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내 모든 불행 모이는 곳'에서 일하는 특별한 투잡러

조회수 2020. 9. 24. 14: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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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독한 하루' 삶과 죽음의 경계를 기록하는 응급실 의사
결국 사람을 생각하는 일
죽음 곁에 있고자 응급의학과 선택
첫 책 '만약은 없다' 베스트셀러 올라
"글 쓰는 의사로 남고 싶어요"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인 하루를 사는 사람이 있다. 간밤에 죽은 사람이 없는 것이 '되레 신기한 일이었다'고 말하는 사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35)씨다. 그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에서 전문의 5년 차로 일하고 있다.


남궁인씨는 작가로도 산다. 첫 책 '만약은 없다'는 출판시장 불황 속에서 3만 부가 넘게 팔렸다. 수없이 많은 '만약'을 가정할 수밖에 없는 응급실에서의 삶을 자신만의 문장들로 담아냈다. 수필 '죽음에 관하여'는 제15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응급실 의사로 일하면서 벌써 책 세 권을 출간했다. 전날도 글을 쓰느라 밤을 새웠다는 그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출처: jobsN
남궁인씨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하다


-응급실 의사의 생활이 궁금하다.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한다. 출근 날은 평일 12시, 주말 오전 9시에 일을 시작해서 다음날 오전 9시에 퇴근한다. 많은 분들이 응급실 의사는 매일 밤새는 줄 아시더라. 그렇지는 않다. 당직일수가 많으면 환자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응급실은 하루에도 수백 명, 각기 다른 증상을 가진 환자를 봐야 한다. 집중력과 판단력이 중요하다. 의사 본인이 지쳐서 집중력이 떨어지면 결국 환자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출근 날은 밤 새 빠듯하게 일하고 쉬는 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왜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나?


“생명과 죽음 가까이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 것들과 떨어져 있는 과도 있다. 꼭 그걸 옆에서 보고 경험하고 책임지고 싶었다. 응급실 의사의 일하는 패턴도 좋았다. 쉴 땐 쉬지만 출근 날은 밤샘이 필수라 사실 인기가 없는 과다. 나한테는 그 부분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쉬는 날에 글쓰기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장점만 있는 과 같지만 힘든 점도 많은 분야다.”


-최근 응급실 의사 폭행 사건이 있었다. 페이스북에 이에 대한 글을 올렸던데.


“응급실에 오는 사람들은 다들 고통스럽고 절박한 상황에 있다. ‘이 근방 10km 내 모든 불행이 모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애초에 조용하고 편안하게 진료하고, 진료받기는 힘들다. 어느 정도 언성이 높아지고 행동이 격해지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코 뼈와 치아가 골절될 정도로 진료 중인 사람을 폭행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인식의 문제다. 항공기 기장이나 119대원만큼 응급실 의사도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생명을 책임진다. 폭력 자체가 당연히 나쁜 행동이지만 특히 생명을 다루고 있을 때 가하는 폭력은 가중처벌을 하는 등 응급실 의사 폭행에 대한 인식과 제도 개선이 모두 필요하다고 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기록하다


-왜 글을 쓰는가?


“중학교 때 시를 배우며 문학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그때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을 썼다. '작가'라는 말을 듣는 게 꿈이었다. 수학을 잘해서 이과를 갔고 의대는 성적에 맞춰 진학했다. 지금은 의사라는 직업을 사랑하지만 처음엔 성적에 맞춰 갔을 뿐이다. 의대에 들어간 후에도 틈나는 대로 글을 썼다. 책을 내고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며 작업량이 늘었다. 글 쓰는 게 괴롭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쓰는 행위가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다.”

출처: 본인 제공
남궁인씨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모두 응급실 이야기다. 차이점이 있다면?


“첫 책 ‘만약은 없다’는 일하면서 쌓였던 괴로움, 슬픔 등 여러 감정을 털어내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읽기 괴롭고, 섬뜩한 묘사가 많다. 응급실에서 보고 겪은 일들이다. 첫 책이 많은 분들께 알려지고 나니까 이제 책에 좀 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지독한 하루’에는 아동학대, 119대원 처우 문제 등 사회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넣었다.”


-어떤 수필은 묘사가 너무 생생해 읽기 괴롭기도 하다. 글로 쓰기 위해 그런 일들을 다시 생각할 때 힘들지 않나?


“수필 '산 채로 불탄 일곱 명의 사내'는 공장 화재로 전신 화상을 입은 환자들 이야기다. 그런 사고가 일어나면 응급실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화상 환자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처참한 상황을 직접 보고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 실제 경험은 지옥이다. 그걸 다시 생각하는 건 지옥보다는 괴롭지 않았다.”


-응급실에서의 하루가 ‘달콤한 하루’였던 적은 없는지?


“응급실에서 일한 이후로 자신 있게 ‘좋았다, 잘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응급실에서는 환자를 당장 살리더라도 그 이후를 장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 최선을 다해 처치하더라도 평생 고통이 될 상황에 놓이는 환자도 많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보낸 하루가 만족스럽다고 느낀 적이 없다.”


글 잘 쓰는 작가, 따뜻한 의사 되고파


-방송 출연을 꽤 많이 했다.


“10개 정도는 한 것 같다. ‘비정상회담’, ‘말하는 대로’, ‘비디오 스타’ 등에 출연했다. 퀴즈 프로그램 '1대 100'에서는 최종 우승해 상금도 받았다. 나 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불러주는 게 신기하고 고마워서 출연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출판사에서 나 몰래 ‘나 혼자 산다’에 출연 제의를 했다. 혼자 진짜 잘 사는 작가가 있다면서 메일을 보냈다더라. 당연히 출연 못했다. 연락을 했던 즈음에 빅뱅의 태양씨가 나오더라.”

출처: 본인 제공
(왼쪽부터) 이집트 아부 심벨 신전 앞에서 찍은 사진. 그는 한국에서 이집트 최남단까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 여행했다. 터키 카파도키아 여행 중 찍은 사진.

-여행도 좋아한다고.


“의대 예과에서 한 과목 F를 맞았다. 유급제도가 있어서 그 과목을 다시 들어야만 본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그 과목을 다시 듣기까지 1년의 시간이 비었다. 그때 세계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조금 특이했다. 티베트, 인도를 횡단했다. 비행기 안 타고 이집트 가기도 해봤다. 속초에서 배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거기서 기차와 버스를 타고 국경 20개를 넘어 이집트까지 갔다. 여행은 나 자신을 의사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직업 정체성 외에 내 개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언젠가 여행 다닐 때 쓴 글을 모아 여행기로 낼 생각도 하고 있다.”


-의사와 작가, 두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둘 다 결국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다. 응급실에서는 환자를 치료하며 그의 고통과 사연에 대해서 생각한다. 작가일 때는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보고 내 글을 읽을 독자에 대해 생각한다. 의사인 나와 작가인 내가 서로 보완하고 도우면서 남궁인이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의사,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작가로서는 당연히 글을 잘 쓰고 싶다. 독서 강박증이 있을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을 읽다 보면 감탄이 나올 만큼 훌륭한 책들이 많다. 나도 작가 남궁인의 이름으로 그런 책들 목록에 한 권 보태고 싶다.

의사로서는 따뜻한 의사로 살고 싶다. 의학지식적으로 뒤처지지 않도록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환자에게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다. 좋은 글 쓰고 따뜻한 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글 jobsN 서은수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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