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입연 아이의 '엄마 커피' 한마디..펑펑 울었죠"

조회수 2020. 9. 24. 12: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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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세상에 눈 뜬 발달장애인, 저도 함께 컸어요"
장애인 바리스타 교육, 40여명 취직
화상 연고 붕대는 필수품
발달장애인 지도자 위한 교육 만들어야

“커피가 매일 엄마가 챙겨주는 하루견과처럼 고소해요. 이 커피는 자몽처럼 시어요.”


성남시율동생태학습원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발달장애인 학생이 커피의 맛을 표현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 표현이 서툰 발달장애인이 이런 감정 표현을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이해림 생태학습원 사업팀장의 오랜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팀장은 바리스타 대회 심사위원 자격(커피마스터)까지 획득한 커피 전문가다. 또 발달장애인을 지도하며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장애인 바리스타 교육자기도 하다.

출처: 사진 jobsN
이해림 사업팀장

발달장애 바리스타 교육, 교육자도 처음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팀장이 처음 커피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생 때 인기를 끈 드라마 ‘커피 프린스’ 때문이다.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여러 커피숍에서 3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장애인시설에서 인턴을 하던 2010년 율동생태학습원이 발달장애인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하면서 카페도 운영할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다. 장애인과 함께 커피를 만드는 일이 멋있어 보였다.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도 있어 생태학습원에 지원했다.


발달장애인 교육은 이팀장이 상상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 7년 된 중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놓고 교육을 시작했다. 이팀장은 3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신입 알바생에게 가르친 경험은 있었다.


발달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에게 당연한 것조차 생소한 경우가 많다.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컵에 물을 받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단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고 가정하고 시작해야 했어요. 익숙한 사물이나 관계에서 시작했죠. 제일 먼저 시작한 게 컵을 사용하는 것이었어요.”

출처: 사진 성남시율동생태학습원
지적장애인 바리스타대회에서 커피를 내리는 이해림 팀장

생두를 볶고, 분쇄하고,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일은 보통 커피숍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을 반복한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처음이다. 특히 고압의 증기를 뿜어내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공포 그 자체였다. 용기를 내 다가갔다가도 화상을 입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도 화상 연고와 붕대를 가지고 다녀요. 아이들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괴물로 생각할까 봐 그게 제일 염려스러웠어요.”


”엄마 커피” 말 없던 아이가 건넨 첫 대화


장애인 교육에 힘들어하던 이팀장은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발달장애인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도 소극적이다. 그런데 이 복지사는 커피가 발달장애인의 사회성을 기르는데도 도움을 준다고 확신했다. 매일 자기가 내린 커피와 다른 친구들이 내린 커피를 평가해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통 알아간다는 것이다.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친구가 있었어요. 1년이 다 되도록 인사를 해도 대답이 없었죠. 1년 정도가 지나서였을 거예요. 하루는 텀블러를 내게 건네더니 ‘엄마 커피’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기다리는 엄마에게 줄 커피를 달라는 거였어요. 처음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한 것이죠. 그날 집에 돌아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발달장애 학생을 데리고 대회를 나가는 이유도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주고 사회성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설을 알리고 발달장애인도 교육을 통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이팀장이 지도한 장애인 바리스타팀이 거둔 성적만도 우승 4회, 준우승 3회 등이다.

출처: 성남시율동생태학습원
2015년 액센추어 장애인 바리스타 대회에서 우승한 이해림 팀장(왼쪽부터), 박태우, 이근우

목표를 가지고 도전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바리스타 대회는 수동적인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하는 기회였다. “아이들이 대회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전에 교육을 받아 지금은 커피숍에서 일하는 친구가 들렀죠. 교육할 때는 엄청 내성적이었는데 아이들을 불러서 상장 모아 놓은 곳에 가더니 자랑을 하더라고요. 지금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고 열심히 하면 자신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발달장애인 변화만큼 나도 성장


처음 변변한 장비도 없이 시작한 바리스타 교육장이 이제는 제법 근사한 카페로 변했다. 교육을 받으러 멀리 성남시, 광주시를 비롯해 서울에서도 찾아온다. 이 복지사가 가르친 학생만 300명이 넘는다. 이중 10% 정도가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거나 커피 관련 일을 구해 사회로 나섰다.


요즘은 매주 100여명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항상 고민하는 부분은 ‘이 아이들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다. 비장애인처럼 할 수 없으니 목표치를 어디에 둘지가 자신이 안선다. 그런 고민을 하면서 커피를 조금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리스타 자격증 2급과 1급에 이어 커피마스터 자격까지 획득했다. 지금은 로스팅 과정을 배우고 있다.

출처: 사진 jobsN
이해림 팀장

8년째 교육을 하다보니 새로운 도전도 하고 싶다. 장애인 지도자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다. “여러 협회에서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해졌어요.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모여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 발달장애인이 조금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유명 기업의 사내 카페테리아에는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업의 노력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교육 시설도 구색을 갖추고, 아이들이 성장한 것처럼 저도 함께 자란 것 같아요. 아이들이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도 편견없이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봐 줬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jobsN 최광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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