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류업계 '발칵' 뒤집어 놓은 이 술, 제가 만들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2. 21: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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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국산맥주 15% 집어삼킨 필라이트, 개발까지 200번 넘게 실패했죠
필라이트 개발 주역 진우석씨 인터뷰
브랜드 매니저로 개발·마케팅 담당
“샘플 200가지 제조...시행착오 많았다”

가성비. 가격 대비 성능비를 축약한 단어다. 최근 유통업계의 트랜드를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주류업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주세법 문제로 수입맥주 가격이 떨어지면서 국내 주류 업체들은 위기다. 이에 대한 국산 맥주업계의 역습이 바로 발포주라는 장르다. 작년 하이트진로가 출시한 ‘필라이트’가 발포주다. 국내 주세법상으로는 맥아함량이 10% 미만인 술을 ‘기타주류’로 분류한다. 국산 맥주의 맥아 함량은 70% 이상이다. 필라이트는 맥아가 덜 들어간 대신 주세가 맥주(72%)보다 훨씬 싼 30%다. 그래서 ‘12개에 1만원’(대형마트 기준)에 팔린다. 기존 국산 맥주보다 40% 가량 싸다.


하이트진로는 2017년 4월부터 1년간 약 2억캔(355ml 기준)이 팔렸다고 한다. 주로 호프나 식당에서 술을 사먹는 사람들은 정말 이렇게 많이 팔렸나 의심하기도 한다. 호프 업장에서는 필라이트를 판매하지 않고 가정용으로만 팔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볍게 한잔 할 때만 먹을 수 있는 술인 셈이다. 국내 한 대형마트 집계 결과, 지난달 팔린 국산 맥주의 15%가 필라이트였다. jobsN은 지난 24일 서울 청담동 하이트진로 사옥에서 진우석(35) 맥주브랜드팀 대리를 만났다. 필라이트의 개발에서 시음, 패키징, 마케팅 등 제품 전반의 실무를 책임진 브랜드 매니저다.  

출처: jobsN
필라이트 개발의 주역인 진우석 하이트진로 맥주브랜드팀 대리.

12캔에 만원 ‘가성비’ 공략…보리맛 나서 애로사항도


- 필라이트의 콘셉트는 뭔가.

“저가 실용맥주. 1만원에 12캔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맛이 기존 맥주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콘셉트다. 알코올 도수도 4.5%로 일반 맥주와 같다. 경기 침체로 주머니가 얇아진 2030 직장인과 대학생을 공략했다. 일본에서 90년대 경기침체로 발포주가 인기를 끌었다. 개발 과정에서 칼로리도 신경을 썼다. 혹시라도 칼로리가 기존 맥주보다 많으면 안 된다. 일반 맥주와 비슷한 355mL 1캔 기준 140kcal 수준으로 맞췄다."


- 개발 기간은 얼마나 되나.

“2015년 1월부터 17년 4월까지 2년 좀 넘게 걸렸다. 70명이 참가했다. 샘플 술을 만들고 시음하고 또 소비자와 대담한 횟수 등은 셀 수도 없다.”


- 필라이트에는 맥아가 몇 퍼센트 들어있나.

“법적으로 10% 미만이 돼야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법이 허용한 최대한을 넣었다. 나머지는 보리나 전분 등을 넣어 맛을 살렸다.”


- 맥아가 적어서 맛이 엷지 않나.

“그렇다. 맥아 함량이 적다보니, 청량감이나 쌉쌀한 맛 등 ‘맥주다운 풍미’를 갖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걸 보완하는데 시간이 2년 걸렸다. 실제로 필라이트를 개발할 때 발포주 시제품 약 200종류를 만들었다. 이 중에 약 10종류만 최종 시음에 들어가고, 190여종은 그냥 다 버렸다. 보리맛이 나거나 맥주로서 풍미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 어떻게 해결했나.

