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만 보고 등에 있는 여드름까지 맞추는'피부 점쟁이'의 정체

조회수 2020. 9. 23. 15: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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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피부 용하게 맞추는 '동자신', "남자도 화장품 팔 수 있어"

“어릴 땐 피부 좋았는데 스무 살 넘어서 여드름 나기 시작했죠?”

“한 곳을 오랫동안 보는 일을 하시죠?”


화장품 가게 점장 선찬래(35)씨를 만난 손님들이 2초 후에 듣는 말이다. 손님이 화장으로 피부를 가려도 선씨는 피부 특징, 식습관, 피부 관리법을 알아낸다. 1분쯤 이야기를 나누면 손님의 직업, 버릇까지 맞춘다. 화장품 커뮤니티와 블로그에선 “용하다”고 ‘동자신’으로도 불린다. 선씨는 2006년 화장품 가게 아르바이트생으로 일을 시작했다. 2017년부터 국내 화장품 업체 더샘의 건대점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때는 선씨를 만나러 매장을 찾는 손님이 하루에 30명 정도 오기도 했다고 한다.

출처: 선찬래씨 제공
아들과 함께 있는 선찬래씨

기름때로 피부 상한 정비병 동자신 되기까지


- 동자신이라는 별명은 어쩌다 붙었나


“2013년에 제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동자신이라고 불린다는 걸 알았어요. 손님 피부를 잘 분석하다 보니 용하다며 붙은 별명인데 어떤 분이 지으셨는지도 잘 몰라요. 소문이 퍼져 2015년엔 매일 약 30~40명이 저를 보러 가게로 찾아왔어요. 부산에서 올라오는 분도 있었어요. 유학을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방학마다 저를 찾아오는 외국인 손님도 있었고요.”


“요즘은 보통 손님 한 분과 30~40분정도 이야기해요. 손님이 많을 땐 10분씩만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랐어요. 지금은 하루에 다섯 분 정도 찾아와요. 한 시간 넘게 상담하다 보니 시간이 모자란 건 마찬가지지만요.”

출처: 작가 '된다' 블로그 캡처
미용 웹툰 작가 '된다'의 '동자신 영접 후기'

- 화장품 업계 일 시작한 계기는


“여드름이 많아서 고등학생 때부터 피부 관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미용학을 전공한 누나의 도움을 받아 직접 팩을 만들어 쓸 정도였어요. 하지만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정비를 배우다가 정비병으로 입대했어요.”


“춥고 건조한 날씨에 기름때 묻은 손으로 얼굴을 만져서 여드름이 심해졌어요. 군대에서 틈틈이 피부 관리 방법을 찾다 보니 화장품 업계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6년에 전역을 하고 화장품 가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창고에서 매장으로 화장품을 날랐죠.”


- 2006년쯤에는 손님들이 화장품 가게 남자 직원을 피하지 않았나


“그해에 누나가 연 화장품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남자인 저를 보고 돌아가는 손님도 많았어요. 저도 어떻게 말을 걸지 몰랐고요. 누나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긴장할 정도로 가게에 혼자 남는 게 무서웠어요.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팔고 있는 화장품 성분을 다 외웠어요.”


“화장품을 잘 판다고 소문난 가게를 찾아가 쉽고 재밌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어요. 거울을 보고 손님에게 말할 내용을 녹음해 들어보면서 말하는 방법을 익혔죠. 멘트를 써서 출근하는 내내 외우고, 머릿속으로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답할지 연습하고. 입이 굳지 않게 하려고 손님이 없을 때도 직원들과 계속 말했어요. 그러다 보니 2013년부터 인터넷에서 저를 동자신이라 부르는 분들이 생겼죠.”


손님 이해하기 위해 색조 화장 하고 자기도


- 피부 미용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공부했나


“누나가 쓰던 피부미용학 전공 서적을 모두 외웠어요. 직접 얼굴에 바르면서 배운 것도 많아요. 화장품을 써보면 손님에게 더 잘 추천할 수 있으니까요. 가끔 얼굴에 색조 화장을 하고 자요. 다음날 베개에 화장품이 얼마나 묻는지, 피부가 갈라지진 않는지 보죠.”


- 노하우를 말해준다면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말하기보다 손님에게 필요한 화장품을 말하려고 해요. 화장품을 이미 많이 사용하는 분들에겐 쓰고 있는 제품을 다 쓰고 오시라고 해요. 제게 화장품을 몇 개 사도 효과를 못 보고 다시 안 오실 게 분명하니까요.”


- 손님들을 자주 관찰하는 편인가


“사람들을 볼 때 피부를 관찰하는 버릇이 있어요. 저 사람이 손님으로 오면 어떤 말을 할지 생각도 해보고요. 하다 보면 얼굴을 2~3초만 봐도 피부 특징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표정, 버릇, 식습관, 가방 메는 법 등이 얼굴과 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찾아봤어요.”


“팔자주름을 걱정하는 분들은 볼과 윗입술에 공기를 넣는 버릇이 있어요. 컴퓨터 등 한 곳을 오랫동안 보는 일을 하면 눈을 세게 비비거나 질끈 감는 버릇이 생기고요. 습관적으로 눈을 대충 뜨는 분들은 화장해도 눈이 피곤해 보여요. 셀카를 예쁘게 찍기도 어렵고요. 손님의 피부를 보면서 습관과 일상까지 파악해 더 좋은 제품을 권하려 해요.”

출처: 선찬래씨 제공
선찬래씨는 2017년부터 건대입구역에서 점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견디다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어


- 동자신으로 알려져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을 텐데


“저를 전문가로 대하는 분도 있었고, 제가 얼마나 잘 맞추는지 보러 오신 분도 있어요. 같이 피부 관리 방법을 고민하고 권하는 거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래도 부담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더 커요. 그런 분들께 정확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려고 계속 공부했으니까요. 손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죠.”


- 앞으로 꿈은


“현장에 남아서 회사와 함께 크는 거예요. 손님들이 돌아가면서 “고마워요”, “다음에 또 올게요”라고 해주실 때면 정말 뿌듯해요.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그 결과를 눈으로 보는 건 보람차니까요. 단순히 화장품을 파는 게 아니라 손님들이 웃으며 돌아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 제2의 동자신을 꿈꾸는 이들에게 할 말은


“점원이 어색해하면 손님도 똑같이 느껴요. 부담스럽지 않되 친절할 수 있게 노력해보세요. 단 손님을 대할 땐 제품 정보를 읊지 말고 손님과 대화하듯 말하고요. 자신만의 이야깃거리를 만들면 더 좋아요. 틈날 때마다 사람들을 관찰하면 많은 이야깃거리를 쌓을 수 있어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손님으로 왔을 때 어떤 말을 해줄지 상상해보세요.”


글 jobsN 주동일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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