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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mm 선으로 그림 그리는 국내 9명뿐인 이 직업의 정체

조회수 2020. 9. 24. 14: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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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9명 밖에 없는 특수 직업의 정체
화폐 디자이너 김재민
평창 올림픽 기념 화폐 디자인도
디자인만 잘해서는 할 수 없는 일

0.1㎜ 폭에 0.03㎜ 선을 그려 넣는 작업을 수백 번 반복 하자 5만원권 속 신사임당이 나타난다. 수많은 선으로 신사임당뿐 아니라 지폐 속 퇴계 이황과 세종대왕을 그리는 이 사람. 김재민(42) 화폐 디자이너다. 그는 한국 조폐 공사 소속 15년 차 직원으로 지폐는 물론 동전, 신분증, 여권 등 실생활에서 쓰는 공공 제품을 디자인한다.


화폐 디자이너는 20여 개국에 200여 명밖에 없는 특수한 직업이다. 국내엔 9명이 활동 중이다. 그중 한 명인 김재민 디자이너에게 화폐 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하는지 jobsN이 들어봤다.

출처: 한국 조폐 공사 제공
김재민 화폐 디자이너

한국 조폐공사 화폐 디자이너로 입사


-처음부터 화폐 디자이너를 꿈꾼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화폐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어렸을 때부터 우리나라 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나라를 문화선진국으로 만드는 게 제 꿈이었죠. 막연하게 문화를 부흥시킬 수 있는 문화운동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집이 안동이라서 시청에 찾아가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 국제 행사 기획안’ ‘한옥 마을 프로젝트’ 등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문화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보고 싶어 대학생 때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화폐 디자이너는 언제 알았나요.

"2002년 잡지에서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소속 화폐 디자이너 로베르트 칼리나(Robert Kalina) 작품이 새 유로 디자인으로 선정된 걸 봤어요. 그때 처음 화폐 디자이너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매력을 느꼈죠. 화폐 디자이너가 문화 운동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았어요."


-한국조폐공사에는 언제 지원했나요.

"2003년 홍익대학교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알아보던 중 한국조폐공사 채용공고를 봤습니다. 바로 지원했죠. 1차 서류·2차 실기시험(정밀묘사·컴퓨터그래픽)·3차 블라인드 면접·4차 최종면접을 봤어요. 경쟁률 198대 1을 뚫고 합격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망점 인쇄(좌), 선화 인쇄(우)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디자인


-입사 후 화폐 디자이너로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지.

"다양한 교육을 받습니다. 모든 공공제품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 보안제품입니다. 인쇄 방식, 제품의 물성과 특성 이해, 위조방지 장치를 이해 등을 교육을 통해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메달은 일반적으로 주물방식으로 설계합니다. 공사에선 유토(油土)를 석고로 본뜹니다. 금형 조각을 거쳐 기계 압사 후 메달을 만듭니다. 제품의 특징을 하나하나 배우고 나서 본격적인 설계에 들어가죠.


또 화폐 디자이너가 쓰는 전문 프로그램이 따로 있습니다. 라인아트(Line Art)소프트웨어 입니다. 은행권 및 보안 인쇄 제품을 디자인할 때 사용합니다. 전 세계 공통이이에요. 프로그램 사용법을 따로 배웁니다. 한 달 정도 스위스로 연수도 다녀왔어요. 라인아트는 일반 2D 또는 3D 프로그램보다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어요. 공사에서 작업하는 모든 보안제품은 고해상도로 해야하기 때문에 해상도나 용량면에서 포토샵 등 일반 프로그램으로는 어렵습니다."


-교육 후 바로 화폐를 디자인했나요.

"해외 화폐 디자인을 분석하고 기술을 익혔습니다. 인턴십 때는 이를 바탕으로 유로화를 재디자인 했습니다. 일종의 연습입니다. 화폐 디자인은 10년~20년에 한 번씩 바꿉니다. 바로 화폐 디자인할 기회는 없었어요. 그동안 기념주화, 공무원증 등을 디자인했습니다."


-일반 디자인과 화폐 디자인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화폐 디자인은 특수 디자인 입니다. 일반 제품과 달리 보안제품이라 설계법부터 다릅니다. 위조방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작업해야해요. 또 은행권은 망점인쇄방식이 아닌 선화 인쇄입니다. 망점 인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쇄할 때쓰는 방식으로 미세한 점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요. 반면 공사에서 하는 모든 건 선화 인쇄입니다. 모든 작업을 선으로 하죠. 0.1㎜ 폭 안에 3~4개의 선이 들어갑니다. 최소 0.03㎜의 가는 선으로 작업해요. 그래서 디자인을 거의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거나 마찬가지죠.”


-화폐의 핵심은 위조방지 장치라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위조방지장치는 숨바꼭질입니다. 드러내면서도 숨겨야 해요. 크게 세 가지로 설계합니다. 첫 번째, 숨은 그림 찾기처럼 쉽게 찾을 수 없도록 디자인을 숨겨 놓습니다. 두 번째는 촉각을 활용한 디자인입니다. 은행권 표면에 나타난 오돌토돌한 부분이죠. 세번째, 기울기를 이용합니다. 대표적으로 오만원권에 들어간 은색 띠형 홀로그램이 있죠. 보는 각도에 따라 숫자나 형태를 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출처: 본인 제공
김재민 디자이너가 참여한 평창기념 화폐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평창동계올림픽 기념화폐’


김재민 디자이너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5000원·1만원·5만원 신권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일반적으로 은행권은 설계부터 최종 결과물까지 2년이 걸린다. 설계, 디자인 등 많은 절차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이다. 국가 정체성을 대표할 소재와 구성을 정하고 고증을 거치기 때문이다.


-신권을 만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신권은 각 인물의 초상을 그대로 사용했고 배경을 컬러풀하게 바꿨어요. 신형 홀로그램도 강화했습니다. 모든 과정이 기억에 남지만 신사임당의 얼굴이 박제된 얼굴처럼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있었죠. 사실 신사임당 표준 영정은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화폐로서 디자인을 새로 접목하기 위해 의복, 표정 등을 검증을 통해 새롭게 디자인했어요. 사실 유관순을 넣었으면 좋겠는 바람도 있었지만 고문으로 얼굴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가장 최근 디자인한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화폐입니다. 2015년 9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에 걸친 긴 프로젝트였어요. 기념주화는 23종으로 수량도 많았고 수많은 경기 장면, 사진, 영상을 보면서 디자인했습니다. 종목마다 특성을 이해하고 스케치하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평창 기념화폐는 우리나라 최초 기념 지폐입니다. 기념주화는 많았지만 지폐는 처음으로 발행한 것이죠. 70년만에 스피드 스케이팅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점을 고려해 화폐를 디자인했어요. 주변에선 왜 김연아 선수를 모델로 사용하지 않았냐는 말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살아 있는 인물을 화폐에 쓰지 않기 때문에 김연아 선수를 넣을 수 없었습니다.”


-화폐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화폐 디자이너는 단순히 디자인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다양한 디자인 트렌드와 해외 기술 동향 등 전문지식을 파악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위스 화폐 디자이너 로저 푼트(Roger Pfund)는 ‘어떤 주제든 본질적인 접근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디자인 하는 사물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능력은 화폐 디자이너로서 꼭 갖춰야할 능력입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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