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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은 이직이 승진 뜻하는데 한국은 왜 배신이라 생각하죠?

조회수 2020. 9. 22. 20: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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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는 말없이?" 파티 열고 퇴사하는 사람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 정재호 이사
지인 60명 불러 ‘퇴사 파티’ 열어

“처음에는 일하면서 알게 된 지인 몇 분과 간단하게 와인이나 마시며 이야기하자고 시작된 자리였어요. 그런데 모이기로 한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을 초대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냥 먹고 마시는 자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직장생활을 정리하는 자리를 의미 있게 만들어 보자고 말이죠.”


최근 3년간 일하던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를 떠난 정재호(46)씨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다른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길과 살아갈 방향을 발표하는 ‘퇴사 보고’ 시간을 가졌다. 조용히 떠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 사회에서 요란한 퇴사 파티를 벌인 정재호씨를 jobsN이 만났다.

출처: 사진 jobsN
최근 퇴사 파티를 연 정재호씨

"내 삶을 돌아봤다" 퇴사 파티하며 ‘퇴사 보고’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회사를 그만 다니겠다고 말하면 축하한다며 잘 쉬고 재미난 일을 해보라고 응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대다수가 한숨을 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걱정부터 하죠.”


이런 반응을 보고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공식 퇴직을 하루 앞둔 5월14일. 회사 동료도 있었고, 카이스트창투에서 투자한 스타트업 대표들도 왔다. 알음알음으로 참가한 사람까지 합하면 60명 정도가 한자리에 모였다. 정씨의 퇴직을 축하해주기 위해서다.


정이사는 퇴사 파티를 하는 자리에서 ‘퇴사 보고’를 했다. 프로젝트를 발표하듯 20년 사회생활을 정리해 발표했고, 카이스트창투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공유했다. 또, 앞으로 살아갈 계획도 밝혔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니 앞으로 계획에 책임감이 커졌다.


새로운 기회들도 생겼다. “앞으로 교육과 헬스케어 분야에 대해 더 깊이 있게 파고들 생각입니다. 교육은 제 자녀들의 삶에 헬스케어는 저와 부모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했더니 쉬고 나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걸 만들어보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마흔이 넘어 조용히 퇴사하면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 등산이나 다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까놓고 이야기하니 함께 일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정씨는 직접 창업을 하기보다는 젊은 친구들이 활동하는 것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출처: 사진 정재호 제공
정재호씨는 퇴사 파티에서 '퇴사 보고'를 했다.

직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했는지가 중요


카이스트창투에서 스타트업 발굴에 주력했지만, 정씨의 꿈은 오퍼상이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무역을 하면 신날 것 같았다. 사회생활을 무역회사에서 시작했다. 하고 싶은 업무는 해외 영업이었는데 재무파트로 발령을 받았다. 처음 6개월은 회사가 굴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재밌었다. 그런데 앞으로 계속 숫자만 봐야 한다 생각하니 미래가 답답했다. 그래서 정씨는 1년 만에 회사를 뛰쳐나갔다.


무역회사를 관두고 나서 IT기업에 입사하기로 했다. 그래서 간 곳이 SK텔레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SK텔레콤에 근무하며 신규 사업 분야를 담당했다. 입사할 당시 SK텔레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고, 맡은 업무도 신사업이라 직장 분위기가 다른 대기업과는 달랐다. 30대 팀장도 많았고 젊고 활기찼다. 새로운 시도를 했고, 실패와 성공도 거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회사 회식보다 신사업을 위해 만났던 스타트업 대표들과 모임에 더 자주 나갔다.

출처: 사진 정재호 제공
정재호씨의 퇴사 파티 포스터

그렇게 스타트업을 향해 짝사랑을 하고 있을 때 기회가 생겼다. 이력서를 쓰려고 하는데 빈칸을 채우기 막막해졌다. “헤드헌터가 제일 싫어하는 게 대기업 부장 이력서라고 하는데, 제가 딱 그랬어요. 직위와 팀 말고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죠. 후배한테 보여줬더니 ‘이걸 이력서라고 쓴 거냐’며 욕을 하더라고요.”


어떤 팀에서 무슨 직함을 달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어떤 프로젝트를 했고, 어떻게 성과를 거뒀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일주일이 넘게 자신의 사회생활을 돌아봤다. 에세이로 쓸 때도 있고, 키워드만 달아놓기도 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나니 생각이 잡혀갔다. “이제는 더 의미있고 재밌는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자신의 생활을 정리하는 건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한 기업에 오래 있으면, 어느 순간 자기가 없어지거든요. 새로운 사업을 해도 내 이야기가 없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사는 건 너무 재미없잖아요.”

출처: 사진 정재호 제공
정재호씨의 퇴사 파티에는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참석했다.

새로운 도전 응원하는 문화 정착돼야


카이스트창투를 나올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스타트업이 성장할 때 초기에는 엔젤투자도 받고, 시드머니를 받다가 성장하면 벤처캐피털로부터 시리즈 A와 B를 받는다. 시리즈 A는 스타트업이 처음 받는 대규모 투자를 말하며, 여기에는 다수의 벤처캐피털이 참가한다. 시리즈 B는 시리즈 A를 받고 난 후 진행되는 후속 투자다. 그렇게 성장한 스타트업은 증시에 상장하거나 매각된다.


SK텔레콤에서는 후반부의 업무가 많았으니, 이제는 앞으로 가보기로 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기로 한 것. 그런데 3년이 지날 때쯤 생각해보니 어느새 초심을 잊고 있었다고 했다.


정씨는 퇴사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퇴사 파티를 하라고 권유했다. 평생직장 신화는 이미 깨진지 오래인데 아직도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회생활을 한번 정리해야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데, 퇴사 파티가 그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또 회사를 떠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새로운 도전을 위해 손뼉 쳐주고 응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직이 승진이나 연봉 인상을 뜻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조용히 나가는 게 보통이죠. 하지만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는 건 언제나 응원해줘야 하는 일이에요. 이제 퇴사할 때 요란하게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또 정씨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더 깊게 파보고 길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jobsN 최광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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