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공채 출신 첫 여성 임원, 은퇴 후 강남 한복판서 '벌인 일'

조회수 2020. 9. 23. 00: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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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공채 출신 첫 여성 임원의 다음 도전은?
최인아 책방의 최인아 대표
삼성 공채 출신 첫 여성 임원
은퇴 후 책방 창업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20대여 영원하라’


TV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광고 문구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카피들은 30여 년을 광고에 몸담았던 광고쟁이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바로 최인아(57)씨다. 최씨는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자 삼성 공채 출신 최초의 여성 임원. 이런 그가 2년 전 삼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생각의 숲’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강남 한복판에 책방을 차린 것이다. 최인아 전 부사장이 아닌 ‘책방 주인 최인아’의 창업기를 들어봤다.

출처: jobsN
최인아 책방 공동대표 최인아

제일기획 입사


최 대표는 학창시절 소설가, 정치부 기자 아니면 교수를 꿈꿨다.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학에도 관심이 많던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졸업후 그가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다들 취업과 돈 벌기에 바빴다. 최 대표 역시 다른 학생들처럼 현실에 쫓겨 기업에 입사했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에서 성차별을 마주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홀대받는 것은 당연했다.


"남자들보다 승진이 늦는 건 기본이었죠. 남자들은 이름 석자를 부르지만 여자 직원은 미스 박, 미스 최로 불렀어요. 그때는 그게 차별인 줄도 몰랐던 때예요. 하지만 보고만 있을 순 없었죠. 부당한 건 부당한 거니까요. 학교에서는 투쟁하라고 배웠습니다. 직장에서 여성은 소수민족입니다. 신입사원 400여 명 중 여성은 고작 10여 명이었죠. 학교에서 배운대로 하면 동료를 적으로 만드는 셈입니다. 그 방법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내 방식대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출처: jobsN
최인아 책방 전경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무턱대고 사규나 자잘못을 따지기보다 먼저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능력을 갖추면 남자보다 빨리 승진하고 연봉을 더 받아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그 길을 후배들이 따라오면 회사도 바뀔 것으로 생각했다.


"1990년대 채시라씨가 나오는 여성복 광고의 유명 카피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는 사실 제 모습입니다. 능력과 그에 따른 보상에 대해 의심받지 않는 사람이 프로 입니다. 회사에서 '이 일 시킬 사람은 최인아밖에 없어' '승진해도 마땅해'라는 생각하게끔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본보기가 돼 후배들이 따라올 수 있는 길을 만들고자 한거죠."


결국 최 대표는 5년 만에 대리로 승진했다. 여성의 대리 진급 기간을 2년이나 줄인 것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유리천장을 깼다. 2002년 상무, 2006년 전무를 거쳐 2009년 제일기획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공채 출신 여성으로는 최초로 임원으로 승진한 것이다. 그러나 최 대표는 단 한 번도 임원 자리를 목표로 일한적은 없다고 말한다.


“후배들에게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는지, 무엇을 목표로 했는지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 답은 항상 같았어요. 높은 자리, 승진을 목표로 두지 말라고 했죠. 또, 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일을 잘하는 것을 목표로 두라고, 임원·연봉 등 부수적인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맡은 일을 잘하는 것은 나를 브랜드화하는 것입니다. 이름 석 자를 브랜드로 놓고 업계에서 통하는 파워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이죠.”

출처: jobsN
최인아 책방의 책에는 책 추천 카드가 꽂혀있다

은퇴 후 책방 창업


2012년,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은퇴를 고민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사장으로 한 단계 더 올라가서 회사를 이끄는 것과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발 맞춰 큰 회사를 끌고 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해 12월, 29년간 몸담았던 광고 업계를 떠났다.


일보다는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면서 남은 인생을 사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이 틀어졌다. “2년쯤 지나니 다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죠. 당황스러웠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친구 2명과 함께 광고 회사를 차리기로 했어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함께 작은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책 관련 브랜드 프로젝트였습니다. 모여서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기획을 시작하려는데 문득 프로젝트 기획뿐아니라 운영까지 직접 하고 싶어졌습니다.”


최 대표는 정치헌 공동대표와 함께 광고회사가 아닌 책방을 시작했다. 정 대표는 최 대표의 회사후배다. 제일기획에서 일하다 독립해 작은 광고 회사를 운영 중이다. 책방 기획만 6개월이 걸렸다. 책방의 모토와 테마를 정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주 독자층을 직장인으로 정했다. 두 대표가 가장 잘 아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주 독자층이 언제 책을 읽는지 파악해야 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나 고민이 있을 때 선배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경험자가 쓴 책을 읽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만한 고민과 질문 12가지를 뽑았다. 이 중 몇 가지 주제를 선정 후 그에 맞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책 추천인 소개와 어떤 고민이 있을 때 읽은 책인지, 언제 읽으면 좋을지 자세한 추천서를 함께 받았다. 이렇게 책방 3분의 1에 달하는 1600여 권의 책을 추천서로 꾸몄다. 실제로 최인아 책방에 있는 책에는 추천서가 함께 꽂혀있다. 독자들은 경제, 자기계발서, 소설 등 일반적인 분류가 아닌 고민에 따라 책을 고를 수가 있는 것이다. 

출처: jobsN, 최인아 책방 제공
(왼쪽부터)3층 혼자의 서재, 다녀간 독자가 남긴 사용 후기, 최인아 책방에서 열린 강연

생각의 숲을 이루는 곳


2016년 여름, 서울 강남에 ‘생각의 숲을 이루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최인아 책방을 열었다. 위로를 주는 책뿐 아니라 최인아 책방에서는 북클럽, 클래식 공연, 북토크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연다. 올 초 시작한 북클럽은 유료서비스다.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470여 명이 가입했다. 최 대표가 임의로 책을 골라 회원에게 보내준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20명을 선착순으로 받아 소감을 나눈다. 이때 해당 책을 만든 출판사 편집장이나 저자 등을 섭외한다. 독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기 위해서다.


최인아 책방은 건물 3층과 4층에 있다. 4층은 모든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곳이다. 3층은 ‘혼자의 서재’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독자를 위한 곳이다.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면 1인용 소파가 자리하고 있다. 이용 요금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책방 매출을 물어봤다. 최 대표는 매출은 중요하지 않지만 손해는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최인아 책방을 연 지 2년째지만 책방을 넓히려는 큰 욕심은 없다. “슬로건처럼 생각의 숲에 걸맞는 곳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입니다. 북클럽, 북콘서트 등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기획해 하나하나 꺼내 놓을 겁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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