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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3억 날리고 탄생한 7000원짜리 대박 스테이크입니다

“자만심 생길 때마다 사업 망해…3억 날리고 콘셉트 제대로 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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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링스테이크 창업한 김석희 대표
축산학 전공한 천성 ‘고기마니아’
‘7000원 스테이크’로 대박내

고기를 사랑하는 40대 남자 김석희(42)씨. 최근 삼성동과 역삼동 등에서 직장인 사이에 ‘줄서서 먹는 집’으로 이름이 난 ‘달링스테이크’의 창업주 겸 대표다. 19일 찾은 서울 삼성동 매장에는 영어로 ‘고기는 늘 옳다(meat is always right)’는 말이 적혀있다. 평일 낮이지만 대기자 이름을 적는 화이트보드에 이름이 빼곡했다.


하지만 늘 사업에서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가게를 열었다 닫기를 약 10여 차례. 그 중에서 4번은 확실히 실패했다. 수익과 비용 등을 제하고 정확하게 도합 3억원을 날렸다고 한다. 하지만 성공도 많이 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던 그가 사업에 안착하게 된 것은 7000원에 찹스테이크와 샐러드, 밥 등을 즐길 수 있는 ‘비프 스테이크’ 메뉴를 내세운 ‘달링스테이크’가 히트 치면서다. jobsN은 김 대표를 만나 실패와 성공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천성 고기매니아…전역 장교 공채로 영업맨 생활 시작

김 대표는 축산과 출신이다. 삼수 끝에 1996년 고려대 축산과(현 생명공학부)에 입학했다. 돈육학 등 고기를 다루는 과목들은 A+를 휩쓸었다. “고기는 물론이고 가축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소나 돼지, 닭 등 주요 가축을 사육에서 도축까지 하는 과정 전체가 재밌었어요.” 남들 같으면 취직을 알아보기 바빴겠지만, 고기매니아 김석희는 말 그대로 고기를 사랑했고, 이에 대학 교수는 “군 입대를 연기하고 대학원으로 오라”는 유혹도 했다. 하지만 ROTC 명예위원장(기수별 학생회장 개념)이었던 그는 졸업 후 바로 군입대를 했다.


전역 후 김씨는 2002년 삼성카드에 전역장교 공채로 취업했다. 2년간 근무 하다가 이른바 ‘카드 대란’이 터졌다. 당시 카드사들이 신용평가를 소홀히 하고 신용카드 발급을 남발했다. 연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위기가 터졌다. 이에 삼성화재로 계열사를 옮겼다.

김석희 대표가 삼성화재 배구단 재직 당시 올린 글.

출처삼성화재 배구단 홈페이지 캡처

그는 삼성화재가 프로 배구단을 창단하면서 마케팅 담당 겸 프런트 직원으로 일했다. 2005년 프로배구 V리그 원년 우승은 물론이고, 2011년까지 선수들을 돕고 팬들을 위해 이벤트를 기획했다. 여오현(40·현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플레잉코치), 석진욱(42·현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코치), 신선호(40·현 성균관대 배구부 감독) 등의 선수가 이 때 활약했다. 


종잣돈 3억원 들고 미아삼거리로…‘시행착오’ 계속

2002~2011년 10년은 ‘외도의 시간’이었다. 사회생활은 열심히 했지만, 학창시절에 꿈꿨던 ‘고깃집’에 대한 꿈은 잠시 접어뒀다. “배구단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핫도그 나눠주기 행사였어요. 저를 포함한 프런트 직원들이 관람객에게 핫도그를 직접 데워서 나눠줬는데 ‘이게 내 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김씨는 10년간의 직장생활로 얻은 퇴직금을 포함해 모은 3억원을 손에 쥔 채 퇴사했다. 지인들의 추천으로 젊은이가 많이 온다는 ‘미아삼거리’ 상권으로 향했다. 삼겹살집 ‘왕손’을 창업했다. 국내산 삼겹살과 목살을 파는 식당이었지만 99㎡(30평) 매장 월 매출이 1500만원에 그쳤다. 알바비와 운영비를 빼면 사실상 적자였다. “축산과 나와서 고기의 퀄리티는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좋은 고기를 쓰면 손님이 온다는 건 순진한 발상이었죠.” 특히나 회식이나 지인끼리 술자리가 많은 상권과 맞지도 않았다. 

미아삼거리 '왕손' 고깃집.

출처인터넷 캡처

메뉴를 전면 개편했다. 수입산 돼지고기를 써서, 가볍게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고깃집으로 콘셉트를 바꿨다. 술안주 할 수 있는 메뉴도 곁들였다. 성공. 월 매출이 3000만원으로 수직상승했다. 하지만 1년쯤 호황을 누리자 “일이 힘들다”면서 아르바이트생들이 줄줄이 퇴사했다.


