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찍으면' 완판..작년만 1600억원어치 판 물건은?

조회수 2020. 9. 23. 15: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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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팔리는 속옷 10% 주무르는 한국 속옷의 여왕
문지현 GS홈쇼핑 라이프패션팀장
2017년 한 해 속옷 1600억 매출
“요즘 40~50대, 보는 눈 20대 같아”

현대인은 속옷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업계 추산으로 연간 약 1조7000억원 어치의 속옷이 팔린다. 전문가들은 이 중에서 약 30~35% 가량이 홈쇼핑을 통해서 팔리는 것으로 본다.


문지현(40) GS홈쇼핑(GS샵) 라이프패션팀장은 이 분야의 ‘큰 손’이다. 속옷·레포츠·침구를 총괄하는 상품기획자(MD)다. 그가 2017년 한 해 동안 판매한 상품이 2500억원 어치, 이 중에서 속옷만 1600억원 어치나 된다. 한국서 팔리는 속옷의 10분의 1이 그녀의 손을 타는 셈이다.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여성 속옷 평균 가격으로 환산하면 연 5000만장 정도다. 도대체 어떤 제품을 어떻게 사다가 어떻게 팔까.


jobsN이 최근 문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GS홈쇼핑 제공
문지현 GS홈쇼핑 라이프패션팀장.

주재원 아버지 따라 일본행…시세이도에서 사회 첫 발


문 팀장은 영동여고와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96학번)를 졸업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해외 주재원을 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생활했다. 그 덕분에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할 수 있다. 직업을 찾은 계기도 일본과 맞닿아있다.


“일본 기업의 장인정신에 대해 동경심을 갖고 있었어요. 오래된 기업도 많았고요. 자연스럽게 일본 기업 진출을 꿈꿨습니다.”


사회 첫 발은 ‘당차게’ 내디뎠다. 2000년 시세이도코리아 경력공채에 다짜고짜 신입 원서를 내서 합격했다. 신문 지면에 붙은 광고를 보고 이메일로 서류를 냈다. “귀사에서 경력 사원을 뽑는 것은 알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신입사원으로 지원해 보고 싶다(貴社で経歴社員を採用している事は存じますが、機会があれば是非新入社員として採用して頂ければと思います)”는 말로 시작한 지원서를 당시 채용 담당자는 좋게 봤다. 문 팀장은 시세이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통관팀을 거쳐 홍보·광고·교육 담당 등을 맡았다.


하지만 문 팀장도 ‘워킹맘’이라는 족쇄에 한 번 좌절을 경험한 적이 있다. 시세이도코리아 교육팀장을 맡던 2007년이었다. “업무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육아에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일에 올인을 할 수가 없었어요. 세 살 배기 아기를 두고 나오는 것도 고역이었죠.” 그렇게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어머니를 도운 것은 어머니였다. 딸이 육아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보자, 문 팀장의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 주겠다고 나섰다. “육아 때문에 네가 하고 싶은 일과 직장을 포기하는 것이 엄마로서 속상하다”는 친정어머니의 격려에 퇴사 6개월만에 다시 복귀했다. 이 때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곳이 GS홈쇼핑이다.


문 팀장은 또 유통업계에서는 ‘뱀 독 크림’으로 알려진 미리암퀘베도 제품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0년쯤 보톡스가 유행을 탔어요. 보톡스도 독 성분이잖아요. 다른 독으로 피부에 효과를 줄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발굴한 브랜드죠.” 2010년 한 해 동안 100억원 어치(22만병)가 팔린 ‘대박 아이템’이다. 

출처: GS홈쇼핑 제공
문지현 팀장.

MD가 말하는 요즘 홈쇼핑, 요즘 여성 소비자


홈쇼핑의 주된 타깃은 40~50대 여성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정설이다. 상당수가 가정주부고, 워킹맘도 꽤 있다.


- 요새 홈쇼핑의 트렌드는.

“일단 젊다. 홈쇼핑을 보는 40~50대 여성들이 중년 타깃 제품을 사지 않는다. 20~30대와 다름 없는 감각이 있는 40~50대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래서 MD들에게도 ‘네가 입고 싶은 것을 팔아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줌마'는 사라진지 오래다. 심지어 손주를 본 여성분들이 손주와 같은 브랜드 옷을 찾는다.”


- MD는 구매자인 동시에 영업자다. 어떤 제품을 선택하나.

