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엄홍길이 찾고, 대통령이 고맙다며 극찬한 이 사람

조회수 2020. 9. 23. 17: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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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수제화 20년간 제작, 금강제화 양성모 기정
맞춤형 수제화 20년간 제작
사람 얼굴만큼 발모양도 제각각
자로 잴 수 없는 취향까지 읽어야

“노무현 대통령님도 우리가 만든 구두를 신고 발이 너무 편하다며 고맙다고 하셨어요. TV에서 우리가 만든 구두를 신은 대통령님을 보면 뿌듯해지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차범근 감독과 엄홍길 대장이었어요. 차감독은 엄청난 연습탓에 발 모양 변형이 심했고, 엄대장은 히말라야 등반에서 동상에 걸려 엄지발가락 일부가 없더라고요.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었어요.”

출처: 사진 jobsN
금강제화 양성모 기정

양성모(56) 기정(생산직 직급의 장인)은 2007년부터 금강제화 최고급 수제화 브랜드 해리티지의 최상위 라인인 비스포크(맞춤형 수제화) 제작을 맡고 있다. 비스포크는 장인이 직접 발 치수를 재고, 주문자의 취향에 맞춰 완성한다. 제작기간도 한달이 넘고 가격은 100만원 이상이다. 가죽재질과 패턴, 공법에 따라 500만원을 넘는 구두도 있다.


비스포크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많은 작업 중 양기정의 업무는 라스트(구두 제작을 위해 뜨는 발 모형)를 만드는 것이다. 양기정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에게 비스포크를 선물했다. 10년 넘게 비스포크 제작 한우물을 판 양기정을 만나 맞춤형 구두와 인연을 들어봤다.


구두 배울 곳을 찾아 ”사람 안 필요하세요?”


강원도 철원에 살던 그는 19살 때 동네 친구가 일하는 양화점에서 구두를 만드는 모습을 봤다. 재밌어 보여 일을 시작한 게 구두와 30년 인연의 시작이다. 곧 일을 찾아 서울로 왔다. 처음 일한 곳은 구로의류공장이었다. 주변 다방에 ‘살롱’(의류와 신발을 파는 매장)을 하는 사람들도 드나들었다. 하루는 다방에서 구두를 만드는 살롱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대뜸 “사람 필요하세요?”라고 용기내서 말했다. 필요하다는 대답에 바로 일자리를 옮겼다. 일을 배우면서 실력이 점점 늘었다. 당시 명동 유명살롱 빅맨, 미쉘, 해밀턴 등에서 일했다.


1991년 금강제화는 레스모아 브랜드를 새롭게 만든다. 알고 지내던 선배가 같이 일하자고 했다. 많이 벌 때 한 달에 150만원도 넘게 버는 데 월급이 50만원이 안된다는 말에 처음에는 망설였다. 마침 제안한 때가 한여름이었다. 여름에는 구두가 안팔려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큰 회사에서는 어떻게 구두를 만들까 궁금한 생각도 들었다. “잠깐 일해도 상관없다고 시작했는데 벌써게 30년이 넘어버렸네요.”


비스포크 제작에 최소 5주 걸려


“비스포크를 만드는 작업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팀을 만들어서 분업을 하죠. 우리 팀은 8명입니다. 라스트를 만들고 나면 가죽에 패턴을 입히고 제갑(라스트에 맞춰 구두 모양을 만드는 작업) 후 조립을 합니다. 각 작업마다 1~2명 정도가 필요하죠.”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도 한 켤레를 만들 때 최소 5주 정도가 필요하다. “모두 멋진 구두를 혼자서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지만, 작업 진행속도를 위해 분업을 하고 있는 거죠.”


발 치수를 재고 난 뒤 라스트를 만들고 가죽에 패턴을 입혀 모형대로 가제작을 한다. 보통 3주 정도가 걸린다. 이후 주문자 발에 맞는지 확인하고 완성품을 만든다. 이 시간은 보통 2주 정도 걸린다. 

