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일본 차 렉서스, 부산 출신 이 한국 남자를 콕 점찍은 이유

조회수 2020. 9. 23. 18:16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번듯한 직장 관두고 온종일 사포질하는 이 남자
공방에 앉아 좋아하는 것을 온종일 고민하는 것이 너무도 즐겁다
수제 안경점 운영하는 김길수 대표
안정적인 직장 버리고 수제 안경 선택
안면 비대칭 고객에게 맞춤 안경 만들어줘

지난 2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중동의 한 파란색 건물 2층 공방. 무언가를 자르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실톱 소리로 15평(49.5㎡) 남짓한 공간이 가득 찼다. 실톱을 거친 조각은 둥그런 형태의 안경테로 변신했다.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김길수(38) 대표는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이 안경이 주인의 얼굴에 안착해 한 사람의 이미지를 어떻게 바꿀지 기대가 됩니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수제 안경공방 ‘오또’의 모습. 상호인 오또는 안경테 모습을 형상화해 이름 붙였다. /jobsN

이곳은 수제(手製) 안경 공방이다. 외벽에는 안경 모양을 형상화한 ‘OTTO(오또)’라는 상호가 붙어 있다. 수제 안경이란 기계 작업 대신 손으로 직접 깎고 다듬어 만드는 안경이다. 나무나 솜에서 추출한 수지로 만든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를 재료로 사용한다.


6살, 2살 두 아들을 둔 김길수 대표는 지방 안과병원의 기획홍보팀을 때려치우고 작년 9월 이 공방을 차렸다. 온종일 톱과 사포를 손에 쥐지만 삶의 만족도는 2배라고 했다. 그는 하나에 35만~45만원인 수제 안경을 한 달에 5~7개 판다.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는 그를 작년 12월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에 뽑기도 했다. 무엇이 그를 수제 안경의 세계로 이끌었을까.

출처: jobsN
김길수 오또 수제 안경공방 대표. 공방 곳곳에는 그가 그린 안경 스케치가 붙어 있다.

안정적인 직장 버리고 수제 안경 장인의 길로


부산 토박이인 김 대표는 학창시절부터 안경을 좋아했다. 선이 굵어 이국적으로 생긴 그는 안경만 끼면 인상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부경대 제품디자인과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고, 모은 돈으로 안경을 샀다. 그렇게 산 안경만 20개가 넘었다.


-수제 안경을 어떻게 처음 알게 됐나.

“대학 친구가 유럽여행을 다녀오며 수제 안경을 선물로 줬다. 나중에 퇴직 후 직접 안경을 만들며 노후를 보내면 어떨까 꿈꿨다. 꿈은 일단 접어둔 채 대학 졸업 후 인테리어 사무소에서 6년간 일했고, 부산의 한 안과 병원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다.”


-수제 안경 만드는 법은 어디서 배웠나.

“안경을 좋아하니 직접 안경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며 조금씩 따라 했다. 2015년 서울의 로코안경공방에서 안경 제작 수강생을 모집한다고 해 직장 생활을 하며 주말에 서울을 왕래했다. 새벽 첫차를 타고 올라가서 막차를 타고 내려오며 배웠다. 좀 더 알고 싶어 휴가 때는 일본의 안경장인을 찾아가 3~4일씩 배우고 돌아왔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공방을 차리기 쉽진 않았을텐데.

“6살, 2살, 아들만 둘이다. 수제 안경이 대중적 아이템은 아니라 고정수입이 없을 수 있다는 점에 고민이 많았다. 모습을 본 아내가 ‘그렇게 좋으면 일단 해보라’며 지원해 결정했다. 아내와 맞벌이라는 점도 큰 동기가 됐다. 현재 한 달에 수제 안경 5~7개를 판매하고, 10명 안팎의 수강생을 받아 공방을 운영한다. 매달 수입이 다르지만 온종일 공방에 있는 게 행복하다.”

출처: jobsN
김길수 대표가 만든 수제 안경.