혼자서 고기도 썰고 서빙도 보기를 몇 달, 김 대표는 결국 업종을 바꿨다. 같은 자리에서 ‘매운집’이라는 닭발집을 차렸다.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기를 반복하고, 매상은 나지 않았다. 몇 달의 고민을 거쳐 실내 포장마차로 개조했다. 동네에서 입소문이 난 ‘떠먹는 피자’ 메뉴도 개발했다. 월 매출 3000만원을 회복했다.


김 대표는 ‘호프집’도 차렸다. 2014년 미아삼거리 인근에 9.9㎡(3평)짜리 자투리 공간에 ‘열정비어’라는 스몰비어집을 차렸다. 대박이 났다. 직원은 1명인데 월 매출 1500만원이 났다. 하지만 또 지나친 자신감이 발목을 잡았다. 돈이 되겠다 싶어서, 인근에 49.5㎡(15평)짜리 맥주집을 인수한 것이 화근이었다. 메뉴도 특별하지 않았고, ‘레드컨’이라는 이름도 특색이 없었다.

김석희 달링스테이크 대표가 대표 메뉴인 '비프 스테이크(7000원)'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jobsN

다짜고짜 건너간 미국…“한국에서 왔다고?” 기겁

그때쯤 김 대표는 좀 지쳤다. 그래서 미아삼거리에 있는 업장들을 모두 정리했다. 1억원이 남았다. 2억원을 날린 셈이다.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미국식 바비큐가 관심을 모으던 때였다.


미국 유명 바비큐 축제인 ‘빅 애플 바비큐’에 갔다. 미 전역에서 내로라하는 바비큐집이 부스를 차려 맛을 경연했다. 그 중에 한 곳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그 뒤로는 전형적인 한국식 스토리다.


“한국에서 온 레스토랑 사업주다. 당신에게 기술을 배우고 싶다.”

“나는 바쁘고, 라스베이거스에 내 제자가 있다. 가보라.”


바비큐집 사장은 생면부지의 한국 아저씨에게 주소를 적어줬고, 김씨는 그 종이를 들고 라스베이거스 현지 바비큐집 사장인 에릭 에르난데스를 만났다. 에르난데스는 김씨의 사연을 듣고는 자택에서 재워주면서 기술을 전수해줬다고 한다. 돈은 받지 않았다. 이후 미국 요리학교 CIA에서 바비큐 코스도 짧게 들었다.


1개월 간의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김 대표는 2016년 11월 친누나가 운영하고 있던 육회식당 자리에 바비큐집을 차렸다. 그게 지금 운영하는 ‘달링스테이크’다. ‘동네에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집’을 콘셉트로 주택가 등 소위 ‘동네 상권’에서 줄서서 먹는 집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역삼점(33㎡)·강남구청점(43㎡)·양재점(43㎡)·삼성점(43㎡) 등 4개 직영점이 각각 월 매출 5000만원씩을 낸다. 직원 출신이 가맹점으로 낸 고려대점은 43㎡(13평) 규모 매장에서 월 6300만원의 매출을 낸다.


알바생도 유급 2시간 휴식 보장…1년 근무시 ‘분가’ 가능

김 대표는 알바생 등 직원들의 복지도 알뜰하게 챙긴다. ‘왕손’ 때 알바생들이 힘들다고 그만뒀던 기억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2시간 유급 휴식시간’이다. 오후 3~5시면 가게 문을 닫는다. 직원들은 낮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한다. 당연히 시급은 계산한다.


회사 경영에도 우리사주 개념을 도입했다. 6개월 이상 근무한 직원(알바 포함)이 가맹점을 내면 가맹비(1000만원)의 50% 할인, 1년 이상 근무하면 가맹비 면제다. 요리법을 배우는 교육비(200만원)도 당연히 낼 필요가 없다. 가맹점을 차려서 나가지 않고, 계속 근무하는 직원은 신규 매장을 낼 때 해당 매장의 주주로 참여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사업 실패를 맛봤다. 물론 달링스테이크 창업 후에도 한 번 뼈 아픈 실패가 있다. 가로수길에 매장을 냈다가 임대료가 너무 비싸 폐업한 것. 이 때 1억원을 날렸다고 한다. “특수상권에서 7000원짜리 스테이크로 돈을 벌겠다는 것이 무모했어요. 사업이 잘 된다 싶으니 또 자만심이 생긴거죠. 아주 비싼 수업료 내고 콘셉트 확실하게 잡았어요.” 이를 교훈 삼아 김 대표는 '손님이 편하게 올 수 있는 대중적 동네 맛집'이라는 콘셉트를 더 파고 들어갈 생각이다.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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