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냉면' 개발자가 말하는 농심 라면 개발의 비밀

조회수 2020. 9. 24. 14: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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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냉면으로 신라면에 도전장 낸 라면박사
황준호 농심 라면연구원 인터뷰
농심 내 ‘면발 사출’ 대표 전문가

농심은 국내 라면 시장의 절대 강자다. 국내 라면업계에서는 농심의 점유율을 약 56%로 추정한다. 신라면·짜파게티·너구리·육개장사발면·안성탕면 등 이른바 빅5라 불리는 스테디셀러 제품들이 30여년째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 모두 1980년대에 출시된 라면들이다.


그 가운데 절대강자는 신라면이다. 수십년간 1위를 지킨 업계의 전설이다. 라면 회사 사람들은 ‘신라면을 넘어 보자’는 말을 수십년째 하고 있다. 농심 면개발팀 연구원인 황준호(40) 과장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둥지냉면’ 개발자다. 최근엔 토마토 소스를 활용한 건면(튀기지 않고 말린 면) 제품 ‘스파게티 토마토’도 개발했다. jobsN은 25일 황씨를 만나 라면연구원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괄호 안은 편집자 주)

출처: 농심 제공
황준호 농심 연구원

“양파링을 먹으면 왜 입천장이 따가운가”

- 라면 연구원이 된 이유는.

“라면 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2004년 농심 스낵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식품공학과 석사 출신으로 먹거리 개발을 하고 싶어 연구원이 됐다.”


- 입사 후 어떤 일을 했나.

“스테디셀러의 맛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일을 많이 했다. 예컨대 바나나킥의 바삭함을 강화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과자 위에 코팅하는 시럽 양을 조절해 바삭함을 조절한다. 양파링을 먹으면 입천장이 따갑다는 어린이들의 지적이 있어서 마찬가지로 바삭함 조절을 했다. 그 외에 인디안밥 맛 조절도 진행했다.”


- 그런데 종목을 스낵에서 라면으로 바꾸게 된 계기는.

“2008년 출시한 ‘둥지냉면’ 개발이 계기였다. 그동안 라면의 면발은 반죽을 얇게 편 뒤, 잘라서 튀기는 방식이 주류였다. 둥지냉면은 메밀가루를 반죽을 한 다음에 구멍이 송송 나 있는 사출기에 눌러서 면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둥지냉면의 면발은 스낵 제작에서 많이 쓰이는 사출 기기와 공법을 면 생산에 접목해 식감을 낸 것이 특징이다. 면발 사출은 농심 내에서 내가 대표 전문가다. 둥지냉면이 히트치고 나니 면개발팀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출처: 농심 홈페이지 캡처
황준호 과장의 인생을 바꾼 히트작 '둥지냉면'

- 이후에는 어떤 제품을 만들었나.

“농심이 그동안 시도하지 않은 제품들을 주로 만들었다. 쌀국수, 떡국면, 카레라이스면 등을 만들었다.”


- 기존의 ‘얼큰한 라면’ 카테고리와는 거리가 좀 있는데.

“사실 어지간한 라면 종류는 이미 다 개발이 끝났다. 신라면이나 짜파게티 같은 스테디셀러도 건재하다. 하지만 미래를 대비해 맛을 다변화해야 한다. 내 주 업무는 앞으로 트렌드가 될 수 있는 제품을 실험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실제로 면발을 튀기지 않고 말리는 ‘건면’ 카테고리 규모는 2017년 기준 1166억원. 전년 대비 25% 성장한 수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국내 라면 시장 2조원 규모의 5% 수준에 그친다.)


면발 연구하러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 1일 7식’ 하기도

농심은 최근 ‘스파게티 토마토’를 출시했다. 컵라면 용기에서 5분만에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스파게티면이다.


- 스파게티면은 어떻게 개발했나.

“스파게티는 ‘알 덴테(Al dente)’라 불리는 식감이 특징이다. ‘면을 삶았을 때 안쪽에서 약간의 단단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면의 겉은 완전히 익고 속은 살짝 설익어야 한다. 반죽 배합, 면 두께, 면발 속 구멍 갯수 등을 조절하면서 개발했다. 실험할 때 쓴 듀럼밀(durum wheat)만 50t이 넘는다.


또한 면발을 튀기지 않고 말리는 공법도 연구했다. 새 둥지 모양으로 얹어서 바람에 말리는 ‘네스팅(nesting) 공법’도 적용했다. 새 둥지처럼 둥글게 말리면 그대로 컵라면 용기에 넣을 수 있다.”


- 스파게티면을 개발하기 전에 파스타집을 많이 돌아다니나.

“물론이다. 스파게티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의 맛집들을 돌아다녔다. 하루에 스파게티 일곱 끼를 먹은 적도 있다.”


- 어디가 가장 맛있었나.

“베네치아에서 먹은 먹물 스파게티가 제일 맛있었다.”


- 그런데 왜 먹물 스파게티가 아닌 토마토 스파게티를 출시했나.

“라면 개발에는 대중성도 생각해야 한다. 보편적 입맛인 토마토 스파게티면부터 출시하고 다른 제품은 추후에 내는 것이 맞다고 봤다.”

출처: 농심 제공
황준호 농심 연구원이 자신이 개발한 라면들을 소개하고 있다.

“라면 어떻게 끓여야 맛있냐고요? 봉지를 정독하세요”

인터뷰를 하면서, 평소 라면 연구원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소소한 질문들을 던져봤다.


- 회사에서 하루에 라면 몇 가지를 시식하나.

“하루에 5가지 정도 먹는다. 주로 한두 젓가락만 먹는다. 나머지는 아깝지만 버린다. 포만감이 식감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집에서도 라면을 먹는가.

“물론이다.”

- 누가 끓이나. (황 과장은 부인과 둘이 살고 있다.)

“내가 끓인다. 아내가 해주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라면은 이상하게 내가 안 끓이면 맛이 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집에서는 무슨 라면을 먹나.

“둥지냉면이나 스파게티 토마토 등 내가 개발한 라면을 주로 먹는다. 기왕에 개발했으니 라면의 맛을 미세조정하는 등 애프터서비스도 나의 몫이라 생각한다.”


- 라면은 어떻게 끓여야 맛있나.

“레시피를 잘 따라달라. 레시피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최소한 100회 이상 개발자가 끓여보면서 최상의 맛을 찾은 것이다.”


- 하지만 ‘짜파구리’ 같이 라면을 섞어서 먹는 소비자도 있는데.

“새로운 맛을 내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라 생각한다. 라면 개발자 입장에서도 미쳐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를 유튜버 소비자가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 라면 연구원을 하면서 가장 기뻤을 때는.

“일본 여행 갔는데 편의점에서 진열해 놓은 둥지냉면을 봤다. 내가 만든 라면이 외국에서 팔리니 뭉클했다.”


- 꿈이 있다면.

“‘당연히’ 신라면 정복이다. 신라면을 넘어서는 라면을 개발해 보겠다. 아예 새로운 식감을 위해 콩이나 옥수수 등의 재료를 연구해 보고 있다.(국내 대부분의 라면 면발은 밀로 만든다.)”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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