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선이 동네 고졸 출신 좌판 청년, 뒤늦게 이걸로 대박났다

조회수 2020. 9. 24. 14: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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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출신의 좌판 행상 굼벵이 사육으로 대박 나다

벅스펫 김우성 대표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가 살던 동네, ‘호잇 호잇’ 둘리가 탄생한 쌍문동은 ‘굼벵이 농부’ 김우성 씨의 고향이다. 그의 부모님은 삐삐(무선호출기), 휴대폰판매 대리점을 운영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휴대폰 시장은 대호황기였다. 먹고살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번창했다. 대학을 안 가도 부모님 밑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자연스럽게 가게를 이어받으면 됐다. 28세, 사업을 이어받아 과감한 도전으로 사업을 확장해 돈도 벌었다. 한창 잘나갈 때 결혼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4년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제조사 지원금이 중단됐고, 매장을 찾는 손님이 확 줄었다. 휴대폰 사업은 하강기로 접어들었다. 매달 1000만 원 이상의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역 앞 목 좋은 자리도 무용지물이었다. 5년 전, 눈물을 머금고 가게를 접었다.


한참을 방황했다. 취업을 하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보려 해도 금전적인 문제가 가로막았다. 결국 아는 게 장사뿐이라고 역 앞에 좌판을 깔고 휴대폰 케이스를 팔았다. 에어컨 바람 ‘쌩쌩’ 틀던 대리점 바로 앞 5m. 손에 든 미니 선풍기 바람이 처량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20kg이나 불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저 멀리 길모퉁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아내의 눈물이었다. 그날 김우성 대표가 ‘울컥’ 속으로 삼킨 숨은 한여름 태양보다 뜨거웠다.


뭐라도 해보자는 일념으로 이글거리던 그에게 지인이 ‘굼벵이 사육’을 권했다. 곧 식용곤충 산업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를 거라 했다. 굼벵이는 꽃무짓과 대형 풍뎅이인 ‘흰점박이꽃무지’의 유충이다. 대안이 없었다. 그때는 굼벵이가 아닌 지렁이라 해도 붙잡고 싶었다.


“번듯한 직장도 없고 가족을 이대로 굶길 순 없었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동의보감에 굼벵이가 간의 어혈을 풀어 간염과 간 경화, 간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해요. 동남아에서는 길거리 음식으로 팔고 있고, 유럽에선 요리로도 쓰고 있었죠. 고수익이 될 거라는 데 솔깃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굼벵이가 식용곤충으로 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란 뜻이었다. 어른들은 늘 말씀하셨다. ‘어떤 장사든 처음 해야 돈을 번다’고. 사업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촉이 왔다. 식용곤충은 미래 블루오션이라는 확신이 섰다.


궁하면 통한다고, 사업은 하고 싶지만 자본이 없어 쩔쩔매는 그에게 할머니가 ‘시골 땅 600평’이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2시간. 댓바람에 달려간 곳은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하판리의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땅은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됐는지 잡풀로 뒤덮여 땅인지 섬인지 모를 정도였다. 동네에서도 골치 아닌 골치였다고 했다. 땅이 있다는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강원도의 굼벵이 키우는 농가에 한 달여 살며 사육법을 배웠어요. 곤충의 특성상 밀집 사육이 가능해서 사육장이 클 필요가 없었죠. 초기 자본을 최소화하기 위해 컨테이너 한 동을 두고 시작했습니다.”


허허벌판, 잡풀 위에 덜렁 가져다 놓은 컨테이너는 그에게 농지이자, 잠자리였고 꿈으로 향해 가는 ‘호박마차’였다. 성공에 대한 확신과 의욕, 간절함이 생겼다. 컨테이너 사육장에서 먹고 자고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 와 씻으며 그야말로 야전 생활을 시작했다.