출처: 사진 금강제화 제공
비스포크 제작 도구와 과정

발 치수를 재는 것도 단순히 발 길이나 볼 넓이만 따지는 게 아니다. 발등이 두꺼운 사람도 있고, 신발을 넉넉하게 신는 사람도 있다. 몇 번을 맞춰가며 고객이 OK를 해야 구두 만들기를 시작한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른 것처럼 발 모양도 모두 달라요. 거기에 자로는 잴 수 없는 취향까지 파악해야 고객이 만족하는 비스포크가 나올 수 있어요.”


비스포크를 만드는 데 5주가 필요하지만 분업을 해 한달에 20~30켤레 정도를 만들 수 있다.


구두 제작 배우려면 현장 경험 필수


구두 제작 배우려면 보통 학원을 다닌다. 오산대학과 부산정보대학과 같이 제화과가 있는 대학도 있다. 하지만 학원이나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현장과 전혀 다르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 선배들의 노하우를 배워야 진짜 장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스포크 장인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장에서 구두를 만드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 브랜드 구두 매장에 가면 굽갈이 등 수선 정도만 해주는 게 보통입니다. 그정도 수준으로는 비스포크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최소 4~5년 정도 경험을 쌓아야 구두 제작의 모든 과정을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기정이 철원 양화점과 명동 살롱을 거치며 현장에서 구두제작을 배운 것처럼 긴 현장 경험이 필수라는 것이다.


“제화 관련 자격증이 없다보니 젊은이들이 더 진출을 꺼리는 것 같아요. 국가에서 이 사람이 구두를 만드는 데 전문가라고 인정을 해줘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으니 구두 장인들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쉽습니다.” 비스포크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성수동에서 제화점을 하는 곳에는 대부분 40대 후반에서 50대 사장님이 가게를 지킨다.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젊은이가 조수로 있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성수동에서 단 한 곳 주문이 밀린 곳이 있는 데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를 제작한 곳이다. “나라에서 인정해 줬는데 장사가 안되는 게 이상한 거 아니겠어요.”


mm단위까지 주문한 고객도


오랜 시간 맞춤형 구두를 만들다보니 기억에 남는 고객들도 많다.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은 양기정의 고객이다. 오랜 축구선수 생활로 발에 변형이 많아 쉽지 않은 손님이었다. ”발이 새우등처럼 굽었고 어마어마 하게 우람했어요.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는지 느껴지더라고요.”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동상 때문에 엄지와 검지 발가락 일부를 잘라냈다. 게다가 생전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등산화만큼 편한 구두를 만들어 주기 위해 여러번 만나 어떤 구두가 필요한지 물었다.

엄홍길 대장의 발, 엄홍길 대장과 양성모 기정

“가장 깐깐한 손님은 이탈리아 대사님이셨어요. 재봉을 하는 데 실밥 하나, 끈 매는 위치까지 엄격하게 주문하셨어요. mm단위로 주문한 고객은 아마 처음이었을 거에요.”


유명인도 많이 찾지만 발이 불편한 고객도 비스포크를 찾는다. 한 손님은 구두를 신으면 발이 너무 저렸는데 한 번 신고나서 저림이 싹 사라졌다고 좋아했다. 이후 두고두고 신겠다며 한번에 12켤레를 주문하기도 했다.


은퇴후 발 불편한 사람 위한 구두 만들고파


이제 양기정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회사일을 마무리하면 작은 공방을 내는 게 꿈이라고 한다. “발이 불편한 분들께 편안한 구두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그런 공방을 내고 싶다고 하니 아들도 자기가 열심히 거들겠다고 하네요. 물론 구두 제작이 아니라 영업이나 홍보 같은 부분에서요.”

출처: 사진 jobsN
양성모 기정

정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안 고객들이 은퇴 전에 미리 사두겠다고 주문을 하기도 한다. 양기정은 이제 회사에서 일할 시간이 많이 안 남았으니 있는 동안 많이 만들어 둘 생각이란다. 한 번 스타트를 만들면 다음부터는 그것으로 제작을 하기 때문에 두번째 만드는 건 손이 조금간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구두를 신고 편안하게 돌아다닐 수 있고, 그래서 다시 주문을 하는 것. 그것이 구두를 만드는 사람의 보람 아닐까요?”


글 jobsN 최광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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