“상세한 공법은 영업비밀이라 말하기 어렵다. 맥아 외에 보리와 전분을 충분히 넣고, 정말 많은 시간 맛 조절을 했다. 실제로 계속 개발과 시음을 거치다가 지쳐서 몇 주 동안은 개발 작업을 못 한 적도 있을 정도다.”


- 필라이트는 소맥으로 먹어도 맛있나.

“맛있다. 실제로 많이들 드신다. 하지만 회식술 이미지를 줄 수 있어 소맥 관련해서는 아예 홍보를 하지 않았다. 만들면서는 좀 감안을 하긴 했다.”


- 2018년 4월에는 시원한 맛을 강조한 필라이트 후레쉬를 출시했는데.

“기존의 필라이트는 가성비가 좋다는 입소문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술의 향이 너무 강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하이트는 물론, 타사의 카스·피츠 등 국산 라거맥주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발포주를 냈다. 그게 필라이트 후레쉬다. 아로마향을 줄이고, 제조에서 여과까지 전체 제작 공정에 영하 1.5도 이하 ‘후레쉬 저온 숙성공법’을 적용했다. 좀 더 기성 라거맥주 같은 맛이다.”


“맥주 개발자로서 아침에 한 캔 마시면서 업무 시작”


- 왜 맥주 브랜드 매니저를 직업으로 택하게 됐나.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주류 회사에 취업하고 싶어서 하이트진로 신입사원으로 2010년 입사했다. 술을 좋아한 것도 있었고, 술 회사는 왠지 안 망할 것 같았다. 평생 직장이라 생각한다. 입사 후 6년간 영업사원을 하다가, 2015년 맥주브랜드팀으로 왔다.” 

출처: jobsN
하이트진로 맥주브랜드팀 직원들.

- 브랜드 매니저도 영업을 알아야 하나.

“주류 업계에서 영업은 핵심이자 기본이다. 나 역시 강남 영동시장 인근 식당 등 340곳을 담당하는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내 담당 업장 340곳 중 하이트진로 맥주 취급 업소가 60%에 불과했는데 결국 100%로 올려놨다. 하이트·맥스 등 우리 술만 파는 ‘100% 업장’도 50여곳 확보했다.”


- 브랜드 매니저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일단 출근하면 차트부터 본다. 채널·용기·용량별 판매 데이터를 정리하고, 광고대행사 등 파트너사와의 협업 일정을 조율한다. 이후에는 개발·생산·판매·마케팅 등 제품의 A에서 Z까지 모든 활동을 하나씩 살펴본다. 요즘에는 필라이트 후레쉬 출시 이후 채널별 판매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 시음은 많이 하나.

“주기적으로 공장에 가서 마셔본다. 하지만 내 술을 내가 사랑해야 잘 팔 수 있다는 생각에, 아침에 한 캔씩 마시면서 마음가짐을 다지는 편이다.”


- 향후 계획은.

“카스를 이기겠다.” 


발포주 원조는 일본...90년대 경기 침체로 쏟아져 나와.


발포주는 일본이 원조다. 일본 외에는 한국 정도가 활성화된 시장이다. 일본에서는 경기 침체가 한창이던 94년 발포주가 쏟아져 나왔다. 현재는 일본 가정용 맥주 시장의 저란 가까이를 발포주가 차지하고 있다. 신장르(新ジャンル), 제3맥주라 불리는 술도 있다. 맥아 함량이 25% 미만인 술이다. 일본에서 90년대 들어 발포주가 인기를 끌자, 일본 국세청이 세금 제도를 바꿨다. 신장르는 이에 대한 반발로 생겼다. 맥아를 거의 쓰지 않고 대두나 옥수수 등으로 술을 만들었다. 가장 인기가 있는 신장르 발포주는 기린의 ‘노도고시’다. 하이트진로에서도 일본 시장을 겨냥해 발포주를 만들어 수출해왔다. 2000년부터 유통채널 자체브랜드(PB)로 팔리고 있다.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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