“우선 차별화한 브랜드가 있는 상품을 고른다. 상품은 따라할 수 있지만, 브랜드는 따라 만들 수 없다. 오늘 파는 프랑스 감성의 이불 브랜드와, 내일 파는 북유럽 디자이너 브랜드의 이불은 엄연히 다른 제품이다. 둘째로 퀄리티를 중시한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시대라지만, 가격만 낮추면 결코 롱런할 수 없다. 재구매율이 떨어진다. 또한 빠르게 트렌드를 선도할 제품을 발굴하려고 한다. 이전에는 백화점의 유행이 홈쇼핑에 전이됐다면, 지금은 홈쇼핑에서 인기있는 제품이 백화점에 퍼지는 식이다. 쿠션 화장품 같은 것이 그렇다.”


- 가장 많이 나가는 속옷은 어떤 구성인가.

“여성용 속옷 제품은 4~5장 들이 세트 기준으로 평균 16만원에 팔린다. 최근 몇 년간은 편안함이 트렌드다. 브래지어는 딱딱한 와이어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정 속옷이 불티나게 팔렸는데, 지금은 편안함을 강조한 속옷이 많이 팔린다. 같은 맥락으로 융합형 의류도 많이 팔린다. 이지웨어라고 불리는 제품들이다. 속옷이 내장된 잠옷, 잠옷 같은 외출복 등이 있다.” 

출처: GS홈쇼핑 제공
편안함을 강조한 최신 인기 속옷들. 플레이텍스 쉐이퍼 제품이다.

- 남성 속옷은 어떤가.

“여성 속옷에 비해서는 판매량이 적다. 대개 부인이나 엄마들이 대신 구매해 주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가 무난하면서 가성비가 좋고, 너무 화려하지 않은 것이 대세다. 남성 제품은 6장 들이 1팩에 8만~9만원 짜리가 많이 나간다. 아디다스나 푸마 같은 브랜드가 많다.”


- 레포츠와 이불 분야의 트렌드도 말해달라.

“작년에는 단연 롱패딩이 많이 나갔다. 평창 이슈도 있었고 연예인들이 많이 입은 덕분도 있다. 본래 운동선수들이 벤치에서 땀이 식을까봐 입던 점퍼인데, 연예인을 거쳐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됐다. 2017년 한 해 동안 24만장, 300억원 어치가 팔렸다. 이불은 소셜미디어의 인기로, 집에서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는 8만~9만원대 이불-깔개-베개세트를 많이 판다.”


- 40~50대가 고객의 주 타깃인데 롱패딩이 그리 많이 팔리나.

“내부적으로도 잘 팔리겠냐는 우려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잘 팔렸다. 요즘 40~50대는 옛날 중년과는 다르다. 패션아이템을 보는 눈이 20~30대와 다르지 않다.”


문 팀장은 지난 2016년 담당 제품군을 바꿨다. 뷰티 담당에서 이너웨어 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 화장품 MD와 패션 MD는 일이 아예 다를 것 같은데.

“구매 패턴이 극명하게 다르다. 화장품 소비자는 남들이 많이 쓰는 제품을 ‘검증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패션은 많이 팔리는 제품을 ‘매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이 때문에 최근 홈쇼핑에 나오는 패션 제품들은 소량 생산이나 한정판이 많다. 그걸 꾸준히 발굴해야 한다.”


“기민한 사람이 1순위”...MD의 자격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문 팀장에게 어떤 사람이 좋은 패션 MD가 될 수 있냐고 물었다. 이런 답이 나왔다.


“기민함이 가장 중요하다. 패션 산업 자체가 트렌드에 민감하다. 게다가 TV홈쇼핑이다. 초단위로 소비자 반응이 변한다. 방송 중에 비가 오면, 바로 쇼핑호스트에게 ‘비 올 때 패션 코디법’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순간의 MD 판단으로 순식간에 매출이 몇 억원 차이날 수도 있다. 그리고 협상력이 필요하다. 남보다 좋은 제품을 빨리 찾아서, 해당 공급자를 설득해야 한다. ‘주신 제품 잘 팔겠다’는 마인드는 기본이다.


예비 후배에게 해준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째 스스로를 수양하는 자경문(自警文)처럼 들렸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친 문 팀장은 허겁지겁 스튜디오로 달려갔다. 실시간으로 날아드는 MD들의 제품 사진들을 보면서.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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