안면 비대칭이었던 고객에게 만들어줬던 수제 안경


그는 작년 9월 자택에서 5분 거리인 부산 해운대구 중동에 안경 공방을 차렸다. 부산, 경남에 있는 유일한 수제 안경점이다. 그는 온종일 안경 디자인을 고민하고, 톱질과 사포질을 한다. 공방 곳곳에는 그가 그린 안경 스케치들이 붙어 있다. 김 대표는 “디자인 스케치를 할 때 오른손을 사용하면 익숙한 선들만 그려진다”며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디자인을 위해 의식적으로 왼손을 사용한다”고 했다.


-수제 안경의 장점은 뭔가.

“사람의 얼굴 크기는 각양각색이다. 일반 안경점에서는 안경에 얼굴을 맞춘다. 하지만 수제 안경점에서는 얼굴의 치수를 재고, 직업이나 원하는 이미지를 고려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안경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사각 얼굴에는 원형 안경, 동그란 얼굴에는 각진 안경이 좋다고 하는데 수제 안경 제작 방식은 이와는 다르다. 고객들이 남에게 보이고 싶은 이미지 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출처: jobsN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를 깎아 만든 안경테를 사포질하는 모습.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인가.

“짧게는 2주, 보통 1달 정도 걸린다. 제일 먼저 얼굴의 너비와 폭을 재고, 원하는 인상 등을 고려해 안경 디자인을 결정한다. 이 과정이 2~3일 걸린다. 결정된 디자인 도면을 나무나 솜 등에서 추출한 수지로 만든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에 붙이고 실톱으로 안경테를 깎는다.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는 가볍고, 열과 충격에 강해 안경테로 제격이다. 안경테를 깎으면 이후 면을 고르게 하는 사포 작업을 한다. 안경의 코 지지대를 만들어 붙이고 20시간씩 3번 연마기에 넣어 돌린다.”


-제작시간이 오래 걸려 많이 만들지도 못하겠다.

“현재는 혼자서 공방을 운영해 많이 만들어도 일주일에 3개밖에 못 만든다. 그만큼 가격이 일반 안경보다는 비싸다. 디자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1개에 35만~45만원이다. 직접 안경을 1개 만드는 수업도 진행 중인데 재료비 포함해 23만원을 받고 있다.”


-어떤 고객이 가장 기억에 남나.

“한번은 어릴 때 사고로 안면이 비대칭인 30대 후반 남성이 공방을 찾았다. 그분은 얼굴 형태 때문에 기존 안경을 쓰면 안경이 비뚤어졌다. 각막 두께가 얇아 라식 수술도 불가능했다더라. 그에게 맞는 안경을 만들어줬고 매우 만족하며 갔다. 또 얼굴이 커서 기존 안경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을 위해 안경을 만든 적도 있다. 그 밖에 자신만의 안경을 갖고 싶은 중견 안경사 등 안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수제 안경을 찾는다.”

출처: jobsN
김길수 대표가 직접 그린 안경 디자인들.

렉서스에서 신진 장인으로 선정돼

그는 공방을 연지 3개월 만인 작년 12월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가 진행한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어워드에 유일하게 선정됐다. 렉서스는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드는 신진 장인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유럽이나 일본은 수제 안경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며 “손으로 정성스럽게 깎고 완성하는 수제 안경의 가치를 인정받아 기뻤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도요타·렉서스코리아 타케무라 노부유키 대표의 안경도 만들었다.

출처: 렉서스코리아 제공
김길수 대표가 타케무라 노부유키 도요타·렉서스코리아 대표에게 직접 만든 수제 안경을 건네주고 있다.

-노부유키 대표의 안경을 제작했을 때 고려한 사항은 뭔가.

“타케무라 노부유키 대표의 이미지는 동그랗고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 안경을 통해 전문적인 느낌을 더하고 싶었다. 특히 개성이 강한 자동차인 렉서스의 디자인 이미지도 담으려 했다. 결과적으로 동그란 안경이 아니라 아래 각들이 살아있는 뻗어가는 느낌의 안경이 만들어졌다.”


-앞으로의 계획은.

“수제 안경을 단순한 안경을 넘어 지역의 다양한 공방과 연계해 문화 콘텐츠로 키우고 싶다.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고 이를 선도하는 디자인의 안경을 만들고 싶다. 금전적인 부담은 있지만 아직까지 수제 안경을 택한 것을 후회한 적 없다. 예전 직장 생활의 만족도가 60점이라면, 현재는 80점이다. 100점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글 jobsN 김성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