굼벵이와 보은 특산물 ‘대추’의 환상 조합

굼벵이 사육은 어려울 게 없었다. 톱밥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상자에 흰점박이꽃무지 알을 넣고 물과 양분을 주며 적정 온도를 맞추면 한 달 만에 몸집이 어른 엄지손가락 두 배 만큼 커졌다. 플라스틱 상자 한 통에서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꽃벵이) 1kg을 수확했다. 가시적인 성과 앞에서 성공에 대한 확신과 의욕, 간절함이 생겼다.


“다 자란 굼벵이를 들고 서울 경동시장과 대전 약재시장을 돌며 무조건 들이댔어요. 제가 사업을 해본지라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거든요. 한약방 어르신들을 찾아갈 때는 뜨거운 커피를 들고 가야 해요. 커피가 식는 동안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거죠. 냉커피는 바로 ‘원 샷’ 하니까. 굼벵이 좋다는 건 다 알고 있는 데다 직접 길렀다고 하니 귀한 대접을 받았어요. 서울과 보은을 오가는 기름값 정도는 벌었습니다.”


몇 달 동안 차에서 쪽잠을 자면서 한약방을 오가다 보니 수익이 생겼다. 잊고 지낸 성취감이 돌아왔다. 끈질기게 약재상을 다니며 얼굴을 익히니 어르신들의 조언도 이어졌다. ‘굼벵이를 그대로 들고 다니니 징그러워 사겠냐’며 ‘안 보이게 만들어 팔라’고 했다. 그때 문득 스친 생각이 보은 특산물인 대추였다.


“보은은 대추로 유명해요. 온 동네가 대추나무를 키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대추즙에 굼벵이를 넣어 음료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주변 대추농가 창고에 묵힌 대추를 싹 다 가지고 와 ‘굼벵이 대추즙’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굼벵이 특유의 고소함이 대추의 달큼함과 어우러져서 색다른 맛을 냈다. 거기에다 몸에 좋은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하니 주변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마을에서도 남아도는 대추를 이용해 음료를 만든다고 하니 반겼다. 앞으로 곤충이 식용으로 풀릴 것을 예측해 특허신청도 했다. ‘굼벵이 및 대추를 포함하는 숙취 해소용 조성물’로 2016년 5월 특허를 신청했고, 그해 12월에 허가가 났다. 그리고 식약처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굼벵이를 이용한 식품 제조 허가’가 떨어졌다.


굼벵이를 포함한 식용곤충이 식품 원료로 인정받으며 곤충 사육에도 점점 박차를 가했다. 처음 플라스틱 한 상자에서 점차 늘려 200박스까지 식용곤충을 키웠다. 석 달 만에 박스마다 100kg의 곤충이 바글바글 자랐다. 굼벵이 사육을 원하는 이들에게 분양도 하며 사업을 확장했고 목돈이 생기기 시작했다.


“굼벵이 대추즙은 4만 원에 만들어 12만 원에 팝니다. 고부가가치죠. 많이 팔지는 못하지만 1박스씩만 팔아도 용돈 벌이가 됐어요. 약재상의 수요도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생으로 팔면 징그러우니까 동네 이장님께 건조기를 빌려다 건조 형태로 팔았죠.”



반려동물 사업으로 확장

굼벵이의 식품제조 허가로 귀농자금 대출도 받을 수 있게 돼 사업에 활기가 돋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사육장 앞에 자그마하게 건물도 지었다. 두 다리 뻗고 잘 방도 생겼고 수도시설에 화장실도 생겼다. 마냥 좋았지만 대출금은 결국 빚진 돈이라는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때 도움의 손길을 뻗친 건 쌍문동 동네 친구 박준석 씨다.


“만나면 항상 같이 돈 벌 궁리만 하던 친구였어요. 한번은 동네에서 술을 마시고 헤어질 때 굼벵이 음료를 줬더니 다음 날 아침에 전화해서 ‘술이 안 취한다’고 해요. 효능을 몸소 느낀 거죠.”


