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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꿈돌이·빙그레이글스· LG트윈스·청와대의 공통점은?

조회수 2020. 9. 23. 17: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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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 아빠, 김현 디자이너
호돌이 아빠, 김현 디자이너
34년 동안 500개 넘는 작품
“한국의 아름다움 알리고 싶어”

‘88서울올림픽 호돌이·대전 엑스포 꿈돌이·LG트윈스·청와대..’


이름만 들어도 머릿 속으로 그림이 떠오르는 마스코트와 기업 로고들이다.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 바로 김현 디자이너다. 사람들에게 ‘호돌이 아빠’로 알려진 그는 34년 동안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한국 디자인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1984년 디자인회사 ‘디파크 브랜딩(D.Park branding)’을 설립해 호돌이뿐 아니라 청정원, 헌법재판소, 농협, 한국도로공사 등 500개가 넘는 기업 CI, 마스코트, 우표 등을 만들었다. 지금은 디파크 브랜딩의 고문이다. 서울시 성북구에 있는 디파크 브랜딩에서 김현 디자이너를 만났다.

출처: jobsN
호돌이 아빠 김현 디자이너

34번 떨어지고 35번째에 당선


-디자인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이 좋았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경기공전(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입학해 공예를 전공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산업디자인 위주로 가르쳤지만 저는 그림이 좋아 그래픽 디자인을 고집했어요. 공모전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상금이 어마어마하더군요.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도전했어요."


-3년 반 동안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다고..

"그때는 안 뽑히는 게 당연했습니다. 배운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출품했어요. 떨어졌다고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았습니다. 뽑힌 작품을 보면 확실히 내가 낸 것보다 좋았기 때문에 결과에 수긍했죠. 오히려 '이번엔 어떤 좋은 작품이 나왔을까' 기대가 컸습니다."


-처음 공모전에 당선된 것은 언제인가요.

"1969년 제일은행 전국 저축 포스터 공모전이었습니다. 공모전 도전 35번 만에 뽑힌 것이었죠. 하도 떨어져서 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한번 붙으니 자신감이 생겼죠. 34번 떨어지면서 배운 것이 디자이너로서의 전 재산인 셈입니다."

출처: jobsN
도전한지 3년 반만에 처음 뽑힌 작품

대우 입사, 호돌이의 탄생


-1976년 3월 대우에 입사했습니다.

"경기공전 졸업 후 1970년에 서라벌 예대로 편입했어요. 거기서 제일제당 CI를 만든 조영제 교수를 만나 1973년까지 조교수님의 연구팀 소속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대우 그룹이 디자인팀 인재를 영입하고 팀 규모를 키울 시기였습니다. 교수님 추천으로 들어갔습니다. 대우 그룹 신문 광고 시리즈와 카탈로그를 제작했습니다. 개인 공모전 출품은 계속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포스터, 대한적십자사, 신년카드 등 디자인을 했죠."


-1983년 88올림픽 마스코트 공모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조직위원회는 디자이너, 만화가, 대학교수 등 7명을 지명해 작품 2점씩을 내라고 했죠. 그중에 한 명으로 뽑힌 것도 영광이었습니다. 7명에게 3개월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호랑이 사진, 캐릭터 등 참고자료 500개 이상을 모았습니다. 회사에서는 눈길이 닿는 곳마다 호랑이를 놓았어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초안을 그리다가 마감 일주일을 남겨놓고 호돌이가 나왔어요. 작품을 내고 돌아오는 길에 쓰러졌습니다. 탈진이었습니다. 회사 일과 병행하다 보니 체력이 약해졌던 거죠."


-같은 해 7월, 호돌이가 뽑혔습니다.

"결과가 나왔을 때 꿈인가 생신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동물 전문가, 전문 디자이너와 함께 5개월 동안 수정 했습니다. 그때 조직위원회에서 지명한 7명에게 50만원씩 주고, 당선자에겐 300만원을 추가로 줬습니다. 그땐 돈이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디자인 파크 디자인 연대기
(왼쪽부터)김현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마스코트 호돌이, 빙그레 이글스, 꿈돌이

대우그룹 퇴사 후 디자인 파크 설립


-1984년 대우 그룹에서 나왔습니다.

“디자인팀 몸집이 커졌습니다. 80명까지 인원이 늘었어요. 저는 관리자 역할만 하게 됐습니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실무와 멀어졌습니다. 그때까지는 아직 디자인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크리에이터로서 경력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사표를 쓰고 나와 후배와 제자 4명과 함께 디자인 회사 ‘디자인 파크’를 차렸습니다.”


-디자인 파크에서 처음 한 작업은 무엇인가요.

“호돌이 응용 작업을 했습니다. 전통 한복을 입고 있는 시리즈부터 올림픽 종목을 나타내는 동작을 디자인 했어요. 이후에는 프로야구구단, 공기업, 은행 등 다양한 기업 CI와 BI를 맡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모든 작품이 기억에 남습니다. 전 세계에 알려진 호돌이와 청정원이 대표적이에요. 당시 사람들이 천연 조미료를 선호하자 미원에서도 천연 조미료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화학조미료 인식이 강해서 미원이 외면받기 시작했죠. 회사가 힘들어지자 이름과 CI를 바꿨습니다. CI작업을 우리가 맡았죠. 햇살·물·산·푸른 녹음이 어우러진 자연을 형상화했습니다. 교체 이후 청정원에서 소비자상, 마케팅상 등을 휩쓸었습니다. 100% CI 때문은 아니겠지만 죽어가던 기업을 살려냈다는 자부심이 들어 기억에 남습니다.”

출처: 디파크 브랜딩 홈페이지
김현 디자이너와 디파크 브랜딩 팀이 지금까지 디자인한 CI는 500여 개가 넘는다.

팀워크가 중요한 디자인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좋은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대중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작자 마음에 든다고 해서 다가 아니죠. 불특정 다수가 좋아해 줘야 합니다. 대중의 마음을 얻으려면 콘셉트가 중요합니다. 어떤 기업이든 리더와 직원 그리고 소비자가 공유하는 가치가 같을 때 CI의 콘셉트가 확실해집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CI 작업 전 임원직원과 소비자 설문조사 및 면담이 중요합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어떻게 하는지

“마감은 다가오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술 한잔하기도 합니다. 술자리를 팀원과 함께 하는 게 중요해요. 같이 모여 얘기를 하다 보면 어딘가 살짝 부족한 아이디어들이 나옵니다. 그때 그 아이디어를 이리저리 조립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참신한 결과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시너지입니다. 결국 팀워크가 중요한 셈입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요.

“고문으로 있으면서 후배들이 잘 활동할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전통적인 것을 발굴해 현대화하고 싶습니다. 신윤복의 그네 타는 여인을 활용해 신년카드를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발굴해내고 싶습니다.”


-디자이너 후배들에게 한마디

“제가 34번이나 떨어진 것처럼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공모전이든 인턴이든 좋습니다. 현장에는 정규교육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나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책임질 것과 잃을 것이 그나마 적을 때 많이 부딪혀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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