지난 2014년 9월부터 2016년 3월까지 1년 6개월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글로벌 교환근무 프로그램'(GEP)을 다녀온 EY한영 감사본부 현병화(39) 회계사를 만나 EY한영은 왜 직원들을 해외로 보내는지 그 이유를 들었다.


‘해외 법인서 일할 수 있다’ 말에 회계사 결심 굳혀


회계사를 희망했던 현 회계사는 입사 전 EY한영에서 인턴 근무를 하며 해외 교환근무 프로그램 이야기를 들었다. 회계사 시험에 붙고 빡빡한 법인생활에 힘들어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회계사를 해야할 지 고민을 하다가 해외 근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서라면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국내 회계법인에서 국내 기업 감사만 하다보면 재미없고 지루한 생활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해외 EY법인에서 그곳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게 들리더라고요.”


결국 EY한영에 입사한 현 회계사는 GEP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려고 애를 쓰며 자격이 생기길 기다렸다. EY GEP는 시니어(회계사 3년차 대리급)부터 매니저(7년차 과장급)까지 지원할 수 있다. EY의 철학에 부합하고 인사고과가 우수한 직원 중에서 영어 실력이 우수한 사람을 고른다. 영어시험은 토익이나 토플이 아니라 영국에서 전세계 GEP 지원자와 함께 치르는 시험이다.

출처: 사진 현병화 회계사 제공
EY 애틀란타

“자격 검증이 끝나면 파견을 받을 해외 EY오피스를 지정해줍니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곳에 지원할 수도 있지만 수요가 없는 곳을 지원했다가 거절당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미국 중남부의 수도라고 불리는 애틀란타로 갔습니다. ”


시골 허허벌판에 있는 작은 기업이 첫 임무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에서 현지 회계사들과 함께 일한다는 설렘은 첫 출근과 동시에 깨졌다. 그가 받은 첫 임무는 애틀랜타에서 3시간 거리인 소도시 오거스타에 있는 작은 제조업체의 회계감사. 현장에 회계사 2명이 있으니 가서 업무를 보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렌터카를 받아서 바로 현장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업체 주소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어요. 찍혀있는 주소대로 가니까 허허벌판인 거에요. 거기서 전화를 하니까 현지 회계사가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20분은 더 들어가니 작은 창고 건물에 회사가 나오더라고요. 그게 EY 애틀란타의 첫 임무였습니다.”


미국의 선진 회계기법을 배울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애틀란타 오피스는 작은 기업 실무 업무만 맡겼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생각한 그는 자청해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듣고 야근도 했다. 하루는 그를 눈여겨 본 독일 데스크(미국에 있는 독일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EY 독일 소속 회계사) 파트너(회계법인의 임원)이 인사팀에 강하게 이야기해보라고 조언했다.

아들과 함께 코카콜라 본사를 찾아간 현병화 회계사

“독일 파트너의 조언에 용기를 얻어 인사팀에 강하게 이야길 했어요. 내가 미국에 온 이유는 미국의 회계기법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말이죠. 그곳에서 맡긴 일은 한국에서도 많이 해봤던 것들이었어요.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배운 것을 소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다 큰 기업 업무를 달라는 제 건의를 받아줘서 6개월쯤 지나고 나서는 코카콜라, 델타항공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 감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11월부터 국내에서도 시행하는 내부회계관리를 비롯해 회계 선진국인 미국의 최신 회계기법을 배웠다. 내부회계관리는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감사와 별도로 기업이 회계절차를 적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지를 감시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올 때가 다가오자 EY 애틀란타에서 ‘남아서 우리들과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진짜 전문가의 일하는 법을 배웠다


“떠나기 전 현지 동료들이 저를 위해 파티를 열어줬어요. 미국 남부에서 동양인 남자직원을 위해 파티를 열어주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곳에서 열심히 배웠고, 배운 것을 한국에서 잘 사용하려고 합니다.”


현회계사가 미국에서 배운 것은 회계 기술만이 아니다.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방식도 함께 배웠다. EY 애틀란타를 비롯해 미국 전문직 종사자에게는 상사 눈치를 보는 야근은 없었다. 하지만 일이 있으면 책임감을 갖고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일을 했다.

EY애틀란타 직원들이 열어준 환송파티와 기념 액자

“저녁 6시면 모두 사무실을 나갔어요. 그런데 8시쯤이면 다시 메신저에 들어와 있는 거에요. 물어보니 집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미국보다 한국이 워라밸이 좋은 거 같아요.”


현회계사는 일하는 방식에서도 미국에서 배운 점을 적극 활용한다. 연차가 낮은 회계사라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펼치게 하기 위해서다. 현회계사가 있는 팀에는 GEP와 같은 해외 근무 경험자가 많다.


“우리 팀 원칙은 ‘회의 때 절대 두 손 모으고 공손히 앉아있지 말라’는 것이에요. 선배 회계사가 뒤늦게 자리에 온다고 모두 일어서는 모습도 없습니다. 각자 회계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견해를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회계사가 애틀란타에 머문 것은 1년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해외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리며 외국 기업 문화를 익혔다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GEP 등 해외 파견 프로그램에 참가하려면 인사고과가 우수해야 합니다. 법인에서는 우수한 젊은 회계사를 1년 넘게 보내는 게 큰 손실일 수 있지만, 다녀 와서 보여주는 성과가 그 이상이니 과감하게 보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제 후배들도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해야죠.”


글 jobsN 최광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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