디자인을 전공한 박씨가 합류하며 사업에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회사의 모습을 갖춰가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농업회사 법인 ‘우성’을 세우고 로고도 만들었다. 굼벵이의 효능을 상세하게 적은 전단과 명함도 만들었다. 든든한 동지를 얻고 시장조사를 겸한 방문판매에 나섰다.


“레스토랑, 맥줏집, 카페…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들어갔어요. ‘굼벵이는 간간하니 파스타 반죽 만들 때 넣어봐라’, ‘시나몬 가루 뿌리듯이 곤충 가루를 뿌리면 곤충 커피 아니겠냐’, ‘맥주 안주로 말린 곤충을 먹어보면 어떨까?’ 하며 무조건 아이디어로 들이댔죠. 유명 요리 프로에 나오는 요리사들에게 무작정 연락도 해봤지만, 답은 없었어요. 곤충이라 거부감이 컸던 거죠.”


말 그대로 맨땅의 헤딩이었다. 그러다 발에 채듯 걸린 게 애견 시장이다.


“차로 무작정 달리다 멈춘 곳에 반려동물용품 가게가 있었어요. 의외로 곤충에 대한 거부감이 없더라고요. 한구석에 보니 동물 간식으로 돼지 코 슬라이스, 말린 목뼈, 연골, 정강이 등 희귀한 재료가 다 있어요. 이거다 싶어 노선을 애완동물 시장으로 바꿨습니다.”


2017년 1월,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었다. 돌아오자마자 동물 관련 업체와 농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연구 끝에 나온 상품이 반려동물을 위한 파우더 형태의 영양제 ‘벅스펫’이다. 제작에 드는 장비라곤 3평짜리 사무실에 믹서가 전부였다. 굼벵이 말고도 귀뚜라미나 고소애도 갈아 넣었다. 쌀가루와 쌀겨, 코코넛 가루, 귀리, 아마 씨 등 몸에 좋은 재료를 섞어 30g짜리 영양제 한 통을 만들었다. 식용곤충 시장의 새 길이 열린 순간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성공담

‘반려동물’은 신의 한 수였다. 곤충과 동물이 만나니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반려동물 산업은 식용곤충만큼이나 ‘핫한’ 분야였다. 사람이 먹는 굼벵이 대추즙보다 동물 시장은 진입 장벽이 낮았다. 2017년 8월에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처음 소개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영업을 하지 않아도 애견업자들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보은군의 귀농·귀촌 지원센터에서도 귀농 성공 사례로 ‘벅스펫’을 선정했고, 이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청년 농부 100인에 김우성 대표를 선정해 소개했다. 올해 귀농·귀촌 청년박람회에서 청년창업 대상을 받았고, 지난 6월에는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에서 진행한 ‘나의 농사 이야기’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벅스펫 득을 크게 봤어요. 특히 농식품부 문화정보교육원에서 소비자들에게 식용곤충을 알리기 위한 콘텐츠를 제작했는데, 우리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바람의 파이터〉를 촬영한 이상기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조선 농민 사전〉입니다. 이곳 사육장을 배경으로 촬영해 지난 1월 농식품부 SNS에서 방영됐고, 이후 네이버 티브이를 통해 소개됐습니다. 제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질 줄이야 꿈에도 상상 못 했죠. 영화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보은군 대추와 마을이 소개되니 충청북도에서 대단한 자랑거리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벅스펫의 인기에 힘입어 숙취해소 음료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숙취해소 음료 ‘챙기세요’로 지난 4월 크라우드 펀딩을 론칭해 700만 원 매출을 올렸다.


“아직은 식용곤충 사업이 쉽지 않아요. 돈을 벌면 기계도 사야 하고 매출을 내야 하니까 여전히 돈을 쓰는 단계죠. 하루하루 ‘열정 페이’로 살고 있습니다.”


그는 “창조적인 발상,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시작함으로써 생긴다”고 말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간절함, 도전정신이 청년농부 김우성 씨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글·사진 jobsN 서경리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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