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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명문대 자녀들이 대기업 그만둔 그녀를 찾는 사연

조회수 2020. 9. 24. 14: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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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로 몸과 마음 치유합니다

장은하 챌린지투체인지 대표

“확실한 우울증은 우리나라 인구의 12.5% 정도인 600만 명이, 유력한 우울증은 1500만 명이 앓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우울증이 만연한 사회인데도 적극적으로 치료받거나 도움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회적 차별이나 편견 때문에 자신이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거나 겪은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밝히지 않는 사람이 많죠. 소비자의 목소리가 모아지지 않으니 정신건강 서비스도 발달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가벼운 우울증도 이런 식으로 방치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맞춤형 무술 프로그램으로 마음과 몸을 함께 치유하는 사회적기업 ‘챌린지투체인지(Challenge to Change)’를 설립한 장은하 대표를 서울 성동구 서울숲4길 본사에서 만났다. 2층 주택의 1층을 무술 도장처럼 개조한 공간이었다. 이곳을 찾으면 심층상담과 다양한 검사를 받은 후 운동 프로그램과 심리 프로그램을 처방받는다. 명상과 단전호흡, 근력운동, 태극권, 복싱, 킥복싱, 무에타이 등 다양한 운동 중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수련하면서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끼고, 힘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미래형 정신건강센터’를 표방한 서비스를 만든 데 대해 장은하 대표는 “제 경험이 바탕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르 데뷔》 창간한 ‘학생 CEO’

장은하 대표는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2008년, 대학생을 위한 패션잡지 《르 데뷔(Le Debut》를 창간한 학생 CEO로 유명했다. 대학생을 위한 차별화된 패션 정보를 담은 잡지를 무료 배포해서 인기를 끌었고, 제작비는 광고와 협찬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지금은 대학생 후배들이 만들고 있지만, 잡지 발행인은 계속 그가 맡고 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대기업에 입사해 5년 정도 근무했다. 연봉이나 대우는 최고였지만, 매일같이 계속되는 야근에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우울증 때문에 신경정신과 상담도 받고 심리치료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서비스가 너무 공급자 중심이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정신과에 가면 의사와 만나는 시간이 몇 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일단 드셔보세요’라면서 약만 처방하고,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신경정신과 의사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요. 마음의 건강을 되찾으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오히려 위축되고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모든 장기를 재검사해야 할 정도로 몸도 망가져 있었습니다. 20대인 저의 신체 나이가 58세로 나왔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그는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벽마다 체육관에 가서 근력운동과 복싱을 하면서 몸을 단련했다.


“1년 뒤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았고, 가벼운 몸으로 기분 좋게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신체 나이도 22세로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에 대한 제 태도가 달라졌다는 거예요. 부끄럽지만 그때까지는 다른 사람의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잃었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문제와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인생의 목표도 바뀌었습니다.”

자신이 그랬듯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쉽게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약물치료로는 열정이나 의욕, 자발성, 용기, 자신감, 도전정신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운동이 포함된 종합적인 정신건강 서비스를 시작하고 싶었다. 직장을 나오기 전에 무술도장으로 쓸 공간부터 마련했고, 2016년 7월에 챌린지투체인지를 설립했다. 그저 우울증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삶을 전체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도전한다는 뜻이다.


“심리적·신체적·사회적 건강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만성질환에 시달리거나 소심한 성격이나 대인기피증 때문에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이 많습니다. 저희는 그 모든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챌린지투체인지에서는 개개인이 겪고 있는 문제와 처한 환경, 각자의 강점과 취약점을 파악해서 맞춤형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경력 15년 이상의 심리상담가, 운동전문가가 심층상담과 행동반응검사를 하고, 자율신경계 측정기계나 신체분석 장비 등도 활용합니다. 개개인의 숨겨진 강점을 찾아내 각자의 특성에 맞는 운동을 배우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태극권, 명상, 요가 같이 정적인 운동부터 복싱이나 격렬한 무술까지 다양하게 활용합니다. 심각한 정신질환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도 아닌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이 갈증과 답답함을 해소하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게 저희 목표입니다.”



부유층, 명문대 많이 찾아와

그는 자신처럼 이곳저곳 전전하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면서 “삶 전체를 바꾸고 싶다는 게 그분들의 바람”이라고 전한다. 의외로 부유층 자녀도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남들이 보면 부족할 게 없는 환경인데, 아무 의욕도 없이 무기력한 분이 많이 옵니다. 미국 최고의 명문대에 입학했는데도 종일 잠만 잔다면서 부모 손에 이끌려서 온 분도 있었죠. 어릴 때부터 부모의 높은 기대에 맞추려고 자신을 억압하다 보니 탈진해버린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부모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죠. 차츰 자신감과 의욕을 찾아가는 자녀를 보고 부모님도 놀라워하십니다. 지방에서 찾아오는 분들도 많아 챌린지투체인지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의 의뢰로 조현병 진단을 받은 청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면서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휴학을 했던 청년이 자신감을 되찾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만든 회사인데,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생계유지에 바쁘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찾아오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카이스트 사회적기업가 MBA에 다니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함께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오프라인 기반 서비스로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어서 온라인 콘텐츠를 늘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올해부터는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도움을 주는 온라인 서비스를 만드는 ‘28DAYS’와 비영리단체인 멘탈헬스코리아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사회적인 파장을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멘탈헬스코리아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최초의 비영리조직으로, 그가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또 10대 청소년의 자살 예방을 위해 ‘또래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입니다. 이들을 가장 잘 이해하면서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 비슷한 경험이 있는 또래입니다. 그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면서 또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교육할 계획입니다. 심장이 멎은 후 4분 안에 심폐소생술을 하면 생존율이 높아지듯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에게 4주 안에 도움을 주면 자살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 플랫폼을 만들어 즉각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려고 합니다.”


글 jobsN 이선주 톱클래스 객원기자, 사진 jobsN 김선아(사진제공 챌린지투체인지)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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