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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 틀면 펄펄 '끓는 물' 나오는 이곳에서 '벌인 일'

조회수 2020. 9. 23. 17: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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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 쿠웨이트 지사

“여름엔 수도꼭지를 틀면 뜨거운(hot) 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끓는(boiling)물이 나올 겁니다. 목욕하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이한주(58) 쿠웨이트 지사장이 지난해 말 쿠웨이트에 오자마자 현지사람에게 들은 충고다. 쿠웨이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더운 나라 중 하나다. 한여름 최고 기온은 섭씨 50도를 넘나든다. 지난 2016년 7월 24일 쿠웨이트에서 관측된 54도는 기온 관측 사상 최고 기록이다.

출처: LH 쿠웨이트 지사 제공
사우스 사드 알 압둘라 현장 위치도(좌), 스마트시티를 건설할 쿠웨이트 사막의 현재 모습

국내 택지개발과 주택공급을 주요 업무로 하는 LH는 왜 열사(熱沙)의 땅 쿠웨이트에 지사를 세웠을까. 쿠웨이트는 주택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를 건설 중인데, 이 중 한 곳의 도시 설계를 LH가 맡았기 때문이다. LH쿠웨이트 지사 사람들은 수도 쿠웨이트시티에서 서쪽으로 30Km 떨어진 사막에 분당의 약 3배 규모로 건설될 거대한 신도시, ‘사우스 사드 알 압둘라’를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된 ‘스마트시티’로 만들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똑똑한’ 도시를 지어라

스마트시티를 무엇이라고 정의하긴 쉽지 않다. 도시마다 환경이 달라서 어떤 콘셉트를 잡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압둘라 신도시에 접목될 기술은 덥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게 이 지사장의 설명이다. “저는 지난겨울에 쿠웨이트에 와서 아직 여름을 겪어 보진 못했지만, 자동차에 계란을 까놓으면 금방 ‘프라이’가 될 정도로 덥다고 하네요. 그러다 보니 모든 가정이 냉방을 안 할 수가 없죠. 개별 냉방의 문제점은 전력 소비가 상당하고, 안 그래도 더운 도시를 더 덥게 만드는 ‘열섬 현상’을 일으킨다는 겁니다. 이걸 지역 냉방으로 바꾸고, 기온이나 습도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되도록 한다면 전기소모를 30%가량 줄일 수 있습니다. 덤으로 열섬 현상도 완화할 수 있습니다.”

출처: LH 쿠웨이트 지사 제공
이한주 LH쿠웨이트 지사장

교통문제 해결도 스마트시티의 과제 중 하나다. “쿠웨이트는 자가용 중심 문화입니다. 대중교통 사정이 열악하기 때문이죠. 모두 차를 갖고 다니다 보니, 교통체증은 물론, 주차난도 심각합니다.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고, 한국처럼 언제 버스가 정류장에 오는지 알려주는 버스정보시스템(BIS)을 도입하면 교통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현재는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사업 파트너인 주거복지청(PAHW)과 협의해 ‘마스터플랜’을 한창 짜는 단계다. 내년 4월쯤 이 과정이 끝나면 사업 타당성을 분석하고 사업 투자를 결정한다. 내년 말쯤엔 본격적인 신도시 건설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 지사장의 얘기다.


열사의 나라에 산다는 것은…


LH쿠웨이트 지사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변화는 더위뿐만이 아니다. 익숙지 않은 이슬람 문화에도 익숙해져야 했다는 게 LH쿠웨이트 지사 신용환(40) 과장의 말이다. 

출처: LH쿠웨이트 지사 제공
LH쿠웨이트지사 개소식

“5월 중순부터 한 달 간 쿠웨이트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 ‘라마단’ 기간입니다. 이땐 해가 떠 있을 때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물론 무슬림이 아닌 저희가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음식을 먹기가 아무래도 좀 그렇긴 합니다. 낮에 식당들도 문을 닫는 경우가 많고요. 독실한 무슬림은 심지어 침도 안 삼킨다고 할 정도니까요. 이슬람 율법상 술도 마시지 못합니다. ‘싸디기’라고 불리는 밀주(密酒)가 아시아인들 사이에서 유통된다고는 하는데 마셔보진 못했습니다.”


쿠웨이트가 작은 나라다 보니 마땅히 돌아볼 데가 없다는 것도 쿠웨이트 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쿠웨이트는 아마 경상북도 정도 크기일 겁니다. 역사적인 유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과 비교하면 문화시설이 많이 부족하죠.” 한국과는 쉬는 날도 다르고, 시차도 6시간이나 난다.


“한국 본사와도 협의할 일이 많은데요, 여긴 금요일과 토요일이 휴일입니다. 설이나 추석 등 한국은 쉬는 날에 여기선 일합니다. 시차도 감안해야 하고요. 그래서 주로 이메일을 통해 업무를 처리합니다. 급한 일은 스마트폰 메신저로 해결합니다.”

출처: LH쿠웨이트 지사 제공
압둘라 신도시 부지에 방문한 쿠웨이트 주거복지청 관계자와 LH 관계자들

쿠웨이트 근무가 힘들 긴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쿠웨이트의 공공기관은 업무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입니다. 아무래도 그 시간에 맞춰 일을 해야 하니,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빨리 일을 처리합니다. 게다가 어차피 술을 마실 수 없으니 회식도 잘 없고요. 곧 돌이 되는 아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처음엔 쿠웨이트 사람들 일 처리가 늦어서 답답했어요. 재촉하기도 했지만, ‘인샬라’(신의 뜻대로)라고 말하면서 느긋하게 일하더라고요. 너무 조급하게 살아왔던 게 아닌가 하고 돌아보는 계기도 됐습니다.”


“쿠웨이트 스마트시티는 마지막 도전”


이 지사장과 신 과장 모두 자원해서 쿠웨이트로 왔다. 우선 신 과장은 스마트시티를 꼭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원했다고 한다. “LH에서 흔치 않은 해외 근무 경험인데다, 4차 산업 혁명의 집약체가 될 스마트시티를 꼭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임신 중인 아내를 열심히 설득해서 올 만큼 제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신 과장은 임신 6개월째에 접어든 아내를 한국에 두고 혼자 쿠웨이트로 왔다. 다행히 지난해 말 아내와 아들이 쿠웨이트로 와 이산가족 생활을 청산했다.

출처: 신용환 과장 제공
신용환 과장과 가족

이 지사장은 직장 생활 마지막 도전이란 각오로 쿠웨이트행 비행기를 탔다. “30년 넘게 LH에 다녔습니다. 이제 정년까지 3년 정도 남았는데요,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성공에 밑거름이 되고 싶어서 쿠웨이트 지사장 자리에 지원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성공해야 앞으로 다른 나라에도 스마트시티를 수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국내 건설사가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초석을 깔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남아있는 아내와 두 딸이 보고 싶긴 하지만,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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