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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의 관심법' 탄생시킨 명작 드라마, 제가 만들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4. 23: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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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법' 탄생시킨 드라마 제조기는 나야나
‘용의눈물’, ‘태조왕건’ 만든 윤흥식(69)씨
20년 전 정통 사극 열풍의 주역에게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다

“지금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 “짐은 관심법으로 보아 다 알고 있느니라”.


2000년대 초 방영한 태조왕건은 매편이 화제였다. 그중 궁예의 대사였던 ‘관심법’은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대하드라마는 당시 가장 인기있는 장르 가운데 하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 방영했던 드라마가 더 재밌었다고 말한다. '용의 눈물' 159부작, '태조 왕건' 200부작 등. 백편이 넘는 작품임에도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명작이라 추앙받는 ‘용의 눈물’과 ‘태조 왕건’을 만든 KBS 사극드라마계의 산 증인 윤흥식(69) KBS 전 드라마국 국장을 만나 그때 그 시절 얘기를 들었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는 작년 8월부터 KBS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또 연극 무대에서 제2의 인생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처: jobsN
윤흥식 KBS 전 드라마국 국장

- 원래는 배우가 꿈이었다고.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를 했다. 학교에서 여러 작품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생계에 밀려 직업 배우의 길을 포기했지만 배우의 꿈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만든 연극동아리 활동을 직장생활과 병행했다. 1982년에는 작품 ‘처용아바’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 PD로는 언제부터 일했나.


“1975년 TBC(동양방송)에 PD로 입사했다. 원래는 방송 드라마를 담당하고 싶었지만 처음 배정받은 곳은 라디오 드라마 부서였다. 당시는 TV가 별로 없어 라디오 드라마를 많이 들었다. 하루 10~20분 분량으로 방송하는데 ‘형사’, ‘목격자’, ‘아차부인 재치부인’ 등 여러 라디오 드라마를 맡아 제작했다.”


- 방송 드라마는 언제 시작했나.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KBS로 자리를 옮겼다. KBS 이직 후 4년이 지나서야 원하던 드라마부로 부서를 옮겼다. 입사 8년차(36살)에 원하던 부서에 갔지만 방송사에서 최고령 조연출이었다. 입사 후배가 감독인 경우도 있었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 연출을 맡은 작품이 ‘멜라콩을 아시나요’다. 이 드라마로 백상예술대상 TV드라마 신인 연출상을 탔다.”

출처: 용의 눈물 캡처, 윤흥식 제공
(왼쪽부터) 용의 눈물 방송 화면,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의 윤흥식씨

- 사극 드라마를 주로 맡았다고 들었다.


“처음 성공한 사극 드라마는 ‘용의 눈물’이었다. 용의 눈물은 태조부터 세종까지를 다룬 대하드라마다. 태조 이성계의 왕자들 가운데 누가 왕위에 오를 지가 핵심 줄거리다. 당시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실과 드라마 사이에 접점이 있어 시청자의 관심을 끌겠다고 판단했다.”


- 용의 눈물이 원작인 ‘세종대왕’과는 조금 다르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하드라마 책임 프로듀서로 어떤 것을 할 지 고민할 때 나온 작품이다. 아내가 조선일보에서 연재했던 소설 ‘세종대왕’을 드라마로 만들어 보라고 했다. 세종대왕 소재를 재밌게 살릴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그 앞부분인 태종 이야기가 더 재밌고 연출에도 자신 있었다.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등 다룰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 처음에 시청률이 안나와 고전했다고.


“홍두표 당시 KBS 사장이 용의 눈물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홍 대표에게 ‘대하드라마는 제가 책임질 테니, 사장님은 다른 곳이나 신경쓰십시오’라고 회의에서 말했다. 그만큼 자신 있었다.


막상 방송을 시작하니 시청률이 나오지 않았다. 사장 앞에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어떡하냐며 주위 직원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방송 한 달 정도 지나면서 시청률이 조금씩 올라갔다. 결국 최고 시청률 49%를 기록하고 1998년 한국방송대상 대상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출처: KBS 드라마 '태조 왕건' 캡처

- 태조 왕건은 제작 전부터 부담이 컸다고 들었다.


“당시 대하드라마 소재 회의에서 태조 왕건은 매년 후보 목록에 올라갔지만 채택하지 않았다. 태조 왕건은 부담이 많은 소재였다. 당시 사극은 조선왕조를 배경으로만 만들고 있어 제작자들은 고려시대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고려에 대한 고증도 부실해 자칫하면 정체불명의 의상이나 소품 등이 나올 수 있었다. 기존에 축적한 노하우·소품·촬영장도 활용할 수 없어 예산 부담도 있었다.”


조선시대 이전을 배경으로 사극 제작을 시도하지 않는 문화를 누군가는 깨야 했다. 태조 왕건은 사극드라마로는 처음으로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제작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조선왕조 이전 시대 사극의 가능성을 ‘태조 왕건’이 보여줬다. 선덕여왕(MBC)·연개소문(SBS)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태조 왕건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 과거와 현재 드라마는 어떻게 다른가.


“드라마는 트렌드를 반영한다. 과거 드라마는 최근 드라마에 비해 말이 느리다. 또 대사·소품·분장이 지금보다 촌스럽다. 과거에는 키스씬이 드문 장면이었지만 지금은 매편 쉽게 볼 수 있다. 드라마 OST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드라마 PD 중 음악에 신경쓰는 사람들이 극소수였다. 반면 지금은 적절하게 음악을 넣는 것도 PD의 중요 업무 중 하나다. 영상구성도 장면 전환을 빠르게 하거나 드론을 이용한 항공촬영 등 새로운 시도가 많아졌다.”

출처: 윤흥식씨 제공
(왼쪽부터) TV드라마 신인 연출상(1989), 한국방송대상(1998)

- 교수로 오래 일했다고 들었다.


“동서울대학교 연기예술과에서 6년간 전임교수로 재직했다. 연극제작실습·드라마제작실습 등 경력을 살려 강의했다. 드라마나 연극 이외에 실용무용과 실용음악도 담당했었다. 주로 실습 위주였다. 드라마나 연극 한 편을 한 학기 동안 찍거나 연습해 발표·공연하는 식이다. 한번은 제자들과 졸업공연으로 셰익스피어 리어왕을 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의상도 빌려와 학교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제자들과 했던 활동이 많아 6년간 쌓은 추억이 많다.”


- 최근에 다시 연극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대학교 때 결성했던 연극 극단이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았다. 150석 규모의 독일문화원 9월 15일 기념공연을 할 예정이다. ‘관객모독’이라는 작품에 남자1로 출연한다. 수염난 영감이 팝핀을 추면 관객들이 신선하게 느낄 것 같다는 생각에 팝핀을 배우고 있다. 이번 무대는 중요하다. 양정웅 평창올림픽 개막식 연출가가 관객으로 온다. 이번 작품에서 양정웅 연출가 눈에 띄어 새로운 출연 기회를 잡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요즘 연습 삼매경이다.”

출처: 윤흥식씨 제공
(왼쪽부터) 대학 교수 재임 시기 체육대회, 연극 대본 리딩 중 찍은 사진

- PD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PD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카메라 기술 등 대부분 기술적인 역량을 키우려 한다. 하지만 뽑는 사람은 기술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원 시점에서는 앞서간 것 같지만 프로세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기본적인 실무는 입사 후 배워도 늦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다.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특히 좁더라도 깊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PD라는 명확한 목표설정과 영상감각·아이디어 등의 역량을 키우는 것을 추천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70 가까운 나이에도 작은 일이지만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앞으로 대학 시절 못다 이룬 배우의 꿈을 펼쳐보고 싶다. 그 시절의 아쉬움을 나머지 여생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글 jobsN 